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이성과의 건전한 교제, 학업 정진, 육체 단련 등 사회에 유익한 인재가 되기 위한 포석을 쏙쏙 빼버리고 이성으로부터의 고립, 학업 방기, 육체의 쇠약화 등 깔지 않아도 되는 포석만 족족 골라 깔아댄 것은 어인 까닭인가. 책임자를 추궁할 필요가 있다. 책임자는 어디 있나.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모리미 도미히코 저자 권영주 역자
  • 2025년 03월 21일
  • 388쪽137X197mm무선비채
  • 979-11-7332-116-0 03830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저자 모리미 도미히코 2025.03.21
엉뚱하고 발칙한 예측불허의 전개, 평행우주를 구현한 듯 나란한 네 가지 이야기, 구제불능이라 더 사랑스러운 캐릭터, 고풍스러움으로 무장한 특유의 스타일… 전무후무한 개성으로 사랑받아온 모리미 도미히코의 대표작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가 한국어판 출간 17년 만에 전면개정판으로 다시 태어났다.
 
문고본 출간 당시 작가가 직접 개고한 내용을 충실히 반영했으며, 번역자 권영주 또한 전체 원고를 새로 가다듬었다. 동명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나카무라 유스케의 일러스트로 꾸민 표지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존 독자에게는 새로운 감동과 즐거움을, 첫 독자에게는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P.9
대학 3학년 봄까지 이 년간, 실익 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노라고 단언해두련다. 이성과의 건전한 교제, 학업 정진, 육체 단련 등 사회에 유익한 인재가 되기 위한 포석을 쏙쏙 빼버리고 이성으로부터의 고립, 학업 방기, 육체의 쇠약화 등 깔지 않아도 되는 포석만 족족 골라 깔아댄 것은 어인 까닭인가. 
책임자를 추궁할 필요가 있다. 책임자는 어디 있나.
P.14-15
오즈와 나의 만남에서 이 년을 훌쩍 건너뛴다.
3학년이 된 5월 말이었다. 
나는 사랑하는 다다미 넉 장 반에 앉아 가증스러운 오즈와 마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기고하는 곳은 시모가모 이즈미가와초에 있는 시모가모 유스이 장이라는 하숙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막부 말기의 혼란기에 불에 탔다 재건된 이래로 바뀐 데가 없다고 한다. (…)
그날 밤, 오즈가 하숙에 놀러왔다. 
둘이 음울하게 술을 마셨다. “먹을 것 좀 주세요”라고 하기에 핫플레이트에 어육 완자를 구워주자, 딱 한 입 먹고 ‘제대로 된 고기가 먹고 싶다’ ‘파 소금장을 얹은 소 혀가 먹고 싶다’ 하고 사치스러운 소리를 했다. 울화통이 터져 지글지글 구워진 뜨거운 완자를 입에 쑤셔 넣어주자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에 용서해주었다. 
P.148
스승님이 그렇게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면 어쩐지 고귀함이 느껴진다. 시모가모 유스이 장처럼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다다미 넉 장 반에는 전혀 걸맞지 않고, 어느 유서 깊은 가문의 젊은 도련님이 세토 내해를 항해하던 중에 난파당해 이 누추한 다다미 넉 장 반이라는 고도에 표류한 것처럼만 보였다. 그렇건만 스승님은 낡아 후줄근해진 유카타를 버리지 않고, 육수로 삶은 듯한 다다미를 깐 넉 장 반에 눌러앉아 있었다. 
“가능성이라는 말을 무한정으로 쓰면 아니 되는 법. 우리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닌 가능성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불가능성이다.”
작가이미지
저자 모리미 도미히코 (Tomiko Morimi)

고뇌하는 젊음을 독창적인 문체로 유쾌하게 그려내는 언어의 마법사!

일본 나라 현 출생. 교토대학 농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원 재학 시절인 2003년, 자신이 살고 있는 교토를 무대로 한 《태양의 탑》으로 제15회 일본 판타지소설 대상 수상과 함께 소설가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출간한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여우 이야기》《밤은 짧으니 아가씨여 걸어라》《신역 달려라 메로스》《유정천 가족》 다섯 작품 모두 교토대학이 있는 교토시 사쿄구(左京區)를 무대로 하고 있는 탓에 ‘사쿄구의 천재’ 또는 ‘교토 작가’라 불리고 있다.

