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달마부터 이어지는 공안의 지혜
전무후무한 선의 고전을 한 권으로 읽는다
《종용록》은 선종 5가 가운데 조동종(曹洞宗)의 바이블 격인 공안집이다. 임제종의 《벽암록》과 쌍벽을 이루는 선불교의 위대한 고전으로, 화두(話頭)의 진면목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형식을 갖춘 ‘공안(公案)’ 100가지를 모은 책이다.
이것을 단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도록 명쾌하게 해설한 책이 《한 권으로 읽는 종용록》이다. 공안의 핵심을 보전하면서도 쉽고 간결하게 풀어내어,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 우리 시대 학승(學僧)으로 유명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명예교수 혜원(慧?) 스님이 해설했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 공안(公案)
선불교에서는 화두를 살펴 깨닫는 방식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다. 이것을 ‘화두[話]’를 ‘살펴본다[看]’고 하여 ‘간화선(看話禪)’이라고 하였다. 화두는 곧 ‘말의 머리’를 뜻하므로, 말보다 앞선 언어 이전의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곧 깨달음으로 가는 길로 여겨져 왔다.
수행자가 화두를 참구하며 생긴 의심들을 스승에게 찾아가 물으며 가르침을 받는 것이 간화선의 일반적인 수행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이 점차 정형화되어 자리 잡은 문답이나 일화가 곧, ‘공안(公案)’이다. ‘공부안독(公府案牘)’의 준말인 공안은 화두 수행의 핵심이 잘 드러나도록 정리되어 후대의 수행자들이 규범이자 기준으로 삼는 가르침이 되었다. 나아가 공안은 그 내용을 잘 함축하는 한 구절로 요약되어 전한다. 그러한 공안을 가려 모은 것이 공안집이다.
《벽암록》과 쌍벽을 이루는 선불교의 대표 공안집 《종용록》
6세기 전반 인도의 보리달마가 중국에 도래하여, ‘마음이 곧 부처’ ‘일상의 작용이 곧 부처’라는 교시 아래 선불교가 발전하였다. 선사들은 이러한 ‘자성청정심’이 수행자들의 마음에 드러나는지를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살폈는데, 이것은 교리에 근거해 진리를 깨치는 기존 교종(敎宗) 풍토를 멀리하고 ‘문자로는 깨칠 수 없다’는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종풍을 나타내었다.
그러한 수행방편의 대표격이 선사와 제자의 ‘선문답’이다. 다양한 선문답이 수집되어 ‘공안’의 형태로 발전하였고, 이것을 후대의 수행자들이 자신의 ‘자성청정심’을 드러내도록 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선승의 문답을 정리한 것이 대표적으로 《전등록》《조당집》 등이 있으며, 그 가운데 100가지 중요한 공안을 뽑아 정리한 것이 바로 《종용록》이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의 선승의 손을 거쳐 탄생하였기 때문에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공안을 대중에게 소개하여 알리는 부분인 ‘시중(示衆)’으로 시작하여 ‘본칙’ ‘평창’ ‘송’과 ‘송의 평창’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칙은 공안의 몸통에 해당하며 정형화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또 ‘착어(着語)’가 붙어 주석의 역할을 하고, 본격적인 해설인 ‘평창(評唱)’과 공안의 뜻을 음미하기 위해 붙인 한시(漢詩)인 ‘송(頌)’이 따른다. 송의 평창은 곧 송의 해설이다.
《종용록》과 형태가 유사한 《벽암록(碧巖錄)》 역시 시중, 본칙, 착어, 평창, 송, 송의 착어와 평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공안집은 각각 조동종과 임제종의 대표 공안집으로 서로 쌍벽을 이룬다. 이 외에도 비교적 적은 48칙의 공안을 담은 《무문관》까지 송대 선문의 ‘3대 공안집’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동종만의 독특한 선(禪) 지혜를 담다
조동종(曹洞宗)은 남종선의 시조인 6조 혜능의 법손인 동산 양개(洞山良价)와 조산 본적(曹山本寂) 때에 융성하여, 그 앞 글자를 따 ‘조동종’이라 불리게 되었다. 조동종은 묵묵히 앉아 있는 곳에서 스스로 깨닫는다는 선풍을 확립하였다. 이 때문에 ‘묵조선(?照禪)’이라 불리기도 하나, 이는 조동종의 진면목을 오해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조동종 또한 임제종에 뒤지지 않게 화두와 공안 참구에 중점을 두었고, 조동종에서 독자적으로 정리한 핵심 공안집이 바로 《종용록》이다.
