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제1회 주니어김영사 어린이문학상 공모 당선작 발표

2025.02.28


제1회 주니어김영사 어린이 문학상 공모전 발표

 

대상

한소곤 《맵고 짜고 달달한 심부름 이야기》

 

심사위원

김리리(동화작가), 보린(동화작가), 원종찬(아동문학평론가)

 

제1회 주니어김영사 어린이 문학상 공모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모두 178편의 작품이 접수되었습니다.
본심에 오른 5편에 대한 심사평을 아래에 공개합니다.
주니어김영사 어린이 문학상에 응모해 주신 모든 작가님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

 

제1회 주니어김영사 어린이 문학상 심사평

 

누구나 첫 출발점에선 가슴 설레는 기대감을 품게 마련이다. 제1회 공모 심사를 맡은 위원들은 뿌듯한 느낌과 함께 어깨가 사뭇 무거워지는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총 178편에 이르는 실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일상적인 고민을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을 비롯해서 추리, 역사, SF, 판타지, 무협, 법정 드라마 등등. 응모 작품 대다수가 뜻도 좋고 문장과 서술 면에서는 큰 흠결 없이 안정적인데 인물의 개성과 플롯 운용 면에서는 실력 차이가 확연했다. 인물이 개성적이지 않을뿐더러 장황하게 일상 대화를 늘어놓은 작품은 독자를 매료하기 어렵다는 점, 어른 등장인물의 말로 교훈적 언설을 드러내는 것은 어색한 문어체 대사나 다름없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색다른 상상력을 뽐내는 판타지 성격의 작품들은 그 세계를 규율하는 원리나 세계관이라고 함 직한 요소가 부족해서 뿌리가 없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허무맹랑한 전개로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예심 과정에서 심사위원 각각의 추천을 통해 본심에 오른 작품은 단편 모음 《배 아프고 열이 나면 빨리 오세요》, SF 《투명 망토를 빌려드립니다》, 탐정추리물 《억울 상담소》, 판타지 《황금실을 잣는 X》, 역사동화 《맵고 짜고 달달한 심부름 이야기》 등 5편이었다. 일부러 의도하진 않았으나, 장르별로 저마다 특색을 지닌 고른 분포라고 할 수 있다.

《배 아프고 열이 나면 빨리 오세요》는 요즘 아이들의 고민을 유쾌한 상상력으로 풀어 나간 단편 모음이다. 재치와 기지가 번뜩이는 데다 작가의 메시지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고민을 전형적으로 그리지 않고 색다른 상상력으로 풀어낸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주인공의 낮은 연령에 비추어 볼 때, 거침없는 소설 어투인 데다 저학년에게는 알쏭달쏭할 법한 장면이 적지 않다. 주인공 연령을 두세 살쯤 높이면 거의 해결될 것으로 보이나, 결정적으로 작품의 성취가 고르지 못해서 뒤쪽으로 갈수록 쫄깃한 긴장감이 풀어진다. 고민 있는 아이들이 찾게 되는 이상한 병원을 공통점으로 하면서도 장편 또는 연작 형식이 아니라 개별 단편으로 지어서 모아 놓은 형태도 아쉬운 점이다.

《투명 망토를 빌려드립니다》는 기상천외한 발명품을 이어가는 괴짜 박사와 그의 조수로 일하는 인공지능 로봇의 교차 시점으로 서술된 SF다. 과학소설로 분류되지만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동화적 상상이 매력적이다. 엉뚱함 너머로 어린이에게 보내는 작가의 따뜻한 눈길이 느껴진다. 예측 불가능하고 잠재성 풍부한 아이다움을 긍정하는 마음에 박수를 치게 되는데, 너무 성급히 끝낸 듯하다. 대여 지원자를 달리하면서 투명 망토가 왜 필요하고 그 사용 규칙이 어떠한지에 대한 설명이 계속되는 짜임인지라 독자가 가장 궁금하게 여기며 기대하는 부분, 즉 빌린 투명 망토로 저마다 어떤 일을 벌이는가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않은 허전함이 너무 크다.

《억울 상담소》는 주인공의 캐릭터와 취미에서 비롯된 탐정 서사로 추리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명쾌함에 더해서 이야기 정보를 두고 독자와 밀고 당기는 플롯의 운용 솜씨가 수준급이다. 범인을 둘로 만들어 반전을 꾀한 점도 장점이다. 그런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길을 끄는 등장인물이 적지 않음에도 장편다운 시야와 서사 발전보다는 오밀조밀하게 빈집 털이범을 쫓는 데에만 치중한다. 장편치고는 인물들의 개성과 사연도 부족해 보인다. 집중성은 장점이겠으나 단편다운 면일 테니, 재미있게 읽히긴 해도 의미 총량에 제한이 주어질 수밖에. 결말에 이르러 모든 진상이 밝혀지는 전형적인 탐정 서사로서 탄탄한 플롯은 자랑할 만한데, 작품의 장점이 장르적 쾌감에 머문 게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의 반전은 트릭에 가까운 플롯의 묘미에 속하지, 독자와 함께 파고들며 진실을 발견하고 깨닫는 데서 오는 울림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작품의 미덕과 한계가 비교적 뚜렷한 위의 세 편을 제외한 《황금실을 잣는 X》와 《맵고 짜고 달달한 심부름 이야기》 두 편은 제각각 주목할 만한 요인이 두드러져서 심사위원의 고심이 깊었다. 서로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기에 마치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김치찌개냐 된장찌개냐를 선택해야 하는 난감함이 없지 않았다. 물론 즐거운 비명이었다.

