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2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 컨퍼런스룸에서
다니엘 튜더 작가의 장편소설 《마지막 왕국》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습니다.
5년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마지막 왕국》을 만나본 자리를 공개합니다.
임현주
안녕하세요, 다니엘 튜더 작가의 《마지막 왕국》 기자간담회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 임현주입니다. 반갑습니다. 다니엘 튜더 작가님의 글을 사랑하는 독자이기도 하고요, 또 아내이기도 합니다. 다니엘 튜더 작가님의 집필 과정을 곁에서 매일매일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오늘 자리가 저에게도 무척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정말 바쁘실 텐데 귀한 걸음 해주신 기자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기자간담회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 튜더 작가님을 소개할게요. 인사 부탁드립니다.
다니엘 튜더
안녕하세요, 영국에서 온 작가 다니엘 튜더입니다. 반갑습니다. 제 모국어가 아니어서 한국말이 서툴더라도 많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온 지 14년, 15년 되었는데 그동안 다양한 일을 많이 했어요. 오신 분들처럼 기자로도 일했었어요. 근데 어렸을 때부터 멋진 소설을 한번 쓰고 싶다는 꿈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이 자리에 뿌듯한 마음으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임현주
책이 완성되기까지 5년간의 연구와 집필 과정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책을 쓰셨을지 궁금하네요. 책이 드디어 세상에 공개된 기분이 어떠신가요?
다니엘 튜더
뭐랄까, 아까 말한 것처럼 뿌듯한 마음인데, 우리 부부는 알다시피 육아 경험을 함께하고 있어요. 아마 제가 한 일 중에 책 쓰는 일이 두 번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가장 어려운 일은 우리 귀중한 아기를 같이 키우는 것입니다.
임현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다니엘 튜더 작가님의 이력과 《마지막 왕국》에 대해서 제가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다니엘 튜더 작가님은 옥스퍼드 재학 시절 절친인 한국 친구를 따라서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을 처음 찾았고요. 그때 한국의 정과 역동성에 반하게 됐습니다. 2010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으로 한국에 정착하게 됐고, 한국의 다양한 정치와 사회 이슈에 관한 기사를 썼습니다. 이 시기에 ‘한국 맥주가 북한 맥주보다 맛이 없다’라는 기사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2017년에는 외국인 최초로 청와대 해외언론비서관실의 정책자문으로 임용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 기자로 활약했지만 작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저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이룬 나라》,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등을 통해서 특유의 예민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마지막 왕국》은 기자로서의 연구 정신과 작가로서의 역량을 총동원한 역사 소설입니다. 《마지막 왕국》은 조선이 막을 내릴 무렵 왕국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 실화 기반의 역사 소설입니다. 그간 우리 역사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의친왕 이강이나 원조 신여성인 김란사 등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넘어가는 역사의 긴박한 순간을 영화와 같이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마지막 왕국》은 5년간의 집요한 연구와 집념의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했는데요. 격변하는 시대상 트라우마와 성장, 로맨스, 암살, 배신, 실패, 구원 등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배부해 드린 보도자료를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텐데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것들을 제가 먼저 질문을 드리고 이후 기자님들의 질문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마지막 왕국》이 영국인 작가가 쓴 한국 소설이잖아요. 그 점이 많은 분들의 이목을 끌 것 같습니다. 그냥 소설도 아니고 영국의 역사 소설도 아닌 조선과 대한제국의 과도기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게 된 그런 계기에 대해서 말씀 주시겠어요?
다니엘 튜더
기자로 일할 때, 2012년이었나요? 진짜 오래전 일인데, 이석이라는 황손을 인터뷰하러 전주에 찾아갔습니다. 그분은 20세기의 여러 전쟁과 사회 변화가 없었으면 왕자나 왕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굉장히 힘들게 사셨던 분이에요.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사는) 경험도 하셨고, 사업 실패도 했고. 1960년대에는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로 팝스타도 됐어요. 월남전도 참전하셨어요. 파란만장하게 사셨던 분이에요.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타다가 ‘한번 소설화까지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아마 오신 분들도 아시다시피 기자 일도 굉장히 바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라서, 시간도 많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5년 전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결심한 거예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하면, 바로 부모님이라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래서 이석 황손의 아버님이 누군지 알아보니 바로 의친왕 이강이라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의친왕의 인생 스토리에 없는 게 없었어요. 역사적 배경도 격동의 시대였고, 캐릭터로서도 장단점이 많았고. 장단점이 있는 사람 매력 있죠. 똑바로 사는 사람은 캐릭터로서 매력이 없을 수 있어요.