《종용록》의 저자 만송 행수는 중국 하남성 출신으로 정토사의 빈윤(贇允)에게서 계를 받고 경수사 승묵광(勝?光) 아래에서 공부했다. 이어 자주(磁州) 대명사에서 설암만(雪巖滿)에게 2년간 수학하고, 정토사로 다시 돌아와 암자를 짓고 만송헌(萬松軒)이라 했다. 그 후 각지의 명찰에 두루 주석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종용록》은 연경의 보은사 안에 종용암을 짓고 주석하면서 완성한 것이다.
《종용록》은 처음에는 《굉지송고》라 불렀다. 천동산 굉지 정각(宏智正覺)이 스스로 공안 100칙을 뽑아 거기에 송을 붙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 만송 행수가 종용암에 살면서 시중(示衆)을 붙이고 《벽암록》과 같은 체제로 정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칭기즈칸의 재상으로 유명한 야율초재(耶律楚材)의 공로가 컸다. 멸망한 거란족의 왕족이자 만송 행수의 제자였던 아율초재는 불교에 관심이 많아 7년 동안 아홉 차례나 만송 행수를 찾아가 《종용록》의 간행을 청했다.
천동 정각이 모으고, 야율초재가 간청하여 만송 행수가 정리했기 때문에 비로소 《만송노인평창천동각화상송고종용암록(萬松老人評唱天童覺和尙頌古從容庵錄)》이라는 긴 이름이 붙었고, 이를 약칭한 것이 《종용록》이다.
형태는 유사하지만 선(禪)에 대한 《종용록》의 관점은 《벽암록》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다. 《종용록》 100가지 칙(則, 본칙, 공안)의 구성을 보면, 선별과 배열, 각 제목이 《벽암록》과 다르다. 《벽암록》은 각 칙의 흐름이 무자(無字) 공안에 상응하는 것을 중심으로 나열하였고 칙의 제목만으로 공안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반면에 《종용록》은 선종의 역사를 암시하는 듯 각 칙을 배열하였다. 제1칙이 ‘세존, 자리에 오르시다[世尊陞座]’, 제2칙이 ‘달마의 확연[達磨廓然]’, 다음 칙이 달마의 스승 반야다라에 관계되는 공안이며 선사들의 공안이 거의 연대별로 나열되었다. 또한 제목은 본칙의 내용에 대한 요지로 했다.
《종용록》과 《벽암록》의 공안을 대조해 보면, 양쪽에 동일한 칙은 29개이며, 동일한 칙에 대해서도 그 해설과 송의 형태가 각기 다르다.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라고 하는 유명한 공안이 바로 《종용록》에서 유래하였는데, 어느 스님이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에 온 뜻을 묻자 조주는 곧바로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답했다는 일화에서 비롯하였다. 이밖에도 《벽암록》 등 다른 공안집에서는 볼 수 없는 공안들이 가득하다.
한 권으로 읽는 쉽고 유려한 해설집
《한 권으로 읽는 종용록》은 《종용록》의 복잡한 구조를 핵심만 추려 간단하게 정리한 책이다. 시중, 본칙, 송만 남기고 역해자가 별도로 종합적인 해설을 달았다. 적은 분량임에도 《종용록》의 요지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데에는 역해자의 몫이 컸다. ‘국내 비구니 박사 1호’로 잘 알려져 있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와 불교대학원장 등을 지낸 혜원 스님이 3년여에 걸쳐 다듬어낸 해설을 붙였다.
조동종이 비교적 국내에 잘 소개되지 못한 만큼, 《종용록》의 내용은 불교 수행자와 연구자들에게 의미가 크다. 부록으로 역대 주요 선사들의 계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불조법계도’, 《종용록》 등장 선사들의 삶을 간략히 기록한 행장을 실어 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 방대한 양의 《종용록》에 담긴 조동종 공안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 《한 권으로 읽는 종용록》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