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트랜스젠더, 한 명의 시스젠더 여성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꿈꾸기 시작하다
이야기는 절대 함께하지 못할 것 같은 인물들이 얽히며 시작한다. 트랜스젠더 여성 ‘리즈’와 ‘에이미’는 연인이었지만, 에이미가 트랜스 혐오로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벅차 성환원(Detransition)을 결정하며 관계가 끝난다. 에이미는 다시 남성이 되어 ‘에임스’라는 이름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사인 시스젠더 여성 ‘카트리나’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문제는 에임스가 성전환 과정에서 잃은 줄 알았던 가임 능력이 온전했다는 것. 어느 날 카트리나가 임신 소식을 알려오고, 에임스는 혼란에 빠진다. 사회적 혐오 때문에 생물학적 남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사실 자신이 남성인지 여전히 확신이 없다. 그런데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가 되는 건 가장 ‘남자다운’ 일이어야 하지 않나?
그때 에임스에게 리즈가 떠오른다. 항상 아이를 키우고 싶어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트랜스 여성이기에 낙담하던 리즈. 에임스와 헤어진 뒤로 리즈는 소모적인 관계만 반복하며 지내고 있었다. 어쩌면 셋이서 가족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카트리나, 에임스, 리즈는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한다.
혼란한 시대에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그들’로 명명되기를 거부하는 ‘우리’의 이야기
리즈, 에임스, 카트리나는 각자의 상황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함께한다. ‘소수자 인물을 미화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처럼 결함 있는 존재로 그려낸다’라는 〈뉴요커〉 리뷰처럼 《디트랜지션, 베이비》는 인물들을 마냥 정의롭거나 올바른 존재로 만들지 않고, 어떻게든 행복과 자존을 찾으려는 여정을 그려낸다. 리즈는 트랜스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긍정하려 하면서도 연애와 섹스로만 정체성을 확인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성환원을 택한 에임스는 정체성 혼란을 끊임없이 겪으며 타인과의 관계에 서투른 모습을 보여준다. 카트리나는 임신과 에임스의 커밍아웃에 충격받고도 다른 소수자들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러 갈등과 오해를 빚기도 한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고통받으면서도, 끝내 함께 행복하고자 유머를 잃지 않고 서로에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
《디트랜지션, 베이비》는 트랜스젠더의 삶과 사랑을 누구보다 가까이 그려내면서 오늘날 사랑과 관계의 의미를 묻는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의 형태는 얼마나 다양할 수 있을까? 부모란 무엇이며, 예전과 다른 방식의 가족을 이루는 것도 가능할까? 결국 작중 인물들이 겪는 혼란과 선택과 변화는 트랜스젠더 서사뿐 아닌 현대의 관계 맺기에 대한 보편적 고민으로 확장된다. 기존 젠더 규범과 가족 구조를 해체하면서도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묵직한 주제를 매력적인 이야기로 직조한 작품. 유머 넘치는 문체, 드라마보다 생생한 대화, 현대의 인물을 정교하게 재현한 리얼리티……. 《디트랜지션, 베이비》는 문학이 충분히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용감하게 끌어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새롭고도 가슴 벅찬 소설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