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괜찮죠, 그렇죠? 아무도…….”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얘기하자.”
알든이 소피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니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셔야 해요. 전 도저히…….”
목에 뭐가 걸린 것 같아 숨이 막혔다.
“누군가 다쳤다면 저도 알아야 해요.”
알든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을 돌렸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넌 먼저 쉬어야 해.”
“제가 잠을 못 이룰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피츠가 말했다.
“아빠 말씀이 맞아.”
알든은 천 살은 되어 보이는 얼굴로 둘 사이에 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말이 주위의 공기를 삼켜 버린 것 같았다.
오거의 왕.
소피는 천천히 생각했지만 더 이상 머리가 돌지 않았다.
오거 왕은 왕다운 차림새가 아니었다. 적어도 엘프 기준으로는 아니었다. 그 점에서는 인간 기준으로도 아니었다.
오거 왕이 입은 유일한 옷은 리벳이 박힌 강철 속옷처럼 보였고, 몸은 엄청난 양의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털 없는 고릴라 같았으며, 피부를 보면 비바람에 씻긴 대리석이 떠올랐다. 오거 왕은 무기도 경호원도 없이 도착했다. 축 늘어진 귓불 한가운데에 큼직한 노란색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왕관이나 홀, 인장 반지도 착용하지 않았다. 대머리에는 검은색 무늬가 구불구불 그려져 있는데 딱히 왕다운 위엄은 없고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이자는 무서운 놈이다!
알리너 의원은 돌아서서 멀리 있는 이터널리아의 폐허를 가리켰다.
“저에게 주어진 이 직무가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의 결과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무시해서도 안 되지요. 제가 다스리는 시간이 우리가 잃은 것을 기념하고 우리가 되찾을 것에 대한 증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알리너 의원은 다시 군중 쪽으로 몸을 돌려 잠시 말을 멈추고 유리구슬 같은 눈으로 앞에 선 군중의 얼굴을 보았다.
“정의와 변화를 요구하는 여러분의 외침이 들립니다. 그리고 신뢰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임을 저는 압니다. 하지만 제가 앞에 놓인 긴 여정을 용감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여러분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피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래디를 쳐다볼 수 없었다.
“염화 능력자가 누구지? 어서 말해 봐.”
소피는 그래디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사실을 말한다면 소피도 그래디도 붙잡을 무엇이 필요할 테니까.
그래디가 소피의 손을 감싸 쥐었고, 소피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목구멍에 차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삼키며 속삭였다.
“브랜트예요.”
그 순간, 그래디의 몸이 굳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온 우주가 기우뚱하며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