임현주
그런 스토리 끝에 의친왕 이강이 주인공인 소설을 써야겠다 다짐하게 되신 건데요.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인 의친왕 이강, 아마 많은 한국분들께도 생소한 인물이기도 할 겁니다. 좀 부끄럽지만, 저도 작가님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거든요. 보통 고종의 아들이나 순종의 이복 동생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의친왕 이강이 어떤 인물인지 소개해 주시겠어요?
다니엘 튜더
일단 트라우마의 아들로 생각합니다. 물론 왕자로 태어났지만, 궁궐 밖에서 자라 아빠, 엄마 없이 산 아이였으니까 트라우마가 있었겠죠. 그리고 보면 친구라든가 연애 관계를 맺는 것이 좀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사실 파락호破落戶 이미지도 있었어요. 당시에는 파락호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어요. 술 좋아하고 여자들과의 짧은 연애 많이 하고. 아마 어린 시절의 성장배경에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성장하려는 노력도 있었어요. 주변 독립운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처음으로 목적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상하이 임시정부로 망명 작전에 참여했어요. 그래서 약점이 있지만 성장하는 사람으로 보는 거예요.
임현주
그렇습니다. 의친왕 이강도 나중에 독립운동까지 한 성장형 인물로 인상적이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등장인물 중에 ‘낸시 하’, 그러니까 김란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란사는 유관순의 스승이자 의친왕 이강과 함께 미국에서 공부한 원조 유학파이기도 하고요. 또 독립운동을 함께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강과 함께 김란사가 더욱더 주목을 받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는데요. 아마 작가님도 의친왕과 함께 큰 비중을 두고 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란사, 어떤 인물인가요?
다니엘 튜더
한국 여성 교육과 해방, 개척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숨겨진 영웅, 숨겨진 독립운동가. 우리가 유관순이라는 이름은 다 알지요. 그런 유관순에게 독립 정신을 가르쳐주신 분이 바로 김란사예요. 그리고 요즘엔 유학으로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는 분들 많지만 그 당시에는 진짜 없었거든요.
특히 기혼 여성이에요. 딸 있고 남편도 있는 기혼 여성인데 미국에 가서 몇 년 동안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여성 교육을 위한 학교 설립하고 사회 혁신과 전진을 위해 여러 일들을 참여하셔서 진짜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김란사를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캐릭터를 이야기의 중심에 넣었습니다.
바로 이 동네(정동)에 이화학당이 있었어요. 원래는 기혼 여성은 입학하면 안 된다는 룰이 있었어요. 근데 김란사가 기혼 여성으로서 교육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교장하고 직접 만나서 등불을 끄면서 ‘제게 빛을 볼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그렇게 설득된 것입니다.
임현주
“선생님의 책상 위에 켜진 등불을 후- 끄면서 말했어요. 제 삶도 이렇게 암흑과 같다고요. 그리고 간절하게 부탁했습니다. ‘제게 빛을 볼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라는 대사가 너무나 가슴을 울렸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게 정말 실화라는 말인가? 믿기지 않을 만큼 영화 같은 스토리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글을 읽으면서 그 당시의 시대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장면들이 정말 놀라웠거든요. 작가님이 마치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처럼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는지 그런 예시도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다니엘 튜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5년 동안 끊임없이 여러 책들, 기사들, 다큐멘터리도 보고, 미국에 있는 장면들도 많으니까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많이 연구했었어요. 인터뷰도 많이 했죠. 사소한 기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사소한 기사 하나는 크게 의미가 없긴 한데 천 개 모으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생각해서 이렇게 연구를 많이 하게 된 거예요.
