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놀라게 한, 최초의 본격 음식만화대전!
한국만화의 살아있는 전설, 허영만의 30년 집념이 그려진 역작!
《식객》은 가장 뛰어난 미각을 가진 작가가 펜끝으로 살려낸 한국 최고의 음식만화로, 기획만화 단행본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고 있다. 작가 허영만은 한국인의 정서와 살냄새를 가장 잘 그려내는 만화가로 뽑힌다. 한국적 서정을 대표하고 있는 최고 작가의 30년 집념의 성과물이 우리 밥상의 맛을 지키는 《식객》을 탄생시킨 것이다. 거침없이 전개되는 살가운 입담에 웃고, 명쾌하고 꽂히는 맛의 해법에 감탄하고, 가슴 속 깊은 곳을 적시는 감동에 눈물 흘리게 하는 삶의 진수성찬을 그가 요리해 놓았다.
<26화 반딧불이>
반딧불이에게 선사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태어난 자식을 돌보기 위해 날개가 떨어진 어미 반딧불이”의 극적인 삶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반딧불이의 생태를 조사하던 중 '태어난 자식을 돌보기 위해 날개가 떨어진다'라는 부분이 완전히 잘못된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반딧불이 암컷의 날개는 오랜 시간 동안 쓰지 않은 탓에 퇴화를 한 것이지 알을 낳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순간 날개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딧불이 날개 사건은 오래전 읽었던 책의 문구를 기억 스스로가 극적인 이야기로 꾸며놓았던 해프닝이었다. 곤충생태학과 관련된 책을 뒤지고 반딧불이와 관련된 국내 단체와 전문가에게 문의 전화를 해보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반딧불이 암컷의 날개는 단순히 퇴화로 없어졌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반딧불이를 대처할 다른 대상을 찾아야 하는데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름이라는 계절적 한계가 작업을 더욱 더디게 했다. 거기에 머릿속은 이미 반딧불이의 날개는 퇴화된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해 떨어진다는 극적인 이야기가 사실로 굳어진 상태였다.
며칠이 지나고 결국 원래 설정대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로 했다. 단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 성찬과 진수의 대화를 통해 ‘반딧불이 날개가 알을 낳고 자식을 돌보기 위해 떨어진다’는 부분이 사실이 아님을 독자에게 알리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한여름 반딧불이의 모성애와 연결된 삼계탕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사라져가지만 여전히 이땅에서 그 아름다운 불빛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반딧불이에게 선사하는 자그마한 '헌정이야기'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생태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은 잠시 잊기로 하자. 적어도 “반딧불이” 편을 보는 순간만이라도...
<27화 매생이의 계절>
매생이는 생소한 음식이다. 적어도 겉모양만 놓고 따지면 파래라 불러도 무관할 정도로 그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파래와는 엄연히 다른 해초류의 일종이다.
조리 방법도 달라서 파래는 흔히 무쳐 먹지만 매생이는 굴과 함께 국으로 끓여 먹는다. 또한 파래는 전국 어디서나 사시사철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매생이는 전라도 해안가 출신이 아니고서는 그 이름을 들어본 사람조차 극히 드물 정도로 귀한 재료 중에 하나다.
어떤 이는 거짓말 조금 보태어 “겨울에 매생이(국)를 먹지 못하면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그 지방 출신 사람들에게는 겨울 별미 중에 별미인 것이다.
정약전이 《자산어보》에 ‘매산태’로 소개하며 “누에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척에 이르고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고 서로 엉키며 풀어지지 않는다”라고 적어놓은 별미 매생이(국). 매생이, 굴, 다진마늘, 참기름 정도가 들어가는 재료의 전부지만, 매생이의 고운 머릿결에 바다의 향기와 고소한 맛이 모두 담겨 있어 미각을 부드럽게 자극하는 별미 중의 별미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예비 사위 성격 테스트용으로 매생이국을 대접한다고 한다. 매생이국은 뜨거워도 연기가 나지 않는 탓에 덥석 입안으로 삼켰다간 입 천장을 데이기 일쑤다.
매생이로 유명한 장흥 내저마을. 늦여름 난데없이 매생이를 구하겠다고 내저마을을 찾아온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내저마을 어르신들(겨울에만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 취재를 진행했다). 한겨울 작업을 위해 미리 매생이발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사람들은 여름에도 칼국수를 먹는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주변에 항구가 없어 바다가 잔잔하고, 공장이 없어 오염물질이 없으며 건강한 갯벌과 적당한 내해를 갖추고 있는 내저마을. 올겨울에도 매생이가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28화 식사의 고통>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식객' 연재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늦여름 어느 날, 후배로부터 친구의 부음 연락이 왔다. 1년 동안 연락이 끊겨 이리저리 수소문하던 친구였는데, 후두암으로 그간 고생을 하였다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아니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없었다. 두 달 전 화장을 했다는 말에 그저 머리가 멍할 뿐이었다. 일도 손에 잡히질 않고...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그날 내내 친구의 부음 소식은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날 저녁 TV에서 연신 터져나오는 웃음소리에 눈을 떠보니 한창 뜨고 있는 개그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시 토막잠을 잔 탓일까.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웃어버리고 만 것이다.
'제기랄... 친구 부음 소식 접한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죄책감에... 자책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옥상에 올라가 늦여름 미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연신 담배를 피우던 그때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느낌이 '식사의 고통'의 모티브가 되었다.
