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베첸토
88개의 유한한 건반으로 무한한 음악을 연주하는 일. 빅토리아 호가 전쟁으로 망가져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파될 때조차 그는 배를 떠나지 않으려 한다.
#모던앤클래식문학
노베첸토 알레산드로 바리코 저자
  • 2018년 08월 10일
  • 92쪽126X192mm비채
  • 978-89-349-8229-6 04880
노베첸토
노베첸토 저자 알레산드로 바리코 2018.08.10

리드미컬한 문단과 멜로디를 선사하는 문장들.

바리코의 글은 아름답게 직조된 음악이다.

_<시카고트리뷴>

 

타이타닉 호를 닮은, 물 위의 작은 도시 빅토리아 호. 이곳에서 태어나 일생을 바다를 떠돌며 연주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있다. 단 한 번도 육지를 밟은 적 없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그는 ‘존재한 적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떨친다. 그럼에도 육지로 나아가 넓은 세상을 만나는 대신 꼭 2000명만큼의 세상을 접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한 그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정의한다. 88개의 유한한 건반으로 무한한 음악을 연주하는 일. 훗날 빅토리아 호가 전쟁으로 망가져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파될 때조차 그는 배를 떠나지 않으려 한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과 음악극 <노베첸토>로 먼저 알려진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모놀로그 《노베첸토》가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책 속에서

 

우리는 음악을 연주했고, 그는 어딘가 달랐다. 그가 연주한 것은…… 그가 연주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어디에도 없는 그런 것. 대니 부드먼 T.D. 레몬 노베첸토. 그가 피아노에서 일어나면 그 음악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원히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폭탄 위에 앉아 있었다. 진짜로. 어마어마한 다이너마이트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_23페이지

그를 발견한 사람은 대니 부드먼이라는 이름의 선원이었다. 보스턴 항구에 도착한 어느 날 아침, 승객들이 모두 내린 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그를 발견한 것이다. 태어난 지 열흘 남짓 된 것 같았다. 상자 안에서 울지도 않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얌전히 누워 있었다. 아기는 일등실의 연회장에 남겨져 있었다. 피아노 위에. 하지만 일등실 승객의 아기 같진 않았다. 보통 이민자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배 안 어딘가에 숨어서 출산을 하고 아기들을 두고 가는 짓 말이다.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가난이 죄지. 그 지독한 가난 때문이다.

_25페이지

 

바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바다가 탈선했다/ 하늘을 향해 물을 내뿜는/ 폭발한다/ 씻어낸다/ 바람에게서 구름과 별을 걷어낸다/ 언제까지/ 미쳐/ 날뛸지/ 아무도 모른다/ 하루가 지나면/끝나겠지/ 맙소사/ 이런 말은 없었잖아요, 이런/ 자장가처럼/ 바다가 당신을 흔들며 어른다/ 쥐뿔 어르기는/ 맹렬히/ 주위에는 온통/ 거품과 고통/ 미친 바다/ 보이는 거라곤/ 오로지 어둠과/ 어두운 장벽/ 소용돌이/ 모두가 침묵한 채/ 멈추기를/ 기다린다/ 맙소사 침몰은 싫어요/ 바다가 잔잔해지길/ 고요하게/ 당신을 비추기를/ 이런/ 미치광이 같은/ / 장벽과/ 이 소리가/ 사라지기를 원해요/

우리가 알던 바다를 원해요

고요하고

빛나며

수면 위로

날치가

날아다니는

바다를 돌려주세요

_35페이지

 

청중은 숨 죽이고 연주를 감상했다. 모두 숨이 멎은 듯했다. 시선은 피아노에 고정한 채 영락없는 바보처럼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백 개의 손으로 연주한 듯하고 당장이라도 피아노가 터져버릴 것 같았던 그 폭발적인 코드 진행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말을 잇지 못했고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_57페이지

 