하나 진짜 사소한 얘기인데, 읽은 책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그 당시 미국에 유학하러 간 한국인 학생들은 원래 조선 옷을 입었죠. 조선 한복에 익숙했는데, 미국에서 정장이나 드레스로 바뀐 거예요. 처음에 사람들이 주머니에 대해 물어봤어요. “이게 뭐냐, 뭘 위한 거냐?” 이강도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이런 식이었어요. ‘이 주머니, 이게 뭘 위한 건가.’ 이런 사소한 디테일을 천 개 모으면 좀 재미있고 신선한 세상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또 의친왕 이강의 자녀 중 이해경 여사님이 있어요. 이분이 94세인데, 미국에 사셔요. 그분과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내용 중 하나는, 궁궐에서 먹는 음식 중에 당연히 김치가 있었죠. 근데 김치의 하얀 부분만 먹을 수 있었어요. 이게 좀더 고급스러운 음식이라고. 그런데 초록색 부분은 먹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근데 이해경 여사 입장에서 가장 맛있는 건 초록색 부분이라, 상궁들한테 항상 “제발 초록색 김치 주세요” 했다고 합니다.
임현주
그런 것들은 이해경 여사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발견하게 된 사실이군요. 아마 독자분들이 이런 걸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다니엘 작가님에게 이런 질문 많이 했습니다. “이거 진짜 사실이야? 실화야? 아니면 상상의 영역이야?” 제가 막 물어봤거든요. 독자분들도 똑같은 질문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의 영역일까요?
다니엘 튜더
다 섞여 있어요. 이건 교과서가 아니고 소설이니까. 그래서 어떤 내용이 백 퍼센트 사실이고 어떤 내용이 백 퍼센트 상상한 거고, 어떤 내용은 야사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스토리도 많고. 다 섞어서 이렇게 소설화한 거예요.
임현주
그러면서 작가님이 약간 변형한 인물도 있고 새롭게 만든 인물도 있고 그대로 실은 인물도 있잖아요. 특히 ‘김원식’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니엘 튜더
의친왕 주변 중요한 인물 중 하나는 바로 김규식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김규식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독립운동의 영웅이죠. 그래서 그분은 크게 터치하고 싶지 않았어요.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게 인간 김규식이다’ 이렇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70%, 80% 정도 김규식 기반으로 ‘김원식’이라는 합성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남은 20~30%는 다른 인물들에서 파생된 거예요.
임현주
작가님이 정말 얼마나 대단한 집념과 열정으로 이 소설을 집필했는지 제가 지켜봤는데, 집필 기간 동안 여러 고민이 많으셨던 걸로 알아요.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나요?
다니엘 튜더
두 개 있었어요. 하나는 연구. 제가 몰랐던 세상에 대한 책을 쓰려면 당연히 연구를 엄청 해야 했죠. 특히 언어 장벽도 있잖아요. 제가 한국 사람도 아니고, 어렸을 때 한국 역사를 배운 적도 없었고. 한국어로 된 책을 읽으면 한국 사람에 비해 5배, 10배 정도 시간이 걸린 거죠. 그래서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했었죠.
그리고 스토리 구축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1부를 다섯 번 썼어요. 한번 써보고, 주변 분들에게 보여주고 이런저런 약점이 있다는 의견도 들어보고 저도 그게 맞는 것 같아서 다섯 번 쓰고. 2부도 세 번, 3부도 두 번 썼어요. 굉장히 힘들게 썼어요. 내러티브(대화) 자체는 사실 페이크죠. 내러티브는 나중에 사학자나 소설가, 영화감독이 지어내는 거죠. 그래서 이러한 팩트에서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까, 하는 과정에서 힘든 일도 많았어요.
사실 그 시대는 격동의 시대였고 이 나라 저 나라의 개입으로 한반도가 흔들렸어요. (주인공) 가족 간의 갈등도 있었고. 스토리텔링 면에서 무엇을 생략해야 하나, 이제 그런 결정들 때문에 힘든 날이었죠.
임현주
네, 그래서인지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소설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것도 조금 더 다듬어서 줄였다고...
다니엘 튜더
완전 벽돌책이죠. 그런데 만약 자제를 안 했으면 아마 2천, 3천 페이지가 될 가능성이 있었을 거예요. 그럼 출판되지 못하고. (웃음)
임현주
근데 소위 말하는 ‘벽돌책’이라는 게, 요즘 출판 시장에서 특히 역사 소설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니엘 튜더
당연히 어렵죠. 요즘 벽돌책을 많이 안 읽어요. 특히 한국에서 벽돌책은 그리 환영받지 못하고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보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책은 팔리기 어려운 시대죠. 근데 요즘 해외에서, 특히 미국 같은 경우 이런 책도 좀 트렌드인 거예요.
