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디저트에서 피어난 다섯 가지 세계
일상 밖으로 질주하는 소설적 상상력의 향연
디저트란 무엇일까. 당연히 아는 것 같지만 막상 한마디로 정의하려면 어렵다. 식사 후에 먹는 것? 그렇다면 쓰고 떫은 것도, 맵고 짠 것도, 뭐든지 디저트가 될 수 있을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다. 디저트는 배를 채우기보다 마음을 채워준다는 것, 지난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 《녹을 때까지 기다려》는 다섯 명의 작가가 각자 하나씩의 디저트를 소재로 쓴 단편소설 앤솔러지다. 오한기, 한유주, 박소희, 장희원, 이지― 일상적 질서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쌓아온 작가들은 각각 초콜릿, 이스파한, 젤리, 사탕, 슈톨렌에서 영감을 받아 형형색색의 세계관을, 평범한 일상 밖의 소설적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관습을 비틀면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온 오한기는 신작 〈민트초코 브라우니〉에서 아이들 대상 공부방을 운영하고자 누구보다 ‘멀쩡한’ 소설을 써내야 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독보적인 스타일로 문학적 실험을 거듭하는 한유주의 〈세계의 절반〉에는 다른 사람들의 전생을 보게 된 치과의사가 등장한다. 특유의 이지적이고 섬세한 문체를 만장일치로 상찬받으며 데뷔한 박소희의 〈모든 당신의 젤리〉에는 말하는 젤리가 등장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기를 부탁한다. 관계가 부서지는 지점을 사려 깊게 들여다보는 장희원은 〈박하사탕〉에서 절교한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걷는 산책길로 독자의 손을 잡아 이끈다. 상처 입은 이들의 세계를 환상성과 유머로 보듬어온 이지는 〈라이프 피버〉에서 십 년 만에 재회한 엄마와 빵을 나눠 먹는 풍경을 그린다.
독서 감정 흐름을 고려한 독자 중심적 구성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아름다운 만듦새
저자 이름 가나다순으로 작품 배열하는 일반적 방식과 다르게, 《녹을 때까지 기다려》는 독자의 감정 흐름을 고려해 작품 수록 순서를 정했다. 한 장의 음반을 듣는 것처럼 소설을 한 편씩 순서대로 읽어가면 독자는 기쁨에서 초조함으로, 미소에서 눈물로, 염려에서 통쾌함으로 여러 감정을 차례로 통과하게 된다. 작품 간 경계는 희미해지고 소설로 세공한 상상력의 세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사실 어느 작품을 먼저 읽어도 좋다. 다섯 작가의 소설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매력적이므로, 취향대로 디저트를 골라 먹듯이 원하는 순서대로 읽어도 색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련된 디자인과 부담 없는 판형은 《녹을 때까지 기다려》의 만듦새를 한층 높여준다. 트렌디한 화풍으로 음반 재킷과 문학 도서 표지를 다수 작업하며 주목받는 권서영 그림작가의 일러스트로 표지와 내지를 단장했다. 어느 가방에도 들어갈 수 있는 판형은 소장욕을 자극한다. 어디든 가져갈 수 있는, 한 손에 들어오는 비일상의 틈. 비채는 한국 작가들과 함께하는 앤솔러지를 앞으로도 이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