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록의 진실성,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역사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역사는 사실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와 같은 고대 역사가들부터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조지 오웰 같은 문학가들, 현대의 역사학자, 여성, 흑인과 같은 소수자, 그리고 TV로 유명해진 스타 역사가까지, 역사가들이 기록한 역사는 인간 사회의 사고방식과 권력 구조를 반영하는 서사이다. 역사가란 과거의 전달자가 아니라 스토리텔러이다. 역사가들은 과거의 사건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역사가들이 만든 무대를 통해 우리는 역사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관을 형성한다. 역사라는 거대한 힘의 이면에 수많은 역사가의 초상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역사’라는 단어를 ‘과거’ 그 자체와 동일시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읽고 배우는 역사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쓰인’ 저술이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먼저 역사학자를 연구하라”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역사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선택이 개입된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역사가가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탐구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시작한다. 헤로도토스가 펴낸 《역사》는 당시의 정치, 문화, 지리, 민족성까지 폭넓게 다룬 방대한 기록이다. 헤로도토스는 다양한 지역을 직접 여행하며 현지인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서로 다른 출처를 비교해가며 사실과 전설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수동적인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건과 사실을 취사선택해서 내러티브를 창조했다. 헤로도토스가 전쟁과 문화를 서사로 풀어냈듯이, 투키디데스가 인간의 본성과 정치적 동기를 분석하며 역사를 기록했듯이, 리비우스와 타키투스가 도덕적 교훈을 전하고자 했듯이, 고대 역사가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했지만, 이들 모두가 ‘역사는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경의 탄생을 추적하는 과정 역시 역사적 사실과 신화적 프로파간다가 갈라지는 지점을 잘 보여준다.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했던 4개의 문서들이 한 권으로 편집되어 ‘만들어진’ 것이라는 진실을 보여준다. 결국 성경은 역사와 신앙이 만나는 교집합에서 탄생한 고도로 허구화되고 다듬어진 작품인 것이다.
사실보다 더 진실한 허구
창작과 해석으로서의 역사
역사는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런 역사적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역사가들만이 아니다. 고대부터 오랜 시간 동안 과거를 이야기한 이들은 주로 학자가 아니라 이야기꾼들이었다. 이 책은 역사를 픽션으로 재구성하는 다양한 방식에 주목한다. 작가들이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이용해 역사적 사건을 더욱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만들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역사 서술에 기여하는지 알려준다.
셰익스피어는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셰익스피어는 역사를 연극 소재로 활용한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진실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이용했다. 셰익스피어는 대표작 <리처드 3세>에서 리처드 3세를 교활한 폭군으로 묘사했지만, 실제 기록에서는 그가 그렇게 악랄한 인물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이 당대에 대성공을 거두고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은 역사적 사건에 숨겨진 정치적 음모와 권력 투쟁, 그리고 개인의 욕망을 생생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역사적 사건이 감정과 욕망으로 가득 찬 드라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톨스토이, 발자크, 빅토르 위고 등 위대한 작가들의 소설도 역사학자들이 기록하지 못한 시대의 진실을 탐구한다. 이처럼 작가들은 픽션을 통해 전반적인 시대상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해주며, 역사가가 다루지 않는 평범한 이들의 감정과 경험을 전달해준다. 역사는 이야기 그 자체이며,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진실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 끼어드는 거짓과 협잡, 선동
역사를 굴절시키는 프리즘
역사는 종종, 아니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자주 조작되고, 왜곡되며, 정치적 도구로 이용된다. 이 책은 역사적 왜곡과 선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역사의 어두운 면모에 대해서 소개한다.
역사적 사건을 기록할 때 역사가들은 사실을 취사선택할 뿐 아니라 자신만의 관점을 선택하고,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으로서 전쟁 책임 문제를 두고 계속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켜 왔다. 일본은 ‘일본인에게 자부심을 심어줘야 한다’는 명분으로 난징대학살과 전쟁성노예 문제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려 노력해왔다. ‘일본이 아시아를 지키기 위해 서구와 싸운 영웅적 국가’라는 자기기만을 통해 일본 국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진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역사 왜곡이 일본인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소련의 역사가들은 오랜 시간 공산당의 지침에 복종해야 했고, 미국의 백인 역사학자들은 남북전쟁에서 ‘노예제 폐지’의 의미를 평가절하해왔다. 이 밖에도 역사 왜곡과 부정, 조작은 다양한 이유로 이루어졌다. 거창한 이념뿐 아니라 학파 간의 알력, 학자끼리의 개인적인 원한조차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역사가 끊임없이 왜곡과 조작, 선동 논란에 휩쓸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역사 자체가 사실이 아닌 ‘역사가’라는 해석자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읽을 때 무비판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그 논쟁과 왜곡, 해석의 차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다.
왕과 귀족에서 모든 이의 역사로,
확장되는 역사와 역사가의 영역
아날학파의 등장은 역사학의 방향을 전환시킨 결정적 변화 중 하나가 되었다. 정치와 전쟁이 지배했던 역사의 페이지는 아날학파를 기점으로 사회과학의 모든 분야로 확장되었다. 이들은 중세 시대의 물건 가격과 통화 가치의 등락 등 미시적인 대상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기존에 정치사가 놓쳤던 거시적 흐름을 포착했다. 또, 지리와 환경이라는 비인격적인 렌즈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분석함으로써 당대의 삶을 재구성해냈다.
역사의 대상이 크게 확장되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존재들이 새롭게 재발견되었다. 여성은 인류의 절반이었지만, 기록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외면받았던 인류의 절반이 비로소 역사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역사가 다루는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역사를 쓰는 ‘주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성 역사가란 존재는 없었지만, 여성 역사가들은 1960년대 여성해방운동의 바람을 타고 본격적으로 학계의 전면에 나섰고, ‘페미니스트 역사’를 넘어 모든 주제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투명인간처럼 취급받았던 흑인 역시 아프리카의 역사, 흑인 노예의 삶 등 역사 무대의 주인공으로 발돋움하여, 백인 역사가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 아닌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역사를 서술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새롭게 등장한 역사가들은 대중문화와 정치, 사회운동 등과 결합하여 더욱 광범위하게 역사의 영토를 넓혀나가고 있다.
역사는 고정불변의 지식이 아니다
역사는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책 서두의 ‘역사는 누가 쓰는가?’라는 질문은 후반부에 이르러 ‘누가 역사를 쓸 것인가?’로 연결된다. 과거에 역사를 기록하는 역할은 지배층과 식자층의 전유물이었다. 근대에는 기자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출현해 뉴스 기사를 통해 역사의 초고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역사적 교육을 받지 않는 일반인의 사적인 일기와 기록도 귀중한 역사 사료가 되었다. 《안네의 일기》가 대표적이다. 오늘날에는 SNS와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대중도 아주 쉽게 역사를 기록하고, 찍고,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역사의 주체로서 우리 스스로를 인식했을 때, 비로소 역사는 고정불변의 지식이 아니라 매 순간 갱신되며 약동하는 대상이 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전제해야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학자 윌슨 제러마이아 모지스가 말한 것처럼 “역사의식은 전문 학자들이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그들의 배타적인 전유물도 아니다”. 역사를 만들고, 쓰는 것 모두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책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역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과거를 해석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모든 역사 기록에는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또,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역동적인지, 독자들에게 역사적 사고를 더욱 깊이 있게 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역사가 인간이 끊임없이 창조하고 변형하는 서사라는 점이다. 역사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으며, 기록하는 사람의 가치관과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