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레이먼드 챈들러와 필립 말로가 있다면,
일본에는 하라 료와 탐정 사와자키가 있다!
도쿄 도심의 그늘, 신주쿠에 위치한 허름한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중년의 탐정 사와자키. 《안녕, 긴 잠이여》는 일 년이 넘게 도쿄를 떠나 있던 사와자키가 오랜만에 사무소로 복귀하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석구석 해묵은 먼지나 쌓여 있을 줄 알았던 그의 예상과 달리, 낯선 노숙자 한 사람이 사와자키의 귀환을 반긴다. 의뢰인의 대리인일 뿐이라는 노숙자의 자기소개가 이어졌지만 사와자키의 매의 눈은 그 또한 굴곡진 사연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는데…….
이 도시의 어느 구석 치고 범행 현장이 아닌 곳이 있을까? 지나가는 행인치고 범인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 범죄 엔트로피가 끝없이 상승하는 비정한 도시에서 고독한 중년 탐정 사와자키의 신화가 펼쳐진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내가 죽인 소녀》를 잇는 탐정 사와자키 시즌1 완결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5위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10 3위
평소 하라 료는 챈들러의 광팬임을 자처하며 그의 작품이라면 빠짐없이 애독하는 것은 물론, 필립 말로 시리즈를 ‘하드보일드의 이상理想’으로 삼고 있다고 밝혀왔다. 그래서인지 ―하드보일드 독서구력이 오랜 독자라면 쉽게 눈치챘을 테지만― 이번 ‘안녕, 긴 잠이여’라는 제목은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과 《빅 슬립》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하라 료는 제목의 오마주로만 그치지 않고, 복잡한 플롯, 매력적인 등장인물, 철저하게 계산된 대화, 현실감 있는 전개 등, 작가 특유의 풍취로 필립 말로를 넘어서는 짙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고품격 미스터리를 당당히 완성했다. 여담이지만 《안녕, 긴 잠이여》는 그간 비채 편집부가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출간문의를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옮긴이의 한마디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거나 옮길 때면 늘 ‘하드보일드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참고서처럼 이리저리 정리한 하드보일드의 정의도 읽어보고, 용어의 역사를 더듬어보기도 하지만 저 자신의 표현을 찾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 여성 평론가는 ‘하드보일드란 남성용 할리퀸 로맨스다’라는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전후 맥락을 알지 못하지만 이 표현만 두고 보면 하드보일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에서 하드보일드에 대한 오해와 종종 마주칩니다. 굳이 수정하려고 들지 않는 까닭은 역시 하드보일드란 바로 이런 거다, 라고 간결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 하라 료도 ‘이거다’라고 정의를 내놓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예를 들어 그 조건을 설명합니다.
“《빅슬립》(출판사에 따라 《깊은 잠》 《거대한 잠》 앞머리에 어느 저택을 방문한 탐정 필립 말로에게 버릇없는 그 집 막내딸이 “키가 크네요?”라고 삐딱한 태도로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현실적으로는 히죽히죽 멋쩍게 웃어넘기거나 아니면 화를 내거나 둘 중 하나다. 하드보일드 소설에서는 그러면 실격이다. 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독자는 그 소설을 판정하게 된다. 말로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빅슬립》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여기서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늦어진 한국어판을 기다려준 분들을 위해 그 답을 영문으로 적어둡니다. “I didn’t mean to be.” _옮긴이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