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의 역사를 전하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데뷔작!
#모던앤클래식문학#리처드브라우티건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A Confederate General from Big Sur 리처드 브라우티건 저자
  • 2017년 02월 26일
  • 224쪽126X192mm비채
  • 978-89-349-8074-2 04840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A Confederate General from Big Sur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 2017.02.26
무라카미 하루키부터 오가와 요코, 장석주, 최승자, 김동영, 김애란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작가들의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데뷔작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이 출간되었다. 꾸준히 브라우티건의 소설을 소개해온 비채에서 《미국의 송어낚시》《워터 멜론 슈가에서》《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임신중절 _어떤 역사 로맨스》에 이어 출간하는 다섯 번째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인 ‘빅서Big Sur'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예술가들의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저명한 작가 헨리 밀러와 잭 케루악 역시 이 황량하고도 낭만적인 해변에 매혹되어 글을 썼고, 심지어 헨리 밀러는 이야기 속에 잠시 등장하기까지 한다. 이곳에서 허송세월하는 화자 제시와 ‘장군의 후손’ 리 멜론, 그리고 개구리 7452마리가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엉뚱하고 기상천외하면서 더없이 사랑스럽다. 이 소설로 브라우티건은 성공적인 데뷔를 이루었고, 먼저 써놓은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도 발표할 수 있었다. 이후 그를 눈여겨본 커트 보네거트가 자신의 출판사에 그를 소개하면서 인기 작가로 발돋움했다.
P.28
부두에는 어디론가 떠나는 배가 있었다. 노르웨이 배였다.
어쩌면 다시 노르웨이로 돌아가는 배인지도 몰랐다. 세계 상업거래의 일환으로 케이블카 163대를 싣고 가는 배.
아, 그것이 바로 무역이었다. 한 나라의 물건을 다른 나라의 물건과 교환하는 것. 초등학생들처럼. 그들은 오슬로의 비오는 봄을 샌프란시스코의 케이블카 163대와 바꾸었는지도 모른다.
P.29
그래, 갈매기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 우리는 아주 피곤했고, 여전히 취해 있었으며, 숙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갈매기 생각을 할 수도 있지. 그건 쉬운 일이야. 갈매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북소리처럼 하늘을 가로질렀다.
P.57
한번은 그가 내게 말했다. “난 다섯 달 동안이나 섹스를 못 했어.” 그 말을 하면서 그는 마치 날씨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태연했다.
“비가 올 것 같아?”
“아니. 왜 비가 와야 하는 건데?”
P.76
힘내, 친구야! 아직 빅서에서 너를 기다리는 리 멜론과 오두막이 있잖아. 아주 좋은 오두막이야. 태평양 해안 절벽에 있는 오두막이지. 난로가 있고 삼면이 유리로 되어 있지. 아침이면 침대에 누워서 수달들이 그 짓을 하는 걸 볼 수 있지. 아주 교육적이야!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이야.
P.91
개구리들은 언제나 하나가 울면, 다른 하나가 울고, 이윽고 7452마리가 한꺼번에 울었다.
P.97
사실 매일 밤, 나는 매 챕터의 구두점을 세고 있다. 나는 노트에 구두점의 숫자를 기록한다. 나는 그 노트를 ‘전도서의 구두점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나는 그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일종의 공학연구의 일환으로 그 일을 하고 있다.
내 노트의 요약은 이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전도서의 첫 장은 57개의 구두점으로 되어 있는데, 다시 나누면 22개의 쉼표와 8개의 쌍점, 8개의 세미콜론, 그리고 2개의 물음표, 17개의 마침표로 이루어져 있다.
전도서의 두 번째 장은 구두점이 모두 103개인데, 45개의 쉼표와 12개의 세미콜론, 15개의 쌍점, 6개의 물음표, 25개의 마침표로 되어 있다.
전도서의 세 번째 장에는 77개의 구두점이 있는데, 33개의 쉼표와 21개의 세미콜론과 8개의 쌍점, 그리고 3개의 물음표와 12개의 마침표로 되어 있다.
전도서의 네 번째 장은 구두점이 모두 58개인데, 그중 쉼표가 25개, 세미콜론이 9개, 쌍점이 5개, 그리고 물음표가 2개, 마침표가 17개 있다.
전도서의 다섯 번째 장은 67개의 구두점으로 되어 있는데, 쉼표가 25개, 세미콜론이 7개, 쌍점이 15개, 물음표가 3개, 그리고 마침표가 17개이다.
이것이 내가 빅서의 밤에 등불 옆에서 하는 일이다.
P.117
우리가 마치 조그만 나라가 유엔에 가입하듯 하나가 되었을 때, 나는 상상 속에서 리 멜론이 술집 바닥에 카드보드를 덮고 누워 있는 장면을 열두 번쯤 보았다.
P.153
그날 밤은 서늘했고, 별들도 흐드러졌다. 반짝이는 별들, 나를 너에게 인도해준 별들.
P.154
우리는 알파벳 수프에서 수저로 알파벳을 건지는 장님처럼 어두운 길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나아갔다.
“왜 등불을 안 갖고 왔어?” 일레인이 말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야.”
“우린 여기 없잖아.” 그녀가 말했다.
프롤로그

제1부 빅서에서 온 남부의 장군
빅서에서 온 남부의 장군
밀물과 썰물 같은 리 멜론의 치아
내가 리 멜론을 처음 만났을 때
남부 장군 오거스터스 멜론
본부
태평양 가스·전기 회사에 대한 용감한 기병대의 공격