몸이 요구하는 원초적 욕구에 이성이 무참히 무너졌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비참함 그 자체다. 모두가 산해진미, 미각의 탐닉과 즐거움만을 이야기하지만 때론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것이 고통일 때도 있다.
당신은 그런 경험이 있는가? 모든 것이 허망하여 마음은 이미 먹는 것을 잊어버렸는데 몸이 요구를 해서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때의 그 느낌을...
상구의 욕 한마디는 자신의 몸에 던지는 원망이다. 살고 죽고...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를 확실하게 구분지으려는 몸의 냉철함에 대한 원망인 것이다.
<29화 탁주>
*청주, 탁주, 막걸리는 모두 한 독에서 나온다. 쌀과 누룩, 물로 빚어낸 술에 용수를 박으면 맑은 청주를 얻는데 이 용수 박는 과정을 생략하고 물을 타서 술을 걸러내면 흐린 색깔의 탁주를 얻는 것이다. 다음으로 막걸리는 청주를 걸러낸 후 남은 술 지게미를 물과 함께 걸러서 마신다. 이것을 농주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지방에서는 탁주를 농주라고 하고 막걸리를 탁주라고도 하며 또한 탁주를 막걸리라고도 하니 이 탁주, 농주, 막걸리를 명확하게 구분 짓기에는 모호함 점도 있다.
어쨌든 청주, 탁주, 농주, 막걸리는 모두 한독에서 탄생한 한 형제인 셈이다.
최근에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는 거의 모두가 일제시대에 설립된 주조공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개량형 막걸리'이다.
모든 곡류로 만드는 술은 일정 기간 '숙성'이라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 우리 전통주는 말할 것도 없으며 포도주가 그렇고 위스키가 또한 그 예이며 맥주 또한 어김없이 숙성을 거쳐야 제대로 된 맛을 낸다.
그런데 이 '개량형 막걸리'를 생산하는 대부분의 주조 공장들은 이 숙성 기간을 무시하기 일쑤다. 막걸리 뚜껑을 열 때 김 빠지는 소리가 그것을 증명해 주는데 이산화탄소는 술 맛을 아주 고약하게 하는 경향이 있어 이 맛을 감추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각종 감미료를 첨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트림이 나오고 숙취가 심한 것이다. 이런 궁여지책이 소비자들로부터 막걸리를 점차 외면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감출 수가 없다.
탁주(막걸리)의 맛은 통쾌해야 한다. 육체의 고단함도 마음의 근심걱정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그런 통쾌함이야 말로 탁주의 미덕이다. 탁주는 잔이 아닌 사발로 마신다. 빛깔을 감상하고, 향을 맡고, 입 안에 한모금 머물고 맛을 음미해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도 탁주에는 없다. 그저 사발에 가득 채운 후 벌컥벌컥 들이키고 옷소매로 입가를 스윽 문지른 후 김치 한점 집어 먹으면 된다. 다만 그 뿐이다. 그것이 바로 탁주의 통쾌함이다. 아무런 가식도 절차도 없는 통쾌함.
<30화 청주의 마음>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발전을 거듭한 우리의 전통주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꽃을 활짝 피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집집마다 고유의 술이 있었다고 한다. 극심한 흉년이 아니라면 곡류로 술을 빚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가 없었는데 발효음식에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한민족이다 보니 술 빚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터이다. 누룩과 곡류, 그리고 좋은 물로 빚은 술이니 그 맛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가히 천하 명주라 해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집집마다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가양주(家釀酒)가 있었으니 그 종류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명주를 집집마다 빚었던 술의 나라였던 셈이다.
중국 당나라시대 문인들도 그 맛에 흠뻑 취해 천하 제일주로 칭송을 아끼지 않던 우리의 고유 청주가 자취를 감추게 된 데에는 일제시대 주세령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해방 후 일본의 주세령을 이어받은 정부 정책도 원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정부 차원에서 전통주 살리기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지만 형식적인 측면이 많아 아쉬움이 크다. 단순하고 손쉽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술 빚는 과정은 엄청난 정성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요령을 피우면 바로 술 맛에 나타난다고 할 정도 과정 하나하나에 정직한 손길이 요구된다.
이렇게 탄생한 우리 전통주의 맛은 발효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똑같은 재료로 빚어도 누가 빚느냐에 따라서 그 맛이 다르다고 할 정도니.
1974년 《집을 찾아서》로 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전에 당선되며 데뷔했다. 《각시탈》《무당거미》《오! 한강》《벽》《아스팔트 사나이》《비트》《미스터Q》《날아라 슈퍼보드》《사랑해》《타짜》《부자 사전》《꼴》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한국 만화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2004년 부천국제만화대상 및 대한민국만화대상, 2007년 제7회 고바우만화가상, 2008년 대한민국 국회대상을 수상하였으며, 2010년 데뷔 이래 한국 만화계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받아 만화가로서는 최초로 목포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2003년 《식객 1: 맛의 시작》 출간을 시작으로 허영만의 《식객》은 전국 방방곡곡의 먹거리와 그 안에 담긴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대한민국 요리만화의 대표 명사로 자리 잡았다. 군침을 돌게 만드는 음식 설명과 그 음식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프랑스 등 전 세계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