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필립 로스. 어서 와서 나를 잡아봐.”
허구와 현실을 넘는 필립 로스의 급진적 문학 실험
필립 로스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여러 편 집필했는데, 《샤일록 작전》은 그중 가장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필립 로스’라는 인물을 활용한다. 소설은 작중의 필립 로스가 기이한 소식을 들으며 시작된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자신을 사칭하며 돌아다닌다는 것. 사칭범은 예루살렘의 전범 재판을 방청하고, 유력 정치인을 만나 정치적 주장을 공표한다. ‘유대인은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른바 ‘디아스포리즘’을 주창하며 이스라엘 우파 정치인들의 심기를 거스르기도 한다. 소식을 들은 진짜 필립 로스는 사칭범의 연락처를 찾아내 전화를 거는데, 사칭범은 뻔뻔하게도 그 순간에도 스스로를 ‘필립 로스’라고 소개하며 각종 파격적 발언을 이어간다.
결국 진짜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로 가서 사칭범을 대면하기로 한다. 예루살렘에서는 나치 집권기의 수용소 간수로 의심받는 인물의 재판이 한창이고, 팔레스타인인의 봉기는 점차 격화되고 있다.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에 있는 다양한 인물과 만난다. 필립 로스의 친척 ‘앱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겪은 폭력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점령지 라말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팔레스타인 출신 ‘조지’는 이스라엘 압제에 관해 열변을 토하고,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유대인 노인 ‘스마일스버거’는 이제 유대인이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며 ‘성경에 새로운 장이 하나 더 생긴다면, 하느님이 죄를 지은 이스라엘 민족을 파괴하려고 일억 명의 아랍인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거기 실릴 것’이라고 말한다. 필립 로스를 사칭하는 수수께끼의 인물은 스스로 반유대주의와 싸우는 투사라고 한다. 그렇게 예루살렘을 떠돌던 중,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그 이면의 첩보작전에 휘말리게 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정면으로 다룬
필립 로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장편소설
유대인 정체성은 필립 로스가 천착해온 주제였다.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성장한 필립 로스는 자전적 작품을 다수 집필했으나, 자신이 ‘유대인 작가’로 한정되기를 경계하며 ‘유대인으로서의 경험을 한 미국 작가’로 이해되기를 바랐다. 유대인과 유대인 사회에 관한 작품을 쓸 때도 그 주제에 매몰되지 않고 입체적 이야기를 펼쳤다. 1969년 작품 《포트노이의 불평》에서는 성적 죄의식에 얼룩진 미국 유대인을 풍자하면서 ‘욕망과 죄악, 자유와 억제’라는 보편적 주제로 다가갔다. 《유령작가》에서는 ‘만약 안네 프랑크가 살아남았다면?’이라는 도발적 상상력으로 ‘안네 프랑크’라는 상징을 한 명의 인간으로 되살려, 유대인에게 덧씌워진 희생자 이미지를 해체했다. 즉 필립 로스는 자신의 정체성에서 이야기를 출발하면서도 역사가 인간 개개인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보편적 고민거리를 파고들었다.
필립 로스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정면으로 다룬 최초이자 마지막 소설인 《샤일록 작전》은 더욱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유대인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억압받은 민족 혹은 소수자는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가. 작중 필립 로스는 사칭범과 격렬한 대화를 나누는데, 분열된 자아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이 장면은 유대인의 복잡한 정체성에 관한 심도 있는 탐구처럼 보인다. 분쟁 지역을 떠돌며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에 놓인 당대 인물들, 심지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개입하는 정보기관 요원과 나누는 대화는 흡사 현실 정치에 관한 현대 플라톤의 《대화》를 연상시킨다. 《샤일록 작전》은 이처럼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가면서, 특정한 민족 혹은 소수자 집단이 항상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일 수 없는 세계의 복잡성을 올올이 드러낸다.
포스트모던 문학의 정점이자 생생한 역사적 증언
오늘의 세계적 갈등을 직시하는 필립 로스의 통찰
《샤일록 작전》은 작중의 필립 로스가 이스라엘에서 겪는 여러 사건을 서술하는데,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분명치 않다. 서두에서 화자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음을 밝히며 사건의 주요 관계자들을 위해 몇몇 이름은 실명과 다르게 바꾸었다고 한다. 화자는 작중에서 첩보작전에 가담하게 된 경험을 《샤일록 작전》이라는 책으로 펴내려 하는데, 정보기관 관계자에게서 ‘이곳에서 겪은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 책으로 쓰려거든 일부 내용을 지우고 소설의 형태로 발표하라’는 협박을 받는다. 따라서 《샤일록 작전》이라는 소설은 작가가 전부 실제로 겪은 일일 수도, 혹은 전부 허구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담지하게 된다. 현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지움으로써 《샤일록 작전》은 소설 형식을 뛰어넘는 포스트모던 문학으로서의 매력을 지닌다.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샤일록 작전》은 지금 읽기에 오히려 시기적절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더 격화되었다. 집권 전부터 반전시위 진압을 보며 ‘아름다운 광경이었다’라며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를 미국에서 추방하자’라는 등 극단적 발언을 쏟아냈던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가자지구를 미국이 점령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역사의 폭력은 계속되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수시로 뒤바뀐다. 필립 로스는 허구와 현실, 개인과 역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세계의 복잡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정치적 현실이라는 발톱이 개인에게 얼마나 깊은 흉터를 남기는가를 탐구했다. 《샤일록 작전》에서 제시하는 질문들, 즉 역사와 현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고민은 오늘날 갈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준다. 1993년 현지 출간되어 이듬해 펜/포크너상을 수상한 《샤일록 작전》은 삼십 년이 더 흐른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시대를 아우르는 불후의 문학 작품으로서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