임현주
이 도전을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제가 드리고 싶었던 질문은 영화화나 드라마까지 염두에 두고 계신지. 이게 워낙 엄청난 스토리잖아요.
다니엘 튜더
그럴 수 있으면 좋겠죠. 사실 책을 쓰면서 소설보다 드라마와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역사 소설 같은 경우 장면마다 세세하게 묘사해야죠. 어떤 옷을 입었는지, 사람들이 어떤 냄새가 났는지, 어떤 소리가 났는지. 독자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가야 하는데,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이걸 보여줄 수 있어요. 이 스토리로 멋진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임현주
앞으로 또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참,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다니엘 튜더
(《마지막 왕국》은) 보편적인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역사와 정치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좋아할 수도 있고, 강력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분들도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근데 제가 그린 의친왕 이강의 스토리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성장하는, 결국 작전에 참여하지만 좀 안타깝게 실패한 영웅의 여정을 담았어요. 그래서 누구든 이런 스토리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임현주
역사 소설이지만 보편적인 인간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기 때문에 모든 분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작가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책에 관한 주요 이야기들을 나눠봤는데요. 기자님들도 아마 궁금하신 내용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부터 질의응답도 받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는 질문이 세 가지가 있는데요. 우선 영어로 출간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는, 아나운서님께서는 글도 쓰시지만 아나운서이시기도 하고, 또 작가님께서는 기자도 하셨고 글로 먹고 사는 직업이잖아요. 언제 말과 글의 힘을 믿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는 또 아나운서님의 SNS에서 본 ‘날 믿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소설 쓰는 배우자를 응원해줘서 고마워.’ 이 (다니엘 튜더 작가님의) 말이 되게 인상 깊었는데 서로의 직업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응원을 해주는지가 궁금합니다.
임현주
네, 우선 작가님에게 해외 출판 계획이 있는지부터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영미권 출판 계획이나 진행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데요.
다니엘 튜더
네, 사실 이 책은 번역된 책이에요. 영어로 썼으니까 당연히 제 모국어 영어로 출간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에이전시랑 얘기 중인데 아마 내년 초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이런 스토리는 한국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일 수도 있죠. 미국인이나 영국인에게 ‘의친왕 이강’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캐릭터니까요. 그래서 설득하도록 좀 더 분발해야죠.
임현주
원래도 영어로 쓴 글이니까 이미 다 준비가 됐습니다. 번역이 필요 없는 해외에도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기자님을 질문 듣다 보니까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이 약간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아나운서이고, (다니엘 튜더 작가님도) 작가와 기자로 활동하시니까 우리 둘이 서로 어떤 응원들을 주고받는지 말씀을 좀 드려도 될까요?
일단은 제가 먼저, 저는 다니엘 튜더 작가님을 SNS를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제가 작가님의 <고독한 이방인의 산책>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제가 당시 너무 외로워서 그 책을 읽었는데 너무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그러면서 제가 작가님의 책에 짤막한 리뷰를 제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그거를 본 한 블로거가 그 책을 읽고 소감을 남기겼고, 작가님이 그 블로그를 보고 임현주 아나운서가 내 책을 읽었구나, 그러면서 연락이 닿아서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만나게 된 거죠.
그래서 정말 저는 제가 아나운서라는 직업이었기에 작가님을 만날 수 있었고, 또 작가님은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희의 만남부터 그런 직업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고, 저는 글을 쓰는 작가님을 정말로 존경합니다.
특히 소설이라는 작업은 정말 많은 인내심과 또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가는 직업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래서 저는 이 꿈을 가졌다는 자체를 응원하고요. 근데 꿈만 가지면 사실 가장으로서, 또 남편으로서 마음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또 책임감도 갖고 있는 사람이라서 저는 작가님을 정말 존경하고 무한 응원하는 입장입니다.
다니엘 튜더
너무 아름다운 말입니다. 가장이라는 말...
