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이 그랬습니다. 도시에 사막이 들어오면 어떻게 되지? 부터 시작해서 표지의 그림을 한참 보다가 단편 하나하나의 제목을 훑은 뒤 집으로 데려왔어요. 이 책과 마주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잿빛의 어느 도시, 칙칙하고, 어둡고, 그 사이로 사람 한 명이 사막을 등지고 외롭게 기타를 치는…. 그런 모습이었어요.
《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 첫 번째 단편에서 주인공은 도시에 들어온 사막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호한, 바로 앞에 있는 듯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사막. 그리고 이어지지 않는 여덟 편의 단편에서 그런 암울함이 묻어나와요. 무언가를 잃고, 차츰 잃어가는 삭막한 여덟 편의 단편들 사이에서 이야기의 여백으로 공허함도 느껴지고요.
Pairing 1. Kotaro Oshio, 〈Twilight〉
잔잔한 기타의 선율이 마치 황혼을 닮은 듯한 음악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침묵 속에서 읽다가 단편 〈청각〉부터 이 음악을 듣는 것을 추천 드려요.
〈청각〉은 음악을 통해 구원받던 주인공이 아이러니하게도 청각을 잃으면서 비로소 해방되는 이야기를 담은 단편입니다. 저물어가는 해, 황혼을 담은 〈Twilight〉이야말로 《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한국어의 단어 하나하나가 내 살갗에 붙어 있는 듯한 느낌이라면, 프랑스어와 나 사이에는 두꺼운 겹이 존재했다.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겹.
어떤 사람들은 그 겹을 불편해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겹을 안전하다고 느꼈다.
이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서.
나에게는 나와 언어 사이의 거리가 필요했다.”
_《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작가의 말 中
《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은 한국인 작가가 프랑스어로 쓴 글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책인데요. 그래서 언어와 나, 언어와 이야기 사이 두꺼운 겹이 생겼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참 무궁무진하죠. 때로는 나의 재치 있는 농담을 외국인 친구가 평생 이해 못 할 거라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하고, 그들의 언어가 곧이곧대로 내 몸에 들어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Pairing 2.《폴링 인 폴》, 백수린
백수린 작가님의 《폴링 인 폴》은 낯선 언어와 모국어, 그리고 소통을 이야기하는 단편집이에요. 《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에서 느껴지는 거리감과 암울함을 《폴링 인 폴》을 통해 해소해보세요. 또는 《폴링 인 폴》을 읽은 후 《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을 읽어도 좋아요.
한국화 작가가 느꼈던 언어 사이의 겹을, 그리고 그의 책에서 느껴지는 겹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Pairing 3.《문맹》, 아고타 크리스토프
앞선 《폴링 인 폴》의 백수린 작가님이 번역한 책이에요. 이 책 또한 조국을 떠나 일평생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던 작가님의 자전적 소설로, 낯선 언어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 지,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헝가리 출신으로 스위스에 살면서 프랑스어를 썼던 작가님입니다. 짧으면서도 묵직한 내용에 쉽게 잊혀지지 않는 내용이에요.
“사막은 여기서 시작된다. 사회적 사막, 문화적 사막. 혁명과 탈주의 날들 속에서 느꼈던 열광이 사라지고 침묵과 공백, 우리가 중요한, 어쩌면 역사적인 무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나날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뒤따른다.”
_《문맹》 p.34
한국화 작가님의 사막도, 아고타 크리스토프 작가님의 사막도 어쩌면 우리 안에 체화되지 않아 필터를 거쳐야 하는 ‘언어’라는 도구로 하여금 느껴지는 어떤 것을 공통으로 가리키고 있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런 사막을 마음 속에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Twilight〉을 들으며, 〈청각〉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잠시 우리 사이의 사막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 햇볕
햇볕 쬐기 좋은 날 책을 읽습니다. 책이 좋아서 햇볕이 쨍한 날을 기다려요. 저도 햇볕이 되어 사람들이 저를 만날 때 책을 펼쳤으면 좋겠어요. 편집자가 되어 이 세상에 좋은 책들을 많이 소개 시켜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