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안내서, 세상에 나타나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음’의 모든 비밀을 파헤치는 티베트 불교 최고의 경전이다. 경전을 집필한 사람은 8세기 티베트 불교의 대성인으로, 지금도 티베트인들에게 제2의 붓다로 추앙받고 있는 파드마삼바바 대사다.
파드마삼바바는 본래 인도 우디야나국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오랜 수행을 거쳐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 히말라야 설산지대를 두루 다니면서 설법을 펼쳤다. 티베트의 티송데첸 왕은 불교를 중흥시키려 파드마삼바바 대사를 특별히 초청하였다.
파드마삼바바 대사는 티베트에 머물면서 제자를 기르며 많은 경전을 집필했는데, 그 중 대부분을 바위틈이나 동굴에 숨겼다고 한다. 그렇게 감춰진 경전을 복장伏藏 경전이라고 부른다. 아직 깨달음의 시기가 오기도 전에 경전이 세상에 나갔다가 훼손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드마삼바바 대사는 제자들을 시켜 시기가 도래했을 때 환생하여 복장 경전들을 발굴하고 세상에 알리는 임무를 맡겼다.
파드마삼바바 대사가 산 자의 몸으로 죽음과 환생의 사이, ‘바르도’를 여행하고 돌아와 죽음과 사후세계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했다고 하는 『티베트 사자의 서』 역시 14세기에 처음 발굴되어 티베트 주변 지역에서 신봉되었다. 그러다가 1920년대에 옥스퍼드 대학의 에번스 웬츠 박사가 발견하여 영어번역본을 출간하면서 유럽 등지로 퍼졌다.
죽음을 직시하는 『티베트 사자의 서』의 태도는 당시 유럽의 기독교적 영혼관에 큰 충격을 주었고, 유럽의 내로라하는 지성들을 매혹시켰다. 특히 심리학자 카를 융은 ‘가장 차원 높은 정신의 과학’이라 극찬하며 직접 장문의 해설을 쓰기도 했는데, 『티베트 사자의 서』는 융의 심리학 이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죽음을 배우라, 그래야만 삶을 알게 될 것이다
죽음은 삶의 동반자이자 그림자이고 우리는 항상 죽음을 벗하며 살아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죽음은 차별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면서 죽음을 기다리기보다 살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인지해야 한다. 편안한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야말로 삶의 매 순간을 더욱 반짝이게 하는 비밀의 열쇠다. 이제는 웰빙을 넘어 웰다잉을 준비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티베트에서 죽음은 단지 평화로운 마침표를 넘어서는 ‘삶의 완성’이자 ‘깨달음의 도약대’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간 눈부신 빛이나 무서운 형상의 붓다와 수많은 신들을 만나는 시험을 거쳐 해탈과 윤회의 갈림길에 선다고 믿는다. 편안한 마음으로 빛과 붓다를 바라보고,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영임을 깨달아야 해탈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은 수행을 거치지 않은 보통 사람은 빛과 붓다를 만나면 두려워하며 도망치려고 한다.
이때 스승이나 가족이 『티베트 사자의 서』 법문을 읽어주면 망자의 영은 이를 듣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이기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티베트에서 죽음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고, 『티베트 사자의 서』는 망자의 영을 도와 죽음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북인 셈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인간이 죽음 후에 만나게 되는 낯선 세계와 그 속의 환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신비로운 경전이 진정 가르치고자 하는 바는 사후세계의 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이다. 본질을 깨달으면 더 이상 의식이 만들어낸 환영에 흔들리지 않고 영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서
『티베트 사자의 서』는 한국에도 여러 차례 번역, 출간되었지만 티베트 불교에 조예가 깊지 못한 일반인들은 생소한 불교 용어와 수없이 등장하는 붓다와 보살, 룁자, 여신들의 이름에 지레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그 수많은 신들은 각각 피부색도 표정도 옷차림도 들고 다니는 물건도 심지어 나타나는 방향도 다르며, 그에 따라 각기 삶과 죽음에 대해 의미하는 바가 다르기까지 하다.
붓다의 제자들은 대부분 글자를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붓다는 설법을 할 때 귀족이나 지식층의 언어를 쓰지 않고 제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였다. 제자들에게도 남에게 설법할 때 일반적인 말을 사용하라고 가르쳤다. 법을 펼칠 때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말 것이며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택하라 가르친 붓다의 말씀대로, 이 책은 『티베트 사자의 서』를 그림으로 풀어낸다.
즉 도해圖解의 방식으로, 도표와 그림 및 문자의 방식을 활용하여 불법과 관련된 지식이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그림은 금강저의 모양을 훨씬 명확히 알려주고, 도표는 다섯 방위 붓다가 지닌 사물과 그 색상을 더 잘 보여준다. 윤회의 개념도 더 입체적이고 명확하게 전달한다.
이 책을 풀어쓴 타이완의 티베트 불교 전문가 장훙스(張宏實)는 더욱 정확하고 결정적인 어휘를 사용하고, 마인드맵 방식을 사용하여 죽음과 환생의 계통도를 그리고, 수많은 신의 방위, 피부색, 나타나는 시기 등을 도표로 정리했다. 이런 시도는 독자의 혼란을 방지하고 방대하고 혼잡한 정보를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도해의 방식을 고안하기까지 여러 판본의 『티베트 사자의 서』를 읽고 비교·분석하는 과정에서 몇몇 판본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최초의 영어번역본인 라마 카지 다와삼둡 역, 에번스 웬츠 편집의 『The Tibetan Book of Dead』(1927)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판본이지만, 오역이 적잖았다. 더욱이 이 판본이 다른 판본의 참고자료로 사용되면서 다른 책에서도 같은 오류가 계속 발견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장훙스는 1927년 판본을 저본으로 하되, 그 책의 오류를 1975년 판본(초걈 트룽파 린포체 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다.
이처럼 이전 판본의 단점을 보완하여 새롭게 풀어쓴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해탈을 얻기 위한 죽음 여행의 과정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진정한 ‘피안 여행지도’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