임현주
저도 가장이고요. 서로 같이 가장입니다. 아나운서로서 저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니엘 튜더
사실 임현주라는 이름은 처음 알게 된 것은 해외 신문에 나온 영문기사였어요. ‘안경 쓰는 아나운서’, ‘임현주라는 아나운서는 한국 여성 아나운서 최초로 안경 쓰는 아나운서다’ 이렇게 소개되었어요. 진짜 멋있지 않아요? 아마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제 입장에서 굉장히 멋진 일이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누가 제 책을 소개하며, 임현주 아나운서가 이 책을 추천해서 내가 이 책을 읽게 됐다, 뭐 추천하고 싶다, 이런 내용의 포스팅을 했고, 그걸 제가 보고 ‘임현주 아나운서님이 그 아나운서다. 안경 쓰는 아나운서다’ 그래서 뭐 개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인스타그램 스토킹 좀 했어요. (웃음) 농담이에요. 어쨌든 팔로우하고 맞팔도 된 거고 이렇게 친해지게 된 거예요.
원래 팬 같은 마음으로, 그리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가까워진 거예요. 임현주 아나운서는 진짜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임현주
짧게 정리하자면 작가님도 저를 항상 무한 응원해 주고요. 제가 뭘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항상 그렇게 응원해주는 그런 관계입니다. 기자님들 질문 계속 받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소설책이든 역사책이든 그 어떤 책에서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의식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여기서 의친왕 이강과 김란사의 이야기를 보고 독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을지 의도한 바가 있는지 좀 궁금하고요. 그 외에 또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임현주
의친왕 이강과 김란사, 그동안 사실 빛을 발하지 못했던 인물들이고 작가님이 또 그런 마음에서 쓰신 걸로 아는데 작가님이 어떤 의미를 더 전달하고 싶은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니엘 튜더
의친왕도 김란사도 역사에서도 기억에서도 잊힌 인물들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으로 그들을 조명하고 싶은 마음으로 쓴 거예요. 특히 김란사 같은 경우 정말로 부당하게 역사에서 잊혔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서 김란사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친왕은 당시 사실 이미지가 좀 안 좋은 편이었어요. 특히 당시에 파락호 이미지가 있었어요.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도 있었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마음도 있었고.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노력도 했단 것을 좀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임현주
네. 작가님이 그런 말씀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몇몇 독립운동가들은 많이 알려져 있는데 숨겨진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발굴되고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계속해서 또 질문이 있으시면 받아보도록 할게요.
기자
그리고 이번에 작가님께서 이강 시절의 역사를 찾아보시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이나 인상적이었던 부분도 좀 궁금하고요. 인물들이 실제 팩트와 허구가 섞여 있다고 하지만 이강과 언더우드 부인 간의 교류라든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외에도 캐릭터 구축에 신경을 쓰신 인물이나 소개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임현주
먼저 작가님이 여러 역사적인 자료들 조사를 하면서 참 이거 안타깝다 혹은 이거 굉장히 인상적이다 했던 부분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요, 자료 조사하면서 가장 안타까웠거나 인상적인 부분. 또 우연의 일치 같은 것도 있었잖아요.
다니엘 튜더
아마 김란사 암살 사건. 아까 말씀한 것처럼 김란사는 거의 숨겨진 영웅인데요,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 가려고 했었고 고종한테 비밀 서류도 받아 거기 가는 길에 베이징에 잠깐 머물렀다가 암살당하셨어요. 굉장히 슬픈 사건이었고, 만약 파리까지 도착하실 수 있었으면 역사가 어느 정도는 다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김란사는 인간으로서 비극적인 면도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가족을 떠나 공부하러 미국 가셨는데, 딸이 16, 17살 때 병으로 죽은 거예요. 뒤늦게 딸하고 관계를 좀 회복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그것에 대한 후회가 많으셨던 것 같아요. 딸이 세상을 떠나고 3년 만에 김란사도 암살당하셔서 굉장히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임현주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질문이, 이강과 언더우드 부부의 관계처럼 정말 좀 색다른 인물들이 많이 등장을 하는데 주인공 외에 작가님은 어떤 인물이 가장 인상적이셨을까요?
다니엘 튜더
아마 의친왕 이강 본처, 아내 분 김수덕이 좀 그런 인물 아니었을까요. 사실 간택으로 결혼하게 된 거라서 의친왕이 특별히 와이프한테 크게 관심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거의 평생 버림받은 아내였습니다. 의친왕이 원래 파락호 이미지가 있었고, 다른 여자들하고 관계를 맺기도 했다고 해요. 아내분은 항상 외면당하고 버림당하고, 그래도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그런 부분도 있었고.
