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과거는 미세한 입자가 되어 바다에 흩뿌려졌다 한여름 햇빛 아래, 요란하고 투박한 소음과 함께” 1억 원 고료 문학상 수상, 전세계 8개국 수출 작가 이선영 신작
역사와 신화를 관통하는 압도적인 서사로 1억 원 고료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한 등단작 《천 년의 침묵》, 전세계 8개국에 수출하는 쾌거를 달성한 힐링 소설 《보테로 가족의 사랑 약국》, ‘전생 상담소’라는 독창적인 소재로 밀리로드 연재소설 1위를 차지한 《하나도 못 맞히는 점집》……. 문학성과 소설적 재미를 동시에 만족하는 작품 세계를 선보여온 작가 이선영의 신작 《그물을 거두는 시간》이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오래전에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고스트라이터 윤지와 빼앗긴 삶을 되찾으려는 디자이너 오선임. 본작은 두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깊게 새겨진 폭력과 죄책감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진실한 태도가 무엇인지 첨예하게 탐구한다. 서울문화재단 창작 지원사업 선정작이다.
P.35
이런 몹쓸 짓을 한 사람이 누굴까. 이 앨범의 임자는 나였고, 누군가가 이 방에 들어와서 앨범을 이렇게 훼손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가 생각해도 뻔했다. 하지만 내 기억은 앨범에서 도려낸 강수진의 사진처럼 깨끗이 사라진 채였다.
P.71
어떤 상황이 벌어졌든 간에 내 기억은 정지되었다. 이후에 전개된 일들은 머릿속에서 하얗게 휘발되며 미세한 입자가 되어 허공에 흩뿌려졌다. 마치 한여름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 시야가 하얗게 바래듯이.
P.123-124
“이모의 재산 때문인 거지. 이혼한 후 이모부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이모부는 이모 재산을 터치할 권리가 없어질 테니까.” 차한수는 검지로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그럼 그게 이모님이 자서전을 내고 싶어 하시는 이유라는 거야? 너무 메리트가 없잖아.” “그게 다는 아니고…….” 머리를 넘기면서 말을 흐렸다. “너는 알고 있지만 나한테 말을 안 하는 건 아니고?”
P.140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 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환영받지 못한 시스템이었어. 인간이 인간 자체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거스를 수 없는 거야. 그런데 그것과 대치되는 상황에 직면했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던 거지.”
P.220
“정말 강수진 씨의 죽음에 관한 진위를 모르신단 말입니까? 짐작도 안 되나요?” 민혁의 목소리에서 흥분과 노기가 느껴졌다. 민혁은 나를 만난 이후로 계속 몰아세우기만 했다. 나한테 죄책감을 깨닫게 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똘똘 뭉친 사람 같았다.
'목차'는 준비 중입니다.
저자이선영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양여자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 《천 년의 침묵》으로 1억 원 고료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외의 책으로 《지문》 《하나도 못 맞히는 점집》 《보테로 가족의 사랑 약국》 《못찾겠다 꾀꼬리》 《신의 마지막 아이》 《그 남자의 소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