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고랄라 목욕탕
“딱! 일주일만 목욕탕을 열어 주렴.”
몸도 마음도 노곤하게 녹아내리는 ‘다정한 목욕탕’에 어서 오세요!
다정한 고랄라 목욕탕 박미라 저자 홍그림 일러스트
  • 2024년 10월 28일
  • 80쪽148X215mm주니어김영사
  • 979-11-943-3062-2
다정한 고랄라 목욕탕
다정한 고랄라 목욕탕 저자 박미라 2024.10.28
“딱! 일주일만 목욕탕을 열어 주렴.”
아버지의 유언대로 일주일간 낡고 오래된 목욕탕을 운영하게 된 아들 고랄라. 동네 이웃과 부대끼며 깨닫는 오랫동안 이어온 것의 소중함,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지키는 마음과 의미
P.11-13
동네 이웃들은 다정한 목욕탕을 ‘삼대탕’이라고 불렀어요. 때를 벗기거나 목욕하지 않아도 오가는 길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냥 잠깐 쉬었다 가기도 했지요.
어른들은 고랄라에게 말했어요.
“목욕탕을 대대로 이어 가야 한다.”
“아무렴. 사대탕, 오대탕 계속해야지.”
고랄라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작고 낡은 목욕탕이 답답했거든요.
P.32-34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니 고랄라는 왠지 기분이 상쾌했어요.
만사와 호이가 땀을 닦으며 말했어요.
“아저씨, 고마워요. 아빠처럼 놀아 줘서요.”
“목욕탕 할아버지도 늘 우리랑 놀아 주셨어요. 우리는 아빠가 없거든요.”
코끝이 찡해졌어요. 고랄라도 어릴 때 아버지 팔뚝에 매달려 놀곤 했어요. 아버지의 듬직한 등에 업히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죠. 아버지는 훌쩍 자라 떠나 버린 고랄라 대신에 동네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보살폈나 봐요.
‘아, 아버지…….’
고랄라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졌어요.
P.68-69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어요. 고랄라는 바퀴 달린 가방에 짐을 챙겼어요. 집과 직장이 있는 도시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뒤를 돌아봤어요. 구석구석 깔끔하게 정리된 목욕탕이 눈에 들어왔어요.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 위로 고양이 할머니가 떠올랐어요. 땀을 뻘뻘 흘리며 거울을 닦던 모습이요. 팔뚝에 매달린 만사와 호이, 장기 두는 꼬꼬 영감과 꿀꿀 영감, 도망치는 백설기 모습도 차례로 이어졌어요.
애써 눈길을 돌리려는데 그 모습들이 어느새 아버지 얼굴로 바뀌어 있지 뭐예요?
돌아온 고향․ 10 / 동네 사랑방․ 22 / 오늘은 쉬는 날․ 35 / 냥냥이와 친구들․ 50 / 다 함께 일요일․ 58 / 다시 월요일․ 68 / 작가의 말․ 76
작가이미지
저자 박미라

달콤, 쌉쌀, 오싹, 포근한 이야기를 찾아 오늘도 두 눈에 불을 켜고 모험을 나섭니다. 《금발머리 내 동생》으로 제43회 창주문학상을 받았고 《금슬이 열쇠를 찾아라》, 《오만데 삼총사의 대모험2》 등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우리 아이 마중물 읽기 책, 〈퐁당퐁당 책읽기〉 세 번째 책 출간
몸도 마음도 노곤하게 녹아내리는 ‘다정한 목욕탕’에 어서 오세요!
그림책을 졸업하고 동화책으로 넘어가야 하는 시기, 하지만 너무 긴 글과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버거운 시기의 6~8세 아이들을 위한 주니어김영사의 〈퐁당퐁당 책읽기〉 시리즈 세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초코 케이크 도둑》, 《당근 밭의 수상한 발자국》을 잇는 새 책의 제목은 《다정한 고랄라 목욕탕》. 그간의 작품에서 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으로 사람 간의 이해와 소통을 강조해 온 박미라 작가는 이번 책에서도 시간과 마음을 들여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 단절된 사회에서 살아가느라 잊어버리는 소중한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정성껏 담아냈다.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깊고 묵직한 주제가 마음에 와닿아 목욕탕처럼 따듯하고 포근한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목욕탕을 맡아 달라니……. 아버지 유언을 모른 체할 수도 없고 이를 어쩐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고랄라는 아버지가 남긴 유언 때문에 일주일 동안 삼대째 이어오고 있는 오래된 목욕탕 운영을 떠맡게 된다. 애초에 불편하기만 한 시골과 낡은 목욕탕에 매이는 삶이 싫어서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던 고랄라는 고작 일주일인데 대충 버티고 도시로 돌아가자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 열어라, 청소해라 등등 잔소리꾼 고양이 할머니에 화장실 드나들 듯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동네 이웃들, 목욕탕을 놀이터처럼 누비는 꼬마들까지 하루 만에 혼이 쏙 빠질 지경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보고 들어 온 것들이 몸에 새겨져 있는 듯 서툴렀던 목욕탕 일도, 낯설기만 했던 이웃들도 차츰 익숙해진다. 그리고 목욕탕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챙기거나 아버지와의 추억을 나누는 이웃들을 보며 고랄라는 아버지가 남긴 유언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낡고 오래되어 ‘정’ 자가 떨어져 버린 목욕탕. 고랄라는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목욕탕에 ‘정’을 붙일 수 있을까?
 
오래오래 지켜 내고 싶은 다정한 것들에 관하여
동네 문방구에서 분식집으로 이어지는 하굣길 참새 방앗간 코스, 암묵적인 약속에 따라 가방만 놓고 놀이터로 모여 놀던 오후 시간, 친구네 집이나 이웃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일이 아무렇지 않았고 일요일 아침이면 부모님과 함께 목욕탕에 갔다가 바나나 우유를 사 먹는 일이 당연하던 때가 있었다. 1년 만에도 너무 많은 게 바뀌는 요즘 세상에서는 이미 박물관에나 전시될 법한 옛 풍경이 된 지 오래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의 주 배경인 목욕탕 역시 꽤 낯선 공간이다. 놀거리 문화로 자리 잡은 찜질방은 더러 있어도 목욕만 하는 목욕탕은 드문 데다가, 그마저도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문 닫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걸 잊어버리고 많은 걸 바꾸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
고랄라 또한 고향을 한참이나 떠났던 탓에 익숙했던 것들에 어색함을 느낀다. 하지만 오랜 시간 몸과 마음에 새겨진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 시종일관 투덜대던 고랄라는 매일같이 동네 이웃들과 부대끼면서 뜨끈한 목욕물에 노곤하게 풀리는 몸처럼 사르르 녹아내린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에 다시 익숙해진다. 새벽같이 시작되는 일과도, 청소하며 흥얼거리던 아버지의 콧노래도, 잊고 지냈던 ‘정’이라는 글자에도.
이 책의 또 다른 포인트는 매 페이지를 꽉꽉 채우고 있는 삽화이다. 올망졸망한 홍그림 작가의 그림은 자칫 진중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생동감을 주고 유쾌함을 더했다. 내용 이해를 돕는 아기자기한 삽화와 함께 이야기를 읽어 가다 보면 ‘보는 것’에서 ‘읽는 것’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아이들도 책 읽기가 절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읽는 재미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를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