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내 나방 덫에 나타나는 나방의 종류와 수는 내 이웃 주민이 지난주에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영겁의 시간과 대륙의 작용이 얽혔을 수도 있다. 자연의 일부에 울타리를 쳐놓고 번성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팀 블랙번 저자 한시아 역자
  • 2024년 12월 20일
  • 480쪽145X210mm김영사
  • 979-11-733-2013-2 03470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저자 팀 블랙번 2024.12.20
나방 안에는 40억 년의 지구가 들어 있다!
작은 생명의 거대한 세계로 만나는 냉혹과 우연의 생태학
나방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한 생태학자가 작은 나방으로 거대한 자연의 퍼즐을 맞추어나간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나방의 탄생과 죽음을 생생히 관찰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에 깃든 생존과 번식, 자원과 경쟁, 피식과 포식, 군집과 이주의 규칙을 하나의 지도로 연결한다.
 
혼돈과 질서가 뒤얽힌 이 지도는 법칙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고, 자주 우연에 좌우되며, 인간의 방정식으로는 전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경이롭다. 멸종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에 시적인 문체로 ‘다양성’의 감각을 길러주는 생태학 입문서다.
 
P.12
나방이 이토록 많이 잡아먹히는 것은, 이들이 다양한 무늬와 색상을 갖추는 동기가 되었다. 놀라운 위장 능력을 지닌 ‘메르베유 뒤 주르’처럼, 다양한 나방이 부러진 막대기(둥근무늬재주나방, 썩은밤나방), 새똥(한자나방, 그을린양탄자나방), 말벌(유럽말벌나방) 또는 다른 포식자(큰눈박각시나방, 애황제나방)의 모습으로 의태한다. 나방의 날개에 색을 입히는 비늘은 박쥐의 초음파를 흡수하거나 분산시켜 위치가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매일 밤 우리 머리 위에서는 자연의 군비확장 경쟁이 벌어진다._〈한국의 독자들에게〉
P.51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내 나방 덫에 나타나는 나방의 종류와 수는 내 이웃 주민이 지난주에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영겁의 시간과 대륙의 작용이 얽혔을 수도 있다. 자연의 일부에 울타리를 쳐놓고 번성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아니, 그 조각이 생존하기를 바라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_〈들어가는 글〉
P.151
나방이 벌을 떨쳐내려고 발버둥 치자 둘은 함께 테이블 위를 구르다가 밑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충격으로 나방은 잠시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벌은 순식간에 공격을 가했다. 벌의 찌르기 공격에 나방의 저항이 점점 약해졌고, 독소가 작용하자 싸움은 일방적인 양상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이윽고 벌은 나방의 날개와 다리를 여유 있게 물어뜯고는 지방과 단백질이 가득한 몸통만을 물고 집으로 돌아갔다. 단단한 턱으로 나방의 매끈한 몸통을 움켜쥐고 날아가는 벌의 몸은, 거친 몸싸움 중에 나방의 날개에서 떨어진 은빛 비늘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버려진 나방의 부속물이 마구 흐트러진 테라스에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P.272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생명이 지속되는 데 필수적이다. 움직일 수 없다면 개체는 새로운 자원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며, 개체군은 성장할 수 없고, 군집은 다양화할 수 없다. 땅은 불모지가 될 것이다. 따개비, 산호, 지의류처럼 보통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유기체조차 이동할 수단이 있다. 식물은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느 시점에는 움직일 수 있고 또 움직여야만 한다. 생애주기 중 이동이 필수적인 단계가 있으니 말이다. 모체의 나무 그늘에 떨어진 씨앗은 빛과 물, 영양분에 굶주릴 수밖에 없으며, 부모 식물이 유인하는 초식동물과 질병의 먹이가 될 것이다.
P.375
멸종은 분명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중요한 것은 개체군에서 개체의 죽음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멸종이 발생하는 속도다. 화석을 통한 연구에서 산출한 일반적인 멸종 속도와 지금 추세를 비교하면, 현재 멸종은 100~1000배 정도 빠르게 일어나고 있으며, 아마 실제 수치는 최대 범위에 가까울 (또는 그 이상일) 것으로 생각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영국의 사망률은 평소의 두 배였다. 이 수가 1000배로 증가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자. 우리가 종의 멸종에서 보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P.392
대구 개체군 일부는 성체의 몸길이가 절반으로 줄었다. 인간이 큰 개체를 어획한다는 것은, 성장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할당할 경우 번식의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체군의 대구는 더 어린 나이에 번식하기 시작했다. 암컷은 성장이 아닌 난소 조직 발달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할당해, 크기가 작아지는 대신에 더 높은 번식력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몸집이 더 크면 더 많은 알을 낳을 수 있다. 실제로 몸집이 더 큰 대구가 더 많은 알을 낳는다. 그러나 알을 낳을 기회를 얻기 전에 죽음을 맞는다면, 성장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추천의 말(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둠 속의 경이

