“선생님, 있잖아요…….”
새 그림을 입고 40년 만에 개정 출간된 1학년 어린이들의 생생한 언어 모음집
여전히 깊고 따뜻한 글에 요시타케 신스케의 삽화가 더해져 읽는 재미가 가득한 도서
운동장에 줄줄이 모여 입학식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50명 넘는 친구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으며, 방과 후에는 운동장, 놀이터, 친구 집 등 동네 곳곳을 몰려다니다가 해 질 무렵 인사하고 서로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강당이나 교실에서 입학식을 하고, 급식실에 모여 다 같은 반찬을 먹고, 학교 끝나면 차에 실려 다니며 학원을 도는 요즘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이처럼 40년이 지나는 동안 1학년 아이들의 하루는 참 많이도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것이 있다. 그 나이에만 가질 수 있는 세계 말이다.
주니어김영사의 새 책 《선생님, 있잖아요》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평생을 헌신해 온 엮은이가 아이들의 글을 모아 펴냈던 40년 전의 책을 재단장하여 다시 출간하는 책이다. 당시 실렸던 120여 개의 글 가운데 54편을 신중하게 추렸으며, 요시타케 신스케의 삽화를 더해 읽는 재미를 끌어올렸다. 종종 유쾌하고, 때때로 깊으며, 한없이 통통 튀는 글들은 그 나이 때에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어른이 되어 버린 이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언젠가는 어른이 될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른이 될 아이가, 그리고 어른이 되어 버린 이들이 지켜 줬으면 하는 소중한 마음
대개 그렇듯 반복되는 일상은 행동반경이 넓지 않은 법이다. 만나는 사람도 매일 비슷하다. 하물며 어른보다 규칙적인 아이들의 하루는 더더욱 뻔할 수밖에 없다. 가족, 선생님, 친구들과 나눈 짧은 이야기 또는 집과 학교에서 겪은 일이 전부인, 사진이나 기록이라도 없으면 기억나지 않을 날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잊어버린 흔한 나날 속에서 새록새록 무언가를 발견하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팔꽃, 안녕.” 하고 인사하려는데 봉오리가 커다랗게 부풀어 있었다. 세수하고 밥 먹고 학교에 가려는데 자그마한 꽃이 ‘톡’ 하고 폈다. 나는 “안녕.” 하고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_<나팔꽃>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피어나는 나팔꽃에 쪼그리고 눈 맞춰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는 다정함과
곶감은 달콤했다. 떫은 감을 밖에 널어 말렸을 뿐인데 달콤해지다니 참 신기하다. 햇볕을 받아서 달콤해진 거야. 해님이 따뜻해서 떫은 감 마음이 따뜻해진 거야. _<곶감>
감을 쪼글쪼글하게 만드는 햇볕만큼 따뜻한 시선은 잊고 지냈던 달콤한 세상을 떠오르게 만든다. 또,
우리 아빠는 쌀 가게 주인이면서 아침으로 빵을 먹는다. _<아빠>
방문 판매원이 왔다. “아기가 아파서요, 그냥 돌아가 주세요.”라고 엄마가 말하니까 “얼른 낫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우리 집에 아기가 어디 있다고. _<방문 판매원>
처럼 솔직한 시선에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이 책을 엮은 가시마 가즈오는 평생을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했고, 재직 기간 대부분을 1학년 담임으로 보냈다. 부모를 제외하면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어른으로서 엮은이 눈에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대로 잊기에 한없이 아까웠던 듯하다. 덕분에 그치지 않는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다가도 N번 째 인생을 사는 양 세상 시큰둥하고, 쉴 새 없이 부산을 떠는 와중에도 발아래의 작은 것을 놓치지 않는 시선들이 글 안에 고스란히 남았다. 직설적인 표현은 마음에 더 깊숙이 꽂히고 정제되지 않은 단어가 더욱 큰 울림을 준다.
어른과 다른 눈높이에서 바라본 아이들의 세상은 참으로 넓고 새롭다. 거리낌 없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는 모든 순간이 사랑스럽고, 시대와 나라가 달라도 한결같은 모습이 반갑다. 엮은이의 바람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어느샌가 잊어버린, 어느샌가 잊어버릴 것들을 떠올리며 그 시절만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