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 상태로 갑자기 농장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깔깔거리며 외쳤지, 난 까마귀야! 난 큰까마귀야! 난 왜가리야! 난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새야! 그러다가 풀밭에 쓰러지더니 죽은 듯 가만히 누워 푸른 하늘을 보았어, 그리고 말했지, 난 어딘가 잘못됐어요, 아주 단단히 잘못됐어요,
갑자기 네가 눈을 번쩍 뜨더니 내 손에서 메스를 거칠게 낚아채서 허벅지를 푹 찌르고 세로로 그었어, 곧바로 피가 솟구쳤지, 그 순간 너의 눈빛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던 눈빛이었고, 나는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널 바라볼 뿐이었어, 넌 이게 바로 네가 원하는 거라고, 네 몸이 절개되기를, 해부당하기를 원한다고 했어, 수달도 분명히 이런 기분이었을 거라고, 네 안에는 뭔가 숨겨져 있는데 그걸 꺼내야 한다고,
내가 말했지, 히틀러는 사랑에 빠질 수 없었다고, 왜냐하면 히틀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러자 네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어, 나도 날 사랑하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는걸요. 내겐 사랑이 엄청 많고 또 미움도 엄청 많아서 내 몸 밖으로 흘러넘쳐요.
그때부터 넌 방 벽지에 가느다란 연필로 너의 구호를 적기 시작했는데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보아야만 읽을 수 있었지, 나는 혼자이지만 외로움을 친구로 삼을 정도는 아니다, 나는 내 전장의 병사다,
왜 그런지 알아요? 네가 거칠게 물었고 내가 고개를 저었더니 속삭였어, 마치 비밀이라도 된다는 듯이, 죽은 건 망가질 수 없으니까요, 죽은 건 죽은 거고 그걸로 끝이에요. 망가져서 산산조각이 나는 건 남아 있는 사람들이에요.
너는 벤치에 올라섰고 너의 흰 잠옷이 저녁 바람에 펄럭였어, 너는 마치 배우처럼 선언했지, 너는 너 자신의 수집가이자 도둑이라고, 너는 너를 도둑이라 부르기를 좋아했어, 그 말이 네가 그토록 갈망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거든, 비록 그 논리도 훔쳐온 것이긴 했지만 말이야, 너는 늘 네가 존재할 권리를 훔쳤어,
네덜란드의 작가. 1991년,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J.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고 문학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레이네벌트는 이 책을 네덜란드 개혁교회 신자인 부모님 몰래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개혁교회 공동체에서는 마법 이야기를 읽는 것이 금기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책 전체를 타이핑해 컴퓨터에 저장해두고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며 창작의 뜻을 키웠다. 교사가 되고자 사범 과정을 공부하던 중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중퇴했다. 2015년 첫 시집 《송아지의 털Kalfsvlies》을 발표했고, 이듬해 C. 뷔딩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8년 첫 장편소설 《그날 저녁의 불편함》으로 ANV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와 소설 분야 모두에서 촉망받는 신예 작가로 떠올랐다. 2020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다. 당시 스물여덟 살로 역대 최연소 수상이었다. 이외에도 시집과 에세이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활발히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