제2부 빅서에서 리 멜론과 벌인 캠페인
도착한 편지와 답장
빅서에서 딱딱한 빵 부수기
전도서에 대비하기
전도서의 대못
살려달라고 빌다
트럭
인생의 중간에서
6달러 72센트의 극대화
게티즈버그로! 게티즈버그로!
멋진 날
모터사이클
개구리여, 안녕
담배 의식
다시 광야로
폭찹 악어
광야의 악어 하이쿠
그는 대개 정원 옆에서 지냈다
나무 찍는 소리
남북전쟁 이후의 간략한 미국사
리 멜론의 새너제이 근육
빅서의 캠프 파이어
월계관의 발견
리 멜론이여, 굴러가라! 구르는 강처럼
악어에서 폭찹을 빼면
네 커플: 미국의 이야기
북소리에 깨다!
잘 가라, 로이 얼, 잘 지내
월계관을 쓰다, 우리 앞의 깃발, 우리는 하강한다!
석류의 결말, 1초에 186000의 결말
두 번째 결말
세 번째 결말
네 번째 결말
다섯 번째 결말
1초에 186000번의 결말

해설_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꾸는 목가적 꿈
작가이미지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 (Richard Brautigan)

1935년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에서 태어나 오리건 주 유진에서 자랐다. 1957년 비트 작가들의 본거지인 샌프란시스코로 거주지를 옮겼고, 그들과 함께 미국의 반문화 운동을 주도하며 1960년대 초반까지 세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 미국인의 삶에 대한 세심한 통찰로 전미 젊은이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그는, 1967년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특이한 형태의 소설을 출간해 전 세계 문단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젊은이들은 이 소설에 담겨 있는 강렬한 반체제 정신, 기계주의와 물질주의 비판, 목가적 꿈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허무감 등에 매료되어, 마치 성서처럼 이 책을 늘 들고 다녔다고 한다. 『미국의 송어낚시』가 미국의 진보주의와 생태주의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달에 다녀온 미국의 우주인들은 자신들이 최초로 지구에 가져온 운석에 '미국의 송어낚시 쇼티'라는 이름을 붙여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보관했고, 한 포크록 그룹은 '미국의 송어낚시'라고 그룹 이름을 짓는 등 브라우티건의 소설은 한 세대의 정신을 움직일 정도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워터멜론 슈가에서』는 그가 196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앞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동화적 은유와 시적 표현들로 대중들에게 또 다른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임신중절: 역사적 로망스』(1971), 『호킨스 괴물: 고딕 웨스턴』(1974), 『바빌론 꿈꾸기 : 탐정소설』(1977), 『바람이 다 날려버린 건 아냐』(1982) 등을 출간하며 미국 문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84년, 브라우티건은 마흔아홉 살의 나이에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신은 그의 행방을 찾던 출판사에서 고용한 사립탐정에 의해 발견되었고 결국 정확한 사망 날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꾸는 목가적 꿈, 잃어버린 자유…
그리고 186000갈래로 활짝 열린 결말!

‘만일 남북전쟁에서 남부연합군이 승리했다면, 미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의 역사학자들은 종종 이 질문을 던지며 일종의 평행우주 혹은 가상현실 속 미국의 모습을 그려본다고 한다. 그 상상 속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가치가 담겨 있지는 않을까? 여기 자신이 용맹한 남부 장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괴짜 남자 ‘리’가 있다. 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황량한 해변 마을 ‘빅서’로 이주한 리는 친구 ‘제시’를 불러 함께 허송세월한다. 전기도 전화도 가스관도 없는 빅서에는 쉴 새 없이 울어대는 7452마리의 개구리와 곧 만나게 될 정신병자와 두 마리의 악어,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1957년에 브라우티건은 부인 버지니아와 함께 빅서에 가서 약 한 달 동안 친구 프라이스 던과 지냈다. 개구리가 울어대는 연못과 태평양의 풍경, 빅서에서 만난 돈 많은 정신병자 등 그가 보고 듣고 겪은 모든 것이 이 책의 배경과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빅서는 1960년대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반문화(Counter Culture)의 요람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시인 앨런 긴스버그와 소설가 잭 케루악, 헨리 밀러가 브라우티건보다 먼저 빅서를 찾았다. 1962년 발표된 잭 케루악의 《빅서》와 1957년 헨리 밀러가 발표한 자서전 《빅서와 히에로니무스의 오렌지들》에는 이들이 빅서에서 보낸 한철과 비트정신 예찬이 담겨 있다. 헨리 밀러는 소설 속에 잠시 등장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헨리 밀러의 우편함을 지나갔다. 그는 낡은 캐딜락에 앉아서 우편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헨리 밀러가 있네.” 내가 말했다.) 이처럼 태평한 빅서의 풍경과 엉뚱한 인물들을 더욱 낭만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는 다름 아닌 전쟁이다. 장군의 후손 리 멜론을 과거의 영광과 이어주는 것 역시 전쟁이다. 챕터 말미에는 잔혹하고 인간성이 말살된 남북전쟁 당시의 기록들이 담겨 있다. 전쟁의 참상과 빅서의 이야기를 번갈아 읽으며 독자는 소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은유임을 발견할 것이다.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은 독특한 내러티브 테크닉으로, 과거를 거울 삼아 현재를 패러디하는 뛰어난 소설이다. 남북전쟁 당시, 16세의 소년병이 59세의 노병 옆에 군복을 입고 나란히 죽어 있는 모습은 그 소년병의 미래를 보여주는 강렬한 은유처럼 보인다. 마지막에 등장인물들은 현실과 기계를 떠나, 낭만적인 바다와 파도를 마주 보고 다시 한 번 환상적인 꿈을 꾼다. 꿈과 환상이 없는 인간의 삶이란 불행하고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_김성곤(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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