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뇌 이해의 패러다임을 바꾼 놀라운 감각 결합의 세계
감각의 결합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인류의 4퍼센트가 경험하는 공감각에 관한 신경학적 연구
공감각 분야의 선구적 연구자 리처드 사이토윅 박사가 풀어쓴 공감각 개론서. 공감각이란 예를 들어 소리를 들으면 색이 보인다거나 맛을 느끼는 등 어떤 자극을 자극 유발체와는 다른 별개의 감각 및 개념 속성으로 지각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일어나고, 감정이 실려 있으며, 지각한다는 사실이 인식되고, 유전된다. 공감각은 몇십 년 전만 해도 상상력의 소산이나 ‘푸른 종소리’ 같은 표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은유, 어린 시절 각인된 단순한 기억으로 치부되어 당시 과학계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1970년대 말, 저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감각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연구를 시작해 공감각 연구를 주류 과학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공감각의 개념과 역사, 공감각은 어떻게 작동하며 왜 존재하는지에 관해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를 근거로 공감각의 A부터 Z까지를 쉽고 간결하게 전달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공감각자들이 경험하는 세상을 상상해볼 수 있고, 각자의 뇌는 수동적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현실을 구성하여 철저하게 주관적인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 속에서
선천적인 공감각을 절대음감 같은 하나의 능력으로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이 능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치료가 필요하지도 않다. 오히려 이처럼 사물을 지각하는 추가적인 연결고리 덕분에 거의 모든 공감각자들은 비범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_18쪽
친구들은 경고했다. “여기서 손 떼는 게 좋겠어. 이건 뭐, 말도 안 되고 너무 뉴에이지스럽잖아. 잘못 건드렸다간 경력에 문제만 된다고.”
그들의 말은 분야에 상관없이 정통을 고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일 법한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버리거나 부인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에 정립된 영역 밖에서 생각하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많은 젊은 과학자들이 박사과정 논문으로 공감각을 연구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연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평판에 흠을 낼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_19-20쪽
근본적인 질문은, 공감각이 ‘시끄러운 색’, ‘달콤한 사람’처럼 누군가의 유난히 생생한 상상력의 소산, 또는 은유적 표현이 아닌 실재임을 어떻게 증명하겠는가에 있다. 그러나 이처럼 증명을 요구하는 행위는 또 다른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도대체 누구에게 실재여야 한단 말인가? 의심하는 자들? 아니면 공감각자 자신? _21쪽
공감각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추가로 더 많이 지각하기 때문에 혼란스럽거나 버겁지 않겠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공감각자들은 이 질문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지는 시각장애인이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하면 알 수 있다. “당신이 정말 안쓰럽군요. 눈만 뜨면 언제 어디서나 뭔가를 봐야 하잖아요. 그렇게 늘 뭘 보고 있다는 게 미칠 것 같지 않나요” 물론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본다는 것은 우리의 정상적인 ‘현실의 결texture of reality’이기 때문이다. 공감각자들에게는 그저 나머지 사람들과 다르게 짜인 현실이 있을 뿐이다. _24-25쪽
공감각은 두 가지 의미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었다. 먼저, 과학계는 뇌가 조직되는 과정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했다. 이제 뇌 전체에서 혼선cross talk이 일어난다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단지 공감각자의 뇌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회로 안에서 혼선이 좀 더 심하게 일어날 뿐이다.
