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해리 홀레의 끝, 시리즈의 정점!
《스노우맨》에서 손가락을 잃고, 《레오파드》에서 얼굴 절반이 찢어진 해리.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운명의 연인 라켈 역시 도망치듯 그와 헤어졌다. 소설 《팬텀》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홍콩으로 떠난 해리가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번에 그를 오슬로로 이끈 것은 ‘올레그’였다. 라켈의 아들이자 그에게만 속마음을 털어놓던, 아들보다 더 가깝던 그 소년이 다른 소년을 죽인 혐의로 체포된 것. 그러나 해리는 이제 경찰이 아니다. 더군다나 올레그의 아버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 경찰이자 아버지의 입장에 선 해리. 진정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해리는 가장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본문 중에서
하지만 그 남자에게 시선이 간 건 슈트 때문도 큰 키 때문도 아니었다. 흉터 때문이었다. 왼쪽 입가에서 시작한 흉터는 거의 귀까지 이어져서 웃는 형상의 낫처럼 보였다. 섬뜩하고 아주 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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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은 도시의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였다. 이곳은 오슬로에서 마약 주사를 놓는 곳, 약쟁이들의 소굴이었다. 이 도시의 버림받은 아이들이 몸을 다 숨겨주지도 못하는 막사 뒤에서 제 몸에 주사를 놓고 약에 취해 날뛰던 곳이었다. 그 아이들과 멋모르고 선의를 베푸는 그들의 사회민주주의자 부모들을 가르는 엉성한 칸막이. 장족의 발전이야. 아이들은 더 아름다워진 경관에 둘러싸여 지옥행 여행길에 올랐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이곳에 선 지 3년이 흘렀다. 모든 게 새로웠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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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그. 총명하고 진지한 올레그. 내향적이라 해리 말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던 아이, 올레그. 라켈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해리는 올레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이고 뭘 원하는지 엄마인 그녀보다 더 잘 알았다. 올레그와 해리는 게임보이로 테트리스를 하면서 둘 다 똑같이 상대의 점수를 깨는 데 몰두했다. 올레그와 해리는 발레 호빈 경기장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올레그는 장거리 선수가 되고 싶어했고 소질도 있었다. 해리가 가을이나 봄에 런던에 가서 화이트하트레인 경기장에서 토트넘 경기를 보자고 약속할 때마다 어서 가자고 조르지 않고 너그럽게 웃던 올레그. 가끔 늦은 밤에 잠이 와서 몽롱할 때 그를 아빠라고 불러주던 올레그. 해리가 그 아이를 본 지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라켈이 아들을 데리고 스노우맨이라는 소름끼치는 기억에서, 폭력과 살인으로 점철된 해리의 세계에서 도망치듯 오슬로를 떠난 지도 몇 년이 흘렀다.
지금 그 아이가 저 문 앞에 서 있었다. 열여덟 살의 다 큰 소년이 아무런 표정 없이, 적어도 해리가 해석할 수 있는 표정 없이 해리를 바라보았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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