그분은 원래 인목왕후의 후손입니다. 연안 김씨 인목왕후의 후손. 인목왕후가 광해군한테 탄압을 당하고 가족을 잃은 비극적인 인물인데, 후손들에게 전주 이씨랑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지시를 남기신 거예요. 280년 동안 후손들이 다 그 지시를 따랐는데, 이 지시를 본의 아니게 어긴 사람이 바로 김수덕입니다.
명성황후가 계속 결혼하세요, 결혼하세요 해서 그렇게 결혼하게 된 거예요. 이 인목왕후의 저주가 진짜 있었을까요, 이런 상상은 좀 소설가의 자유 아닌가 (싶어요).
임현주
인목왕후의 당부를 어긴 탓인지 몰라도 김수덕도 참 힘든 인생을 살게 된 안타까운 인물 중의 한 명입니다. 계속해서 기자님들의 질문을 받아보도록 할게요.
기자
책 초반 이강의 어린 시절에 스승이 〈홍루몽〉을 가르치면서 이강에게 〈홍루몽〉 속의 가씨 가문을 통해 작금의 세상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생각을 말해달라고 하는 장면이 마음에 와닿았는데 이 질문을 작가님께도 드리고 싶더라고요.
한국 사회가 역사 왜곡 논란도 있고 조금 어려운 상황인데, 이 책을 통해서 지금 이 시점에 이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 책을 통해 지금 사회 전반에 하고 싶은 이야기나 메시지도 있었을 것 같고요.
임현주
굉장히 뼈 있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홍루몽>을 읽으면서 스승이 어린 이강에게 이런 질문을 하죠. 작금의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는데, 그게 혹시 지금 이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와 맞닿아 있는 작가님의 어떤 의도나 생각이 있는 건 아닌가.
다니엘 튜더
너무 죄송합니다만,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아마 영국 사람한테 물어보시면 영국 사회 너무 혼란스럽다, 한국 사람한테 물어보면 한국 사회가 너무 혼란스럽다 할 수도 있어요. 근데 저는 한국 사회가 그렇게 혼란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웃음) 한국 처음 왔을 때부터 주변에 한국 친구들, 주변 분들이 한국의 나라이 상황 진짜 안 좋다, 했어요. 한국 친구들은 항상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근데 제 입장에서 보면 크게 나쁘지 않다고... (웃음) 그냥 그 당시, 1890년 한반도 사회에 대한 코멘트인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 대한 그런 감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기자
저는 그 맥락을 바로 물어본 건 아니고, 이 책이 지금 이렇게 5년 동안이나 준비했을 정도로 나왔을 때는 뭔가 시대나 꼭 한국이 아니더라도 시대적으로 지금 이 텍스트 자체가 뭔가 작가님께서 시대적으로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작가님 행보를 보면 한국 사회에 대해서 현대 사회를 위주로 굉장히 뼈 있는 질문을 많이 던지시고 되게 깊게 천착해 계시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엔 아예 역사까지 들어간 점이 저는 너무 흥미롭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대해서 계속 이렇게 말하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어떤 점이 그렇게 계속 쓰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 튜더
그 정도는 아닌데... 독자들이 이런 역사에서 잊힌 인물들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는데, 뭐랄까 사상이나 철학이나 그런 메시지는 없었어요.
임현주
아마도 계속해서 한국 관련 책을 썼고 이번에 역사 소설까지 쓰다 보니까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른 게 아닌가 하는 의도에서 질문하신 것 같은데요. 저는 그냥 개인적으로 작가님이 조선시대에서 환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합니다. 계속 질문 받아보겠습니다.
기자
저는 이강이라는 분이, 물론 이 격랑의 시대 속을 살면서 개인적으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또 그 개인을 투영함으로써 우리가 그 시대상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무래도 실존 인물이다 보니까, 그런 분에 대해서 소설로 나올 정도면 그 인물이 지닌 부정적인 의미든 긍정적인 의미든 어떤 영향력이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사실 그 부분이 약간 공감이 안 돼요. 그러니까 물론 몰락한 왕가에서 태어나서 좀 남들에 비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또 다른 왕실 자손과는 달리 반일 의식도 강했고, 그런 점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분이 우리나라 독립이라든지 이런 데에 어떤 큰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의 생애가 지금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 현대의 대한민국 사람들한테 어떤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했는지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임현주
한편으로는 저는 이렇게 해석이 되거든요. 왜 지금 이 시점에 의친왕 이강의 소설을 우리가 읽어야 되는가, 그거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렇죠?