2006년 출간된 《밤은 짧으니 아가씨여 걸어라》는 제20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하고, 전국 서점 직원들이 직접 뽑는 ‘일본서점대상’ 2위에 올랐다. 모리미 도미히코는 이후 출간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는 등 21세기 일본을 짊어질 작가로 크게 주목받는다.

모리미 도미히코는 오랜 글쓰기 끝에 의고체(擬古體)를 응용한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개발했는데, 이 새로운 문체는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일본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명 작가 기타무라 가오루 또한 모리미 도미히코에 대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힘’이 있다. 이 힘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미가 넘치는 독특한 문체에서 나온다”라고 평했을 정도이다.

한때 의학부 진학을 희망하기도 했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지만, “교토대학에는 이상한 녀석이 잔뜩 있다”는 아버지의 권유에 주저 없이 교토대학 입학을 결정했을 정도로 엉뚱한 일면도 있는 모리미 도미히코는 현재 교토의 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소설 창작에 전념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학 3학년 봄까지 2년간, 실익 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노라고 단언해두련다!”
바야흐로 3학년 봄을 맞아, 2년간의 대학 생활을 돌아보던 ‘나’는 학업도 연애도 운동도 자기수련도 무엇 하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다다미 넉 장 반 크기의 자취방에 틀어박혀 시간만 흘려보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탄한다. 곰곰이 생각을 더듬어 찾아낸 허송세월의 원흉은 하나뿐인 친구이자 원수 ‘오즈’, 그리고 녀석을 처음 만난 동아리 활동이었다. 혹시 1학년 때 다른 동아리를 택했다면, 그래서 오즈를 만나지 않았다면 꿈같은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구가할 수 있었을까?
 
모리미 도미히코의 대표작, 한국어판 출간 17년 만의 전면개정판!
공전절후의 매력과 가공할 개성으로 등장과 동시에 일본 문화예술계 전반을 발칵 뒤집어놓은 천재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부터 《유정천 가족》 《펭귄 하이웨이》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야행》 《열대》까지, 선보이는 작품마다 주요 문학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베스트셀러 랭킹을 독점하는 등 누구보다 꾸준하게, 뜨겁게 사랑받는 작가다. 그런 그를 거론할 때 맨 앞에 놓일 대표작이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 2007년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라는 제목으로 한국 독자에게 모리미 도미히코의 존재를 처음 알린 이 작품이 17년 만의 전면개정판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 개정에는 문고본 출간 당시 작가 본인이 전격적으로 개고한 내역을 충실히 반영했으며, 번역자 권영주 또한 오늘의 감각으로 전체 원고를 새로이 가다듬었다. 동명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나카무라 유스케의 일러스트를 표지에 채용, 안팎이 모두 새로운 책으로 재탄생되었다.
 
고풍스러움과 현대미, 유머와 감동까지 겸비한
모리미 도미히코 교토 청춘 판타지의 정점!
내내 티격태격하는 두 얼간이 ‘나’와 ‘오즈’, 가장 냉철하지만 어딘지 느슨한 ‘아카시’, 어째서인지 스승으로 군림하는 ‘히구치’, 막무가내 근육파 ‘조가사키’, 대학생을 쥐락펴락하는 ‘하누키’…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속 인물들은 사실적이면서도 황당무계하고, 누구보다 진지하지만 어이없을 만큼 우스꽝스럽다.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이 시종 좌충우돌하는 이야기인가 싶으면, 인생의 항로를 정해가야 하는 청춘만의 고뇌가 진득이 배어난다. 누군가는 동 세대의 고민을 공감하며 읽어갈 터이고, 누군가는 지나쳐온 찬란한 시절을 돌아보며 찡한 그리움에 젖게 될지도 모를 일.
 
작가 본인이 대학 시절을 보낸 교토를 배경으로, 예스러운 단어와 표현이 빼곡한 특유의 의고체 스타일을 통해, 현실과의 경계마저 모호해지는 환상성 짙은 이야기를 펼쳐간다는 점이 ‘다다미 넉 장 반’ 특유의 맛이자 멋이라 해도 좋겠다. 충만한 개성으로 똘똘 뭉친 이 기상천외한 소설에 ‘교토 청춘 판타지’라는 별칭이 붙은 것 역시 무리는 아닐 터. 청춘소설 같기도 하고, 평행우주론에 근거한 SF 같기도 하고, 여러 얼간이의 한바탕 소동극 같기도 한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를 한두 문장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 독자는 그저 천부적이고 독보적인 이야기꾼이 한껏 벌여놓은 ‘이상한 이야기’를 마음껏 웃고 즐기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