다른 패러다임 전환은 각 개인 안에서 일어났다. 공감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세상을 나와 같은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보는 눈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면 같은 ‘사실’을 두고도 목격자들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나와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진실이다. 공감각은 각자의 뇌가 어떻게 세계를 주관적으로 고유하게 걸러내는지 잘 보여준다. _41쪽
현실은 자기 밖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두개골의 조용한 어둠 속에 둘러싸인 채, 뇌는 내면의 움벨트를 하나의 이야기, 한 사람의 주관적 세계의 현실로 엮어낸다. _110쪽
지각은 비록 우리가 그 사실을 거의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근본적으로 다감각적이다. 뇌가 성숙하면서 지각이 분화하는 유아기의 지각이 다감각적임이 분명하다면 이를 바탕으로 왜 어떤 사람은 공감각자로 남는지에 대한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공감각자는 대부분 사람이 잃어버리는 미숙한 상호작용을 더 많이 보유했거나, 또는 대다수 사람들에게서는 의식 아래로 가라앉아 숨어버린 정상적인 다감각 과정을 숨김없이 끌어올린 사람일 것이다. _165쪽
한 여성은 대학에 갈 나이가 되어서야 대부분 사람들이 정수를 3차원 공간에서 인지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여성은 수학 강의 중에 교수에게 “숫자들이 제자리에서 자꾸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방정식을 푸는 게 어렵다고 불평했다. 이 말에서 뭔가 중요한 걸 감지한 교수는 긴 철사를 건네며 숫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가리켜보라고 한 다음 의자에 앉아 지켜보았다. 그녀는 놀라지 않고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철사가 고문받은 것처럼 보일 때까지 여기저기 3차원으로 구부렸다.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해서 각도를 정확히 교정했다.”
그녀는 철사를 내려놓으며 대단히 진지하게 물었다. “이게 뭐가 이상한가요? 다들 수를 저렇게 보는 거 아니었어요?” _202쪽
감각의 입력이 차단된 뇌는 그 자리에 없는 것을 지각하면서 자기만의 현실을 투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샤워기 물소리 때문에 바깥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 전화벨이 울리거나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착각을, 그러니까 환청을 들은 적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_221쪽
어떤 메커니즘도 궁극적으로 ‘왜’라는 질문의 답에 이르지는 못하며 모두가 바라는 근본적인 의미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왜 누구는 공감각자이고 누구는 그렇지 않냐는 질문은, 왜 어떤 사람은 편두통이나 뇌전증이 있고 누구는 그렇지 않냐고 묻는 것과 같다. 인류는 무려 4,000여 년간 발작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고대인들은 뇌전증을 ‘신성한 병’이라고 불렀는데, 이 병에 걸린 자들이 초자연적인 영혼에 사로잡혀 전조와 예시의 축복을 받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뇌전증에 대해 세포는 물론 분자 수준까지 상세하게 알고 있으나, 어떤 이는 뇌전증에 걸리기 쉽다고 말하는 것 말고 ‘왜’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대답할 수가 없다. 얼마간은 공감각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_236쪽
과학에서 법칙이란, 자연이 예외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감각이 단순한 호기심거리가 아닌 이유이다. 공감각은 확장된 마음과 뇌, 그리고 현실을 구성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을 바라보는 창문이다. 공감각자와 비공감각자 모두에게 움벨트는 존재 전체의 작은 조각일 뿐이다. 인간의 뇌는 수동적인 안테나가 아니라, 물리적 세계로부터 뇌 스스로 추출한 작은 조각들로 현실을 구성한다. 여러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는 공감각은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그리고 각자의 뇌는 맨 처음 지각한 것을 고유한 방식으로 걸러내어 철저히 주관적인 세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_250쪽
차례
들어가는 말
1장 공감각인 것, 공감각이 아닌 것
2장 공감각 연구의 간략한 200년 역사
3장 알파벳, 숫자, 냉장고 자석 패턴
4장 공감각의 다섯 범주
5장 나는 얼마나 좁은 움벨트 안에 살고 있는가?
6장 화학 감각: 오렌지는 꺼끌꺼끌, 커피는 기름진 초록색 맛, 흰색 페인트 냄새는 파란색
7장 귀로 보는 사람들
8장 오르가슴, 아우라, 감정, 촉각
9장 수형, 순서배열의 공간적 인지
10장 후천성 공감각: 같다고 하기엔 너무 다른
11장 공감각 메커니즘
해제
용어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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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워싱턴대학교 신경학과 교수. 공감각 분야의 선구적인 연구자. 1970년대 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과학계에서 상상력의 소산이라며 무시됐던 공감각 현상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연구를 시작해, 공감각 연구를 주류 과학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과 함께 쓴 《수요일은 인디고블루: 공감각자의 뇌를 발견하다》로 2011년 몽테뉴 메달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공감각: 감각의 융합》 《모양을 맛보는 남자》 《신경학으로 본 신경심리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