다니엘 튜더
그렇죠. 이강은 캐릭터로서도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1919년 상하이 망명 사건이 만약 성공했으면 전 세계에 ‘조선이 나라다’ ‘일본이 하는 짓이 이렇다’ 발표할 수 있었으면 좀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근데 실패했으니까 우리는 알 수 없는 맥락이죠.그렇지만 그 의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그리고 이 책은 의친왕 중심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김란사라는 인물도 좀 밝히고 싶은 그런 목적으로 쓴 책이에요.
임현주
이 소설에는 잊힌 인물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작가님의 의도가 있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의 보편적인 스토리다, 보편적인 성장의 스토리라는 것을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꼭 여성 소설뿐만이 아니라 정말 트라우마를 가진 인간의 성장하는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특히나 김란사라는 인물은 작가님이 특히나 애정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늘 “만약에 김란사가 남자였다면...”이란 말을 많이 하셨죠.
다니엘 튜더
그렇죠. 남자였으면 아마 동상이 있겠죠. 뮤지컬이나 영화가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근데 이건 결국 교과서가 아니라 소설이죠. 어느 정도의 엔터테인먼트예요. 많은 독자들이 읽고 흥미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자
문화일보 정상민입니다. 조금 작품 밖으로 가보고 싶은데, 지금까지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이룬 나라》도 그렇고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도 그렇고 이번 작품까지도 한국에서 보낸 많은 시간이나 경험들, 이런 것들을 녹여서 쓰시고 그게 집필의 모티브가 되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 개인적으로 가장 큰일이라고 하면 아리아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써내실 작품이 만약에 사회적이라면 뭔가 육아나 이런 것들과도 관련이 되어 있을지, 차기작에 대한 계획도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임현주
우선 기자님이 아리아, 저희 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차기작에 육아도 포함이 될지. 일단 제가 살짝 관련 질문을 드리자면, 육아 어떠셨나요? 소설 작업의 엄격한 데드라인이 바로 또 아리아의 출생이었잖아요.
다니엘 튜더
세상에서 제일 완벽한 데드라인이었어요. 임현주 아나운서님이 아침마다 방송을 하니까 제가 6개월 동안 아리아를 혼자 돌봐줬는데 굉장히 힘들었어요. 여성분들이 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하면 많은 남자들이 정말 이해를 못 하잖아요. 근데 경험해보니까 진짜 세상에 제일 힘든 일이다... 소설도 제 인생이 두 번째 힘든 일이었어요. 육아가 제일 힘들어요.
어쨌든 이런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쓸) 다음 책을 생각하고 있죠. 의친왕 이강의 아들 중 하나가 이우예요. 히로시마에서 돌아가신 분인데, 그분에 대한 소설을 쓰면 어떨까 고민 중이에요.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빠 되고 나서 영국에 대한 향수도 생겨서 영국 돌아가서 제 고향 맨체스터에 대해서 맨체스터 사투리로 책 쓰고 싶은 마음도 생긴 거예요. 앞으로 계속 책 충분히 팔면 쓸 수 있어요.
임현주
계속해서 쓰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걸로 압니다. 근데 또 제가 알기로는 육아의 경험이 소설 작업에서 생생한 장면을 그리는 데에 도움이 됐다고요.
다니엘 튜더
네,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도 있었고... 첫 번째 장면이 병상에 있는 매우 애매모호한 신인데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왕절개를 겪은 아내한테 “이때 어땠어? 육체적으로 어떤 느낌, 심리적으로 어떤 느낌이었어?” 하고 설명해달라고 했어요. 그 내용을 가지고 쓴 글인 거예요.
기자
최근 해외에서도 K-콘텐츠의 인기 때문에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들이 현지에서 한국과 관련된 소설을 쓰면서 주목을 받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외국인들이 이 책을 볼 때 접하기 어려운 용어나 표현들이 있을 수 있다고 얘기하셨는데, 책을 읽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역사나 맥락을 어떻게 이해했으면 좋겠는지 궁금합니다.
