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에너지가 조용하고 은밀하게 증발하고 있다!” 출세보다 상처받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된 이유 모두가 나이스하지만 은근히 무례한 시대를 살아내는 법
똑같은 비품을 경력직 사원이 신청했을 때는 재고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면서, 공채 출신 직원이 요청했을 때는 어떻게라도 구해서 가져다준다. 점심시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곤 했던 신입 사원은 나중에 팀장이 자신에 대해 “그 친구는 일은 꼼꼼히 하는데 친화력이 떨어져”라고 평가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근무지와 자택의 거리가 47킬로미터라는 이유로 사택 신청을 반려당한 한 여성 직장인은 나중에 남성 동료는 대충 거리가 40~45킬로미터 언저리이면 사택을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회사가 이들에게 눈에 띄게 위해를 가한 것은 아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공론화하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다만 은밀하고 조용한 배제와 거절, 선 긋기, ‘그들만의 리그’가 있을 뿐이다. 저소속감의 시대에 충성심과 애사심은 예전만 못하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미세공격이라는 기름을 부으면 로열티는 일순간 잿더미가 될 수밖에 없다. 조용한 마음 상함, 조용한 퇴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세공격이 심할 경우 ‘근무 시간 중 적극적으로 이직 자리를 찾는’ 분노 구직에서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생계를 해결하려고 직장에서 버티는’ 리젠티즘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선 넘는 질타와 거친 언행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직장인들이 받는 상처와 좌절이 줄어들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의욕과 열정이 조금씩 증발하는 동안 조직은 집단 피로와 무기력에 빠져든다. 결국 이는 개인에게도, 조직에도 큰 손해가 되는 일이다. 대기업과 공직, 언론사에서 30여 년간 일하며 미세공격을 관찰해온 저자 남대희는 《미세공격 주의보》에서 다정한 듯 무례한 조직의 두 얼굴, 그 속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회사에서 슬며시 정을 떼는 직장인의 모습을 예민한 시선으로 파고들었다. 이 책이 남모를 좌절을 쌓으며 조용한 퇴사를 감행하는 이에게는 작은 위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세공격을 줄기차게 뿜어내는 이에게는 경계경보가 되기를 바란다.
“직육면체의 조각들을 탑처럼 쌓아 젠가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물론 탑을 무너뜨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중심부를 쾅 쳐서 한순간에 와해시키는 것이다. 한 조각씩 살살 빼내면 의외로 오래 버티긴 한다. 하지만 젠가를 해본 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처음엔 몇 조각이 빠진 채로도 흔들림 없어 보이지만 구멍이 야금야금 뚫린다면 머지않아 와르르 무너진다는 것을. 강력한 한 방에 비해 조금씩, 하지만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구멍이 타격감이 덜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38쪽, 〈종이 컷이 반복된다면〉에서)
“이렇게 잘해주는데 왜 불평하나”
영혼 갈아 일해주길 바라는 회사와
이미 영혼이 다 털려버린 직장인의 동상이몽을 해소해줄 책
주 4.5일제를 넘어 주 4일제, pc 오프제, 순환식 재택근무, 워케이션 지원, 다채로운 복지 제도…. ‘조용한 퇴사’라는 팬데믹을 끝내기 위해 회사들은 나름대로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직원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으니, 회사들도 나름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미세공격 주의보》는 점점 거리를 넓혀가는 회사와 직원의 동상이몽을 해소해줄 책이다.
1부 〈미세공격 주의보〉는 모두가 나이스하지만 은근히 무례한 시대,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상 전혀 사소하지 않은 미세공격의 구체적인 개념과 양상을 소개한다. 폭우처럼 쏟아붓지는 않지만 가랑비처럼 스며들고, 사이렌처럼 울리지는 않지만 백색소음처럼 파고드는 미세공격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2부 〈미세공격이 퍼진 직장〉은 출세가 아니라 상처받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된 조직의 슬픈 자화상을 다룬다. ‘코어부서’가 아니라 ‘머글부서’에 들어가는 순간 비주류가 되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조직이 정한 표준에 속하지 못한다면 활달한 척, 자신감 넘치는 척, 용감한 척 가면을 쓰는 ‘가면 출근’은 당연한 수순이다.
3부 〈미세공격 후유증〉은 조용한 마음 상함이 천 번 쌓일 때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회사 입장에선 많은 혜택을 제공해주고 오픈마인드로 다가가려고 하는데, MZ세대는 왜 마음을 닫는 걸까? 회사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불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위 맞추기를 넘어 그들의 조용한 좌절과 상처를 근본적으로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직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근본적 질문을 건넨다.
4부 〈미세공격을 대하는 자세〉는 견딜 만한 출근길을 위하여 우리가 즉시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안한다. 무의식적 편견의 습관 고치기, 완장부서에 대한 구조적인 견제,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껄끄럽고 불편한 진실 마주하기 등 개인뿐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 갖춰야 할 태도를 짚는다.
지금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기란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세공격 저감 조치를 위해 필요한 건 우선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서로 인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미세공격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출근도 안 했는데 퇴근하고 싶은 ‘조직의 공기’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에게 경계경보를 울리는 것
《미세공격 주의보》의 목적은 한쪽 편에 서서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여성이며 사회성이 부족하고 직장을 몇 번 옮긴 경력직 입사자인 탓에 항상 조직의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해왔지만, 미세공격을 탐구하면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편견의 안경을 끼고 대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반성했다”(9쪽, 〈프롤로그〉에서)라며 자신이 미세공격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음을 고백한다.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후배를 바라보며 답답해하고, 스스로도 내향적이면서 얌전한 직원을 염려하고, 회의 시간에 자기 의견을 말하는 데 망설이는 직원을 못마땅해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은가? ‘회사’ 소리만 들어도 가슴에 굳은살이 박힌 듯 갑갑하고,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미묘한 불편감이라는 이름의 멍울이 욱신거리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직 생활 내내 줄기차게 미세공격을 가해온 이들에게 경계경보를 울리는 동시에 고의가 아니었다는 변명 뒤에 숨어 미세공격을 가해온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는 일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일 땐 눈앞에 있는 건물도 흐릿하게 보인다. 지금 우리는 사회에 공기처럼 깔린 미세공격 때문에, 눈앞의 동료뿐 아니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시시때때로 미세공격 수치를 측정하고, 저감 조치를 시행하자.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정을 살피고 무시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 조직 세계의 해상도를 높여줄 것이다. 기억하자. 사무실의 공기를 바꾸고 만드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