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뉴욕에서 탈출했다. 부자와 전문직 계층은 침몰하는 배의 쥐들처럼 햄프턴이나 코네티컷, 버크셔, 케이프코드, 메인 등 코로나에 잠긴 뉴욕만 아니라면 어디로든 찍찍거리며 빠져나갔다. 우린 남겨진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를 믿고 싶어했다. 전염병과 우릴 둘러싼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의 삶이 언젠가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거짓말을 믿고 싶어했다.
“어젯밤 침대에 누워 생각했습니다.” 그는 연설하듯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며칠 밤에 들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여기 올라온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금방 지나갈 겁니다.” 유로비전이 근거도 없이 쾌활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우린 버티기만 하면 돼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으니까.”
랑보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요? 진전? 그걸 진전이라고 합니까? 그건 저주받은 단어예요. 진전이라는 건 사실 모든 세대가 자신들 시대에 유행하는 무지와 공포, 편견을 정당화하려고 스스로 들려주던 허구에 불과합니다.”
“그보다 더 나쁘지.” 비니거가 말했다. “우린 퇴보하고 있어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인종주의자들 좀 봐요. ‘오렌지색 멍청이’가 미국의 불을 꺼버린 지금 어둠 속에서 바퀴벌레들처럼 기어 나오고 있잖아요.”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어요.” 랑보가 말했다.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 깨우치고 교육받은 사람들보다 백배는 많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어리석음을 키우고 보존하는 데 완벽한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발명했고.”
나는 랑보가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이 어처구니없고 짜증스러웠다. 그는 공산주의가 실제로 어떤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공산주의를 격렬히 증오했고, 나는 자라면서 공산주의의 잔혹함에 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어떤 수업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아라크네라는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알게 됐어요. 베 짜는 솜씨가 훌륭했던 소녀죠. 소녀가 어떤 신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신은 그녀를 거미로 바꿔버렸어요. 사람들은 그 얘기를 끔찍한 형벌이라고 보던데,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터뜨렸어요. 왜냐하면 제가 예전에는 거미였거든요. 소녀와 거미 가운데 거미를 선택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물론 암컷 거미여야 하지만요. 인간 소녀들은 늘 남성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신세지만, 거미 세계에서는 정반대예요. 그렇다고 수컷을 전부 잡아먹지는 않아요. 그건 고정관념이 만든 과장이죠. 우린 가장 작고 민첩하지 못한 놈들만 먹어요.
이윽고 무슈 랑보가 헛기침을 했다. “저는 우리가 이런 빌어먹을 질병에 맞서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뭔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어쩌면 후손들을 위해 이야기를 기록해야 할 수도 있어요.”
“기록을 남긴다고?” 비니거가 말했다. “말도 안 돼.”
“어떤 감정인지 이해해요.” 프로스페로가 말했다. “하지만 이곳 옥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바이러스의 공포와 따분함에 맞서는 우리 인간성의 선언입니다. 잊혀서는 안 되는 것들이죠.”
“이런, 입들 다물어요.” 반지숙녀가 말했다. “일단 저는 누구든 기록을 시작한다면 옥상에 올라오지 않겠어요.” 마지막에 들은 그녀 이야기를 생각하면 그런 반응을 탓할 수 없었다.
나를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보던 유로비전이 사뭇 느릿느릿 말했다. “저도 버프 캐슬 기억해요.”
“그렇군요.” 나는 그의 눈길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곳 옆집에서 이야기 나누기 행사 같은 건 없었어요.”
“이런. 그럼, 어디 다른 곳이었나 보죠.” 내가 말했다. “잊어버렸어요.”
“게다가…….” 그의 목소리가 한 단계 낮아졌다. “프리야나 누구나 그런 이야기를 낯선 사람들 앞에서 했을 리가 없을 것 같아요.”
“방금 말했잖아요. 그냥 지어낸 이야기라고.” 플로리다가 말했다. “충격을 주려고 한 얘기겠죠.”
“저는……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유로비전이 천천히 말했다. 그의 회색 눈동자는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지 마세요.” 반지숙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유로비전은 내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 이야기 속 여자들 가운데…… 당신은 누구죠?”
“아무도 아니야! 닥치고 꺼져버려.”
반지숙녀가 유로비전에게 쏘아붙였다. “빌어먹을 입 좀 닫아요.” 그녀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기는 저런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어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가슴속 압박감이 너무 고통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젠장,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모두가 마침내 날 제대로 봐주었으면 했다. “제가 팔을 잘랐어요.”
1939년 11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진학 후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토론토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50권이 넘는 소설과 시, 비평집을 출간했다. 1981년 《신체적 상해Bodily Harm》로 아서 C. 클라크상과 총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명성을 획득했고, 1985년 출간한 장편소설 《시녀 이야기》는 성과 가부장적 권력의 이면을 파헤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9년 《시녀 이야기》 이후 34년 만에 출간한 후속작 《증언들》로 부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