《황금실을 잣는 X》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거미 X와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의 소통과 교류를 그렸다. 학대받는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어둡고 슬픈 이야기지만, 아름다운 희망의 씨앗을 품은 작품이기도 하다. 가정 폭력을 다룬 작품들은 자칫 상처를 전시하는 고발이거나 악인을 처벌하는 단죄 의식에 사로잡혀 어린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문제점이 종종 노정되는데, 이 작품은 처절하리만큼 충격적인 장면이 없지 않음에도 동화적 상상력으로 고통의 회복 과정을 그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독자는 《샬롯의 거미줄》을 떠올릴 법도 한데, 카프카의 《변신》이 연상될 만큼 놀랍고 긴박한 장면의 연속이다. 사람처럼 말을 주고받진 않으나 거미와 아이의 소통 장면은 무척 흥미롭고 또 아름답기까지 하다. 문제는 세상과 단절된 나이 어린 아이의 감각과 의식에 작가의 목소리가 겹쳐 보이고 이따금 시점이 흔들리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거미 캐릭터의 존재적 상징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학대받는 아이에게 손을 내민 신비한 능력의 거미 X는 누구에게 나타나는 존재일까? 신화적 존재라기엔 ‘황금 거미’의 상징성이 부족하거니와 주인공 내면의 상징으로 보기도 어려우며, 그렇다고 친족, 이웃, 친구 같은 조력자를 떠올리기에도 석연치 않다.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면은 높이 사지만, 충분조건의 기준에서 보자면 동화와 소설 사이의 기우뚱한 불균형이라고 함 직하다.

반면에 《맵고 짜고 달달한 심부름 이야기》는 어느 한 군데 흠잡을 데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오래전 역사를 배경으로 삼았다면 다소 어렵거나 고루한 내용이 아닐까 오해하기 쉬우나 장르에 우열은 없는 법이며, 더욱이 이 작품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궁궐 내 실존 인물 소수가 등장할 따름이지,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새롭고 또한 재미난 이야기다. 어린이 눈높이로 독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사연을 담고 있다. 작가의 맛깔스러운 이야기 솜씨와 함께 섬세한 서술이 돋보이는 데다 이야기의 완급 조절이나 비약적 전환을 도모하는 플롯 운용 면에서도 유려하고 날렵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 미천한 신분의 주인공 소복이는 어린 나이에 엄격한 궁궐에 갇혀 지내야 하는 모진 운명을 안고 있지만, 특유의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주인공뿐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가 뛰어나서 독자의 감정 이입에 장벽이 없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아비를 잃고 아들을 잃어 침통하게 얼어붙은 궁궐 안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주인공 소복이는 천성 자체가 이야기꾼이다. 이 작품에서 소복이가 풀어낸 ‘들려주기’ 형식은 단지 형식에만 그치지 않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연결이자 소통의 힘으로 다가오며, 종국에는 비극적인 사건이 만들어 낸 참담한 균열을 복구하기에 이른다. 위아래 할 것 없이 힘겹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치유와 소통의 몫을 톡톡히 해내는 이야기의 힘을 확인시켜 주는 역사동화다. 백성은 하늘과 통한다는 애민 정신은 작품에 녹아든 주제로 치자면 하나 더 얹힌 덤에 가깝다. 이런 점은 기존의 역사동화, 전래동화, 창작동화 각 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각각의 장점을 살려서 한 차원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시킨 수작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결국 심사위원 모두 《맵고 짜고 달달한 심부름 이야기》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기쁘게 합의했다. 대개의 공모 심사는 안정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편이고 파격적인 요소를 경계하는 면이 없지 않으므로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십분 노력했다고 자부하지만, 상대적으로 최고 작품을 뽑는 경쟁에서 탈락한 작품에 대해서는 심사위원 모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는 점도 함께 알려 드린다. 창작에 온몸을 밀어 넣고 사는 분들은 아시리라고 믿는데, 작품이란 의도 이상의 산물이다. 세상에는 ‘인생작’이라는 말이 있고 ‘당선운’이라는 말도 있다. 인생작을 낳은 당선 작가에게 축하를 보내며, 아직 당선운이 찾아오지 않은 분들에겐 인생작을 포기하지 않는 준비된 작가로서 언제나 당당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김리리(동화작가), 보린(동화작가), 원종찬(아동문학평론가 / 대표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