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우스가 우리에게서 단지 몇 광년 떨어져 있는 반면, 리겔은 멀리 1000광년 이상 떨어져 있어서 시리우스가 더 희게 보인다.’
나래는 이 문장 위로 파스텔 톤의 하늘색 형광펜을 그었다. 자신의 내일은 리겔의 속도로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믿으면서. 나래는 아주 멀리서, 그러나 분명한 빛을 내며 다가오고 있을 제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어두웠던 마음 어딘가에서 소금 같은 별이 흩뿌려지는 것 같았다.
“그래, 윤이나래도 있고 하니까 봐줬다. 오늘은 ‘유림 정식’으로!”
늦은 오후,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잔뜩 사 들고 유림이네 집 계단을 올라갔다. 부모님은 외출하신 걸까, 묻기보다 집이 비어서 유림이가 자신 있게 친구들을 데리고 왔구나, 안심했더랬다.
매운 것을 못 먹는 이나를 위해 라면 대신 크림떡볶이며 바나나푸딩이며 유림이 뚝딱 만들어 준 코스를 휘둥그레진 채 즐기다가, 이나가 추천한 음악 영화를 BGM 삼아 한두 명씩 졸았다. 한참 뒤에 일어나니 어느새 까만 밤이 돼 있었다.
노래가 소리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라면 이나와 자기 사이를 오가는 속도는 알맞은지 궁금했다. 나래는 우선 자신이 어떤 템포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동안은 멈춰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리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또 너무 빠른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인생이 노래라면 나래는 제 삶을 쓴 작곡가에게 묻고 싶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거냐고.
어른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소리지만, 나래는 노래를 시작하면서 이제야 인생이 손에 좀 잡히는 것 같았다. 주먹을 쥐면 곧장 가려질 아주 작은 크기이기는 해도, 주무르는 대로 모양이 변하는 지점토 같은 덩어리처럼 어떤 형태가 주는 만족감이 있었다. 나래는 가사지에 카피를 하다 말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지금처럼, 들리는 대로 느낌을 받아 적고, 부를 수 있는 만큼 표현하는 것만으로 적당히, 다음, 다음, 그다음 레슨 곡으로 넘어가는 삶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걸 모아 두는 거, 난 재생 목록 말고 없던데. 이것도 간신히 채웠어.”
훅 들어온 정현의 말에 나래는 가슴이 붕 떴다 내려앉는 것 같았다. 풀어지려던 긴장이 다시 조이는 기분. 농담으로만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실상 나래도 정현과 다르지 않았다. 휴대폰을 끄면 모두 조금씩 외로워지는 이유가 정현의 말마따나 좋아하는 마음의 방 같은 게 많지 않아서인가 싶었다.
“아무래도 세상이 우리한테 좀 너무하네.”
“그래, 차라리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라는 말이 더 괜찮게 들릴 지경이야.”
어른들이 들으면 하다 하다 꿈꾸는 것조차 미룬다고 타박하려나. 하지만 지금 우리의 대화는 꿈꾸기를 언제까지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에 더 가깝다. 각자의 현실에 실망보단 애정을 더해 가면서 봄을 건너왔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살수록 ‘사는 운’이, 쓸수록 ‘쓰는 운’이 쌓인다고 믿는 사람. 좋아하는 모든 일 중에 노래 부르기를 가장 좋아한다. 시도 때도 없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언제나 진심에 못 미친다고 느낀다. 다행히 이소설을 쓰는 동안은 그런 생각을 덜했다. 내게 오랜 시간 지망생의 마음을 심어 준 노래와 소설을 하나로 이을 수 있어서 기쁘다. 앞으로도 나만의 별자리를 새기듯 소설을 쓰려 한다. 에세이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 《아무튼, 아이돌》 《매일을 쌓는 마음》을 지었고, 팟캐스트 〈일기떨기〉에서 나눈 대화를 책으로 묶은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를 함께 썼다. 망원동에서 동료 작가와 서점 ‘작업책방 씀’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