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학의 전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거장
리처드 브라우티건 대표작 전면 개정!
시인 최승자의 번역으로 만나는 20세기 고전
1995년 국내에 첫 소개되어 삼십 년 가까이 사랑받은 소설 《워터멜론 슈거에서》가 리처드 브라우티건 타계 40주년을 맞아 2024년 새로운 장정으로 독자를 찾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장욱, 김애란, 천명관, 박솔뫼, 양안다에 이르기까지 유수의 작가에게 사랑받는 ‘작가들의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대표작이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원전의 은유적 표현과 시적 리듬을 충실히 살리면서도 오늘날 표기법과 언어 감각에 맞게 일부 단어와 문장을 다듬었다. 또한 《미국의 송어낚시》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 등 작가의 기존 작품과도 통일성 있게 단장해 ‘리처드 브라우티건 걸작선’의 완성도를 높였다.
소설은 세상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풍요의 낙원 ‘워터멜론 슈거’를 배경으로 마을 주민 사이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을 그린다. <뉴욕타임스 북리뷰>와 <타임스>로부터 “감히 압축할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와 우아한 매력을 자아낸다” “읽는 이를 매혹하는 독창적인 작품, 대단히 우화적인 방식으로 눈앞의 현실을 이야기한다”라는 찬사를 받으며 20세기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어판 출간 당시 시인 최승자가 미국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해 직접 번역까지 맡은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소설가 이전에 시인으로 먼저 데뷔한 브라우티건 특유의 수사적 문체와 시인 최승자의 언어가 만나 마술적인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하여 《워터멜론 슈거에서》는 그의 문체가 훨씬 더 시詩 쪽으로 기울어지고, 그가 그리는 이야기는 차라리 전설이나 신화의 모습으로 두둥실 떠오른다. 그리고 거기서 작가는 자연과 문명,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 현실과 신화가 단절되면서 동시에 이어져 있는, 혹은 서로 오버랩되는 어렴풋한 박명 지대를 건드리고 있다.” _ 최승자
“상상이 가? 붉고 노랗고 까맣고 푸른 워터멜론이.
그것으로 우리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 어떤 꿈이든 꿀 수 있어.”
오직 풍요만이 허락된 낙원 ‘아이디아뜨’에서의 나날
요일마다 다른 빛깔의 태양이 뜨는 ‘워터멜론 슈거’ 마을. 이곳에는 일곱 가지 햇살을 먹고 자라는 일곱 가지 색 워터멜론이 있다. 사람들은 워터멜론 즙을 끓여 얻은 슈거로 원하는 물건을 만든다. 널빤지, 창문, 오두막, 다리, 드레스……. 마을엔 시종 달콤한 냄새가 휘돌고, 사람들은 주어진 풍요를 만끽한다.
마을 내 ‘아이디아뜨iDEATH’라고 불리는 곳은 주변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다. 통나무 오두막 구역과 시내 등 곳곳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기 위해, 춤을 추기 위해 모이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주민인 인보일이 지금의 ‘아이디아뜨’는 다 가짜라며 ‘아이디아뜨’와 멀리 떨어진 ‘잊힌 작품’에서 살겠노라 선언한다. ‘잊힌 작품’은 버려지고 잊힌 물건만 가득 쌓인 공간으로, 마을 주민 대부분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인보일을 따라나서는 이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잊힌 작품’에서 터를 잡고 생활하던 인보일 일당이 마을로 들이닥치고, 진짜 ‘아이디아뜨’를 보여주겠다는 인보일 일당과 ‘아이디아뜨’는 이미 여기에 있다는 이들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데…….
“너희는 아이디아뜨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하나도 몰라. 너희는 모두 가면무도회를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아이디아뜨를 다시 데려올 거야. 우리가 아이디아뜨를 다시 데려올 거야. 여기 있는 내 일당과 내가. 오랜 세월 생각해온 거고 이제 우리가 그걸 해낼 거야. 아이디아뜨는 다시 올 거야.”
이상과 현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환상의 신기루
시대를 초월하는 영감의 원천 《워터멜론 슈거에서》
“1950년대 비트 운동과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을 잇는 가교”라는 평가와 함께 ‘60년대 반문화 운동의 구루’로 불리는 리처드 브라우티건. 예술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비트 운동이 1960년대에 이르러 사회, 정치, 문화의 영역으로 확산하던 시기, 그는 비트 세대의 정신을 계승하는 한편 ‘뉴 픽션’ 운동의 대표 주자로 등극하며 시대를 강타했다. 1967년 《미국의 송어낚시》를 발표한 이후 대학생들이 그의 책을 성서처럼 늘 들고 다녔다는 일화 역시 유명하다.
《미국의 송어낚시》와 함께 작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워터멜론 슈거에서》는 “앞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풍자적인 기법” 대신 부조리한 이미지를 앞세워 이상과 현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설탕으로 만들어진 세계’로 나타나는 완벽한 이상향이 대표적이다. 필요한 모든 것이 충족되는 낙원 안에서도 인물들은 다툼에 휘말리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며 유한한 삶을 산다.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인 ‘아이디아뜨’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i’와 ‘DEATH’ 혹은 ‘idea’와 ‘DEATH’의 합성어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어떤 조합으로든 반드시 ‘죽음DEATH’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관념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는 브라우티건만의 독특한 언어는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한다. 이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워터멜론 슈거’라는 상징적 언어는 오늘날 노스탤지어와 여름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이는 것은 물론, 동명의 노래로 만들어지며 시대와 분야의 경계를 넘어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오감을 자극하는 예술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고 있는 소설 《워터멜론 슈거에서》. 브라우티건 표 달곰쌉쌀한 환상 세계로의 여행을 마친 뒤에는 저마다의 ‘아이디아뜨’를 그리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 발견되는 허무와 죽음을 극복하고 문명의 몰락에 대한 위기 의식을 극복하는 데도 역시 예술의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워터멜론 슈거에서》의 ‘아이디아뜨’ 역시 죽음 너머에 있는 상상력의 비밀 요소 같은 것이 아닐까.” _ 리처드 브라우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