그가 그런 적이, 불행했던 적이 있기는 했는지 의문이다. 그는 행복한지 어떤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노베첸토이고 그 이상은 아니다. 그가 행복이나 고통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초월한 것 같았고 무엇과도 상관없는사람 같았다. 그와 그의 음악 말고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불행할 거라는 생각은 마.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 그의 이 말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_69페이지

 

 

'책 속에서'는 준비 중입니다.
'목차'는 준비 중입니다.
작가이미지
저자 알레산드로 바리코 (Alessandro Baricco)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음악학자, 극작가, 영화감독, 문예창작교수. 1958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나 아도르노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비슷한 시기에 음악원을 다녀 피아노 분야의 학위도 받았다. 몇 해 동안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유력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에서 음악평론가로, <라 스탐파>에서 문화시평가로 활동했으며 철학적 사유와 음악에 대한 식견을 결합한 음악 에세이를 발표하여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1991년 출간한 첫 소설 《분노의 성》이 캄피엘로상 결선에 오르면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고, 이어 메디시스 외국문학상을 받으면서 앞서 수상한 밀란 쿤데라, 움베르토 에코 등의 계보를 잇는, 프랑스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세계 작가로 발돋움했다. 1970년대에 몰아닥친 동결의 찬 기운 속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단순한 기쁨을 위해 글을 쓰는 작가가 드물던 당시 문학계에 나타난 바리코의 소설은 바로크적이면서도 생기 넘치고, 기이하고도 매력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작은 은하와도 같았다. 1993년 두 번째 소설 《오케아노스 바다》로 비아레조상과 팔라초 알 보스코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컬트 작가’가 된다. 같은 해 TV에서 음악 프로그램과 문학 프로그램을 맡아 눈 밝은 길잡이로도 나섰는데, 방송이 나간 다음날이면 수천, 수만의 독자들이 그가 소개한 책을 구하려고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베를루스코니 집권 후 방송계를 떠나기로 결심한 바리코는 1996년 세 번째 소설 《비단》을 출간, 극장에 청중을 모아놓고 작품 전체를 낭송하는 이채로운 행사를 벌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비단》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99년 발표한 네 번째 소설 《시티》역시 혁신을 추구하는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야기들이 동네가 되고 인물들이 거리가 되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발상과 독자를 전개에 참여시키는 서사도 참신하지만, 작가가 텍스트를 낭송하는 ‘시티 리딩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를 만나고 그 결과를 책에 담은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2005년, 바리코는 여섯 번째 소설 《이런 이야기》를 발표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포함한 전유럽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역대 최강의 라이더’라 불리는 이탈리아 레이서 발렌티노 로시를 기리는 뜻에서 구상한 것이지만, 자동차 경주와 길, 서킷,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신비로운 계기, 우정과 사랑, 꿈의 실현 등과 같은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걸작이다. 그 후로도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의 테마를 다룬 소설 《엠마오》(2009), 독창적인 발상과 서사 기법을 보여주는 소설 《미스터 귄》(2011)과 《새벽에 세 번》(2012) 등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바리코는 연극과 영화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1994년 발표한 모노드라마 《노베첸토》(비채 근간)는 연극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1998년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전설>로 영화화되었고 한국에서도 독특한 형태의 음악극으로 만들어져 공연되었다. 1997년에는 재즈 연주를 닮은 연극 <토템: 읽기, 소리, 수업>을 무대에 올렸으며 2008년에는 시나리오 집필은 물론 감독까지 맡은 영화 <스물한 번째 강의>를 발표했다. 문예 창작 교육 분야에도 남다른 관심과 열의를 쏟고 있는 그는 1994년 문우들과 함께 ‘홀든 학교’라는 문예창작학교를 창설, 20년 동안 젊은이들에게 서사 기법을 가르치고 있다. 또 축구 애호가이기도 해서 이탈리아 작가 축구팀 ‘오스발도 소리아노 축구 클럽’을 창설, 등번호 10번을 달고 미드필더로도 활약했다.

'출판사 리뷰'는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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