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로 전해지지 않는 세계에서 배우고 일했습니다. 대학에서의 해부학은 무엇보다 실습이 중요했습니다. 시신과 마주하고, 시신을 맨손으로 만졌습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장갑도 끼지 않았습니다. 맨손으로 시신을 만지는 행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식견은 결코 말로 다 전할 수 없습니다. (…) 꽤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이런 수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진정한 ‘학습’이 되지 않습니다. 학습은 ‘몸에 익히는 것’, 몸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좋든 싫든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어떻게 변해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나 자신이 변하면 내게 소중한 것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예기치 못한 우연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생의 몇 할은 비워둘 필요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으면 ‘해야 할 일’을 좋아하는 수밖에 없다.”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 해야 할 일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사이,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발견이 삶에서는 큰 공부죠.
나 자신이 달라지면 세상이 미묘하게 달라 보입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온 세상이 바뀝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입니다. 미지와의 조우는 새로운 자신과의 조우이지, 낯선 환경과의 조우가 아닙니다. 새로운 자신과의 조우는 ‘자아 찾기’가 아닙니다. 이것을 오해하면 낯선 환경에서 고정된 자신, 늘 변치 않는 자신을 발견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자신을 만드는 일은 자신을 바꿔가는 작업입니다. 딱히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디에서든 새로운 자신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데 지쳤다면 사람이 아닌 것을 상대하는 편이 좋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상대하기 때문에 의심이 마음을 지배하는 겁니다. (…) 새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손을 움직이고 흙을 만져보세요. 그냥 기분이 좋다는 걸 느끼면 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비슷해진다고 표현하면 인간은 융통성 있는 생물이라는 점을 잊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계가 인간과 비슷해지는 게 아니라, 인간이 융통성 없는 기계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임에도 점점 더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게 되는 것이 현대인의 특징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새삼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는 어떤 목적을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일생이 그렇습니다. 삶의 의미나 목적을 논하려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살아온 게 아닙니다. 매일의 생활에 몰두하면, 그런 생각을 할 여유 따위가 없죠.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또는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 같은 건 모르는 게 인생입니다. 아이도 나중에 어떻게 자랄지 알 수 없죠. 그런데 도시에서 살다 보면 그런 당연한 이치를 잊게 됩니다.
자연 안에 몸을 두면 그 자연의 규칙과 우리 몸속 자연의 규칙이 공명(共鳴)합니다. 그러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연을 알든 생물을 알든 그 ‘안다는 것’의 근본에는 ‘공명’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명이 중요합니다. (…) 나는 우리 집 고양이와 공명합니다. ‘나는 일하는데, 넌 자니?’ ‘지금 뭐 하고 있니?’ 말로 하지는 않아도 늘 고양이와 공명하며 교류합니다.
도쿄대학교 명예교수. 해부학자. 일본의 대표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 각계각층 명사들이 젊은 세대에 권하고 싶은 저자로 꼽힌다. 전공인 해부학부터 의학, 과학, 철학과 사회비평에 이르기까지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통찰하는 다채로운 저술로 일본 문화계에 ‘요로 열풍’을 일으켰다.
1937년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서 태어났다. 1962년 도쿄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해부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오랫동안 도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지내다 1995년에 퇴임한 후,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으며 활발한 강연 및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일본에서만 100쇄 돌파, 45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바보의 벽》을 비롯해, 《유뇌론》 《바보의 벽을 넘어서》 《죽음의 벽》 《해부학 교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공저) 《요로 선생님 병원에 가다》(공저) 등이 있다. 산토리학예상, 마이니치출판문화특별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