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할머니는 버트에게 당장 차를 세우지 않으면 납치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이다. 버트는 할머니를 진정시키려고 애썼지만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할머니는 자신이 그를 좋아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옷 입는 것도 생긴 것도 마음에 든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가 횡령을 하고 있다고 힐난했고, 살아 있는 인간 중에 제일 못생겼다고도 했다. 또 할머니가 그동안 참아준 이유는 단지 그가 너무 멍청해서 자기가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내 회계 실력은 특별히 내세울 것도 아니고, 필요하다면 본인이 잠자면서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내가 직업적으로 형편없고 인간적으로 매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지루한 인간이라고 하셨어요. 제대로 혼쭐이 났죠. 그런 일은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심지어 아내한테서도요.”
“그런데 어떻게 계속 친구로 남아 있는 거예요?”
“자.” 도리스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 처리를 할 시간이야. 들어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준비 안 했어. 셔먼은 어디 있니?”
“저희 별거중이에요.” 그녀를 따라 일광욕실로 향하면서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창가 근처 고리버들 의자에 앉았다. 도자기 화분에 담긴 난초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럴 때가 됐지.” 도리스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너희들은, 뭐랄까, 마음이 맞는 사이가 아니라는 걸 난 진작에 알아봤거든.”
“그랬을지도요.” 나는 덤덤히 말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는데, 그 ‘마음이 맞는다’라는 어휘 선택이 내 안에서 고요한 분노를 자아냈다. 나는 나중에 그 이유를 분석해보고자 마음속에 노트를 남겼다.
“본론은 이거야.” 도리스가 말했다. “알로를 시설로 옮길 때가 됐어.”
나는 지나치게 현대적이라 쓰기 불편해 보이는 샤워기의 이상하게 생긴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수도꼭지가 지능 테스트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었다. 온도를 조절하려고 쩔쩔매는 동안 아래쪽 꼭지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마침내 손잡이 뒤쪽에서 두 번째 고리를 발견했다. 아주 작은 돌출부를 잡고 돌려야 물을 샤워기로 보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너무 뻑뻑하고 잡기도 힘들어서 제대로 조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미 짧고 들쑥날쑥한 손톱 몇 개가 들리고 찢어지기도 했는데, 마침내 나는 그 건방진 장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고 샤워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아기는 커서 무엇이 될까? 모든 아기는 커서 무엇이 될까? 나는 지금 이 단계에서 개입이 이루어진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기를 안고 거기에 앉아, 그 개입이라는 게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는데 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자신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셔먼, 착하지.” 내가 아기를 살짝 흔들어주며 말했다. “엄마는 금방 올 거야. 걱정 마.” 셔먼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엄마 금방 올 거야, 착하지, 아가.” 내가 충분한 다정함과 확신을 담아 말하고 있는 걸까? 아기를 마지막으로 안아본 것은 부모님이 사라진 후 마거릿의 집에 방문했을 때였다. 마거릿의 쌍둥이 아기들의 이름은 보아즈와 브람이었다. 그때도 아기들에게 엄마가 금방 올 거라고 달랬는데, 그러다가 나의 엄마도 곧 돌아올지 궁금해졌고 결국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울자 하나가 따라 울었고, 그러자 나머지도 따라 울었다. 마거릿이 와서 우리를 보더니 내가 베이비 시터로는 빵점이라고 말했다. “셔먼,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야.” 내가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너에게는 그 고된 시련에 맞설 기회가 있어. 세상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살아줄 필요는 없단다.”
“너 그 회계사 동생을 좋아하는 모양이로구나.”
“할아버지도 캐서린 얀선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요.” 내가 맞받아쳤다.
“아주 웃기는구나. 난 유부남이란다.”
“글쎄요, 데일도 유부남인걸요.” 그러고는 덧붙였다. “아, 참고로 저도 여전히 유부녀고요.”
“결혼이라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지.”
나는 당분간 데일과 버트,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어야 했다. 할아버지와 내가 이 먼 길을 온 것은 그들을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비극의 한복판에서 기어이 농담을 찾아내는, 지적이고 엉뚱한 블랙코미디의 장인. 〈애틀랜틱 먼슬리〉 등 유수의 문예지 에디터로 일하며 2005년 첫 소설집 《스톱 댓 걸(Stop That Girl)》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장편소설 《맥그리거 텔스 더 월드(MacGregor Tells the World)》를 펴낸 뒤 2016년 장편소설 《포터블 베블렌(The Portable Veblen)》으로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르며 현대 미국 문단의 독보적 목소리로 자리매김했다. 그로부터 칠 년 뒤, 공들여 내놓은 야심작이 바로 《북쪽의 개》다.
《북쪽의 개》는 이혼과 퇴사, 부모의 실종이라는 상실을 겪은 삼십대 여성 ‘페니’가 낡은 밴 ‘북쪽의 개’에 몸을 실으며 시작된다. 이야기는 슬퍼할 새도 없이 유쾌한 필치로 뻗어나간다. “누군가를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 모두 조금씩 미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개성 강한 괴짜들을 차례로 등판시키고, 시트콤적 상황 설정과 스탠드업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입담으로 주인공 페니의 여정을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꺾는다.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에디터스 초이스, 〈뉴요커〉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되고 여성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엘리자베스 매켄지는 현재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에 머물며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삶의 비극조차 다정한 농담으로 치환하는 소설을 통해, 각자의 고장 난 밴을 끌고 길 위에 선 독자들에게 ‘어쩌면 우리 모두 조금씩 미쳐 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라는 뭉클한 위로를 건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