임현주
그렇죠.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봤을 때 익숙한 나라이지만 낯선 시대의 용어들이 등장하고, 그러다 보니 이것을 얼마나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우려가 있을 수 있죠.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책을 보여주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때 반응도 궁금합니다.
다니엘 튜더
한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 주변에 책에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도 원고를 보여주면 반응이 꽤 좋았기 때문에 저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요즘 트렌드는 우리(외국인)를 위해 맞춘 콘텐츠가 아니라 ‘리얼 콘텐츠’인 것 같아요. 〈오징어 게임〉 같은 경우 감독님이 쓰실 때는 원래 해외 타깃이 아니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엄청나게 히트했죠.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런던에서 한식이 뜨고 있어요. 퓨전 같은 게 아니라 진짜 한식이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영국이나 미국 사람에게 ‘한국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필요 없이 그냥 쓴 거예요.
임현주
맞춤형보다는 ‘진짜 그 나라의 콘텐츠’가 더 경쟁력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기자
저도 이강이라는 인물을 잘 몰라서 검색을 해봤는데, 이우는 둘째 아들이고 첫째 아들은 이건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행보도 그렇고 좀 다 반대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건이라는 인물은 첫째 아들이고 일본은 협조적이었다고 나오고, 이우는 둘째 아들인데 형과는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건이란 인물을 어떤 식으로 다뤘는지 설명을 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한국에서 오래 사시긴 하셨지만 한일 관계를 따졌을 때는 어쨌든 제삼자 입장인데 어느 쪽으로 치우친다거나 이런 거에 대한 좀 집필 과정에서 고민은 없으셨는지 그것도 좀 답변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니엘 튜더
그렇죠, 이건이라는 첫째 아들이 확실히 있었습니다. 근데 그것도 결정이죠. 이건까지 줄거리에 담았으면 스토리가 복잡해질까 봐 걱정이 되어서요. 책은 이미 600페이지짜리 벽돌책인데, 만약 이런 요소들까지 담았으면 훨씬 복잡해질까 봐 걱정해서 좀 단순화하게 된 거예요.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임현주
다 다루지 못한 이야기는 나중에 2권, 3권으로 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 책에 일제 시대 이야기도 나오고 이토 히로부미도 등장을 하죠. 한일 관계에 있어 제삼자의 입장일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고민도 혹시나 하셨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었습니다.
다니엘 튜더
어느 정도 한국 독자들의 생각이 어떨까 고민하면서 썼는데 근데 뭐... 모르겠어요. 출판사 담당자분들과 이 나라, 저 나라도 번역되어 들어갈 수 있나? 얘기하다가, 일본은 당연히 안 될 것 같다는 얘기는 나오는. (웃음) 그런데 뭐 다른 나라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임현주
어쨌든 작가님은 어떤 치우친 입장 없이 그냥 그때 그 역사를 쓰신 거죠?
다니엘 튜더
네, 그렇죠.
기자
혹시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사회적인 글도 예정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 튜더
아빠가 되고 나서 저출산 이슈에 관심이 생겨서, 논픽션으로 한국 또는 세계적 저출산 문제에 대한 책을 고민 중이에요. 요즘 다양한 분들하고 인터뷰하고 있어요. 한국과 해외의 교수들, 인류학자들, 경제학자들, 사회학자들. 그리고 평범한 한국 사람들과도 인터뷰를 많이 하고 있어요. 앞으로 저출산에 많이 포커스하지 않을까요?
임현주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나 마무리하는 질문을 좀 드려보려고 해요. 책에 두 분의 추천사가 실렸습니다.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작가는 “가장 뛰어나고 인상적인 역사 소설이다”라는 소감을,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덕혜옹주》의 권비영 작가는 “영화 같은 전개, 두고두고 읽힐 소설이 될 거라 굳게 믿는다”라는 소감 남겨주셨습니다. 독자분들의 소감, 기자님들의 소감도 궁금한데요. 《마지막 왕국》을 읽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다니엘 튜더
벽돌책이지만, 600페이지의 문턱만 넘으면 심심하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임현주
네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벽돌에 잠깐의 허들만 넘겼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주셨습니다. 오늘 못다 한 이야기도 있을 테고요. 작가님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기자님도 계실 거로 생각합니다. 더 궁금하신 내용이 있으면 출판사 혹은 작가님 통해서 연락 주시면 더 깊은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질문해 주신 기자님들도 모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다니엘 튜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