들어가는 글: 보석이 흩뿌려진 상자
오늘 밤에 날아다니는 것│외딴섬은 없다│뒤엉킨 강둑의 세계

1장 창문을 탈출한 애벌레: 번식의 힘
애벌레가 나무를 갉아 먹는 소리│아무도 모르는1 0년│시간은 다르게 흐른다│왕의 쌀알도 결국 떨어진다│모델이 무너지는 시점│그저 약간의 불운│혼돈 이상의 혼돈│확률과 우연 사이

2장 먹이로 그리는 지도: 한정된 자원의 결과
산성비와 애벌레│그 나방이 알려주는 것│누가 유전자를 물려줄 것인가│경쟁의 방정식│위덤숲의 두 나방│공존을 위한 회피│칼날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3장 붉은 이빨, 붉은 발톱: 소비자도 소비된다
덫의 포식자│초음파 vs 비늘│“창조주는 포식기생자를 지나치게 좋아한다”│유일한 결과는 없다 |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두 번의 고비│덫은 넘쳐흐르지 않는다

4장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짧고 굵게 또는 길게 오래
정반대의 방식│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잃다│삶의 속도│왜 큰 나방은 거의 없을까│분산 투자의 전략│어둠 속의 질서

5장 모자이크라는 환상: 종의 공동체
가장 깊은 수수께끼│테세우스의 배│최선의 추정│흔할수록 드물다?│종은 중립적이지 않다│운의 역할│조각난 서식지│나무라는 기질│아름답고 좌절된 이론

6장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이동한다: 이주의 힘
호날두 눈썹에 앉은 나방│온건한 야망│빛에 갇히다│섬이 된 서식지│모든 연못이 마르지 않는다면 │멸종을 막는 이주│위험에서 구하다│크라카타우섬에서 생긴 일│작은 파괴?

7장 분화와 멸종 사이의 춤: 다양성이 이끄는 곳
코끼리를 닮은 애벌레│덫에 담긴 이야기│북반구 온대지역의 바깥│40억 년간의 춤│오래될수록, 넓을수록│에너지는 왜 중요할까│하루 만에 사계절을 겪는다면│상호작용의 압력│후손의 격차│밤나방 성공기│승자 또는 운의 기록

8장 종을 잃다: 인류는 어떻게 생태계를 대변하게 되었나
도감에 없는 나방│많을수록 좋을까│종점이 다가오는 속도│배추좀나방의 운, 범고래의 불운│마지막 목격담│성장을 포기한 대구│애벌레의 비극│이주의 딜레마│소행성이 된 인간│가장 큰 패배자

9장 연약한 실: 긴 반전의 역사
질서와 우연│배에 난 구멍│덫의 질문│펄럭이는 빛

감사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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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팀 블랙번 (Tim Blackburn)
30년 이상 생물 다양성 연구에 매진해온 생태학자이자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생물학과 교수. 어릴 적 새에 매료되어 맨체스터대학교 동물학과에 진학한 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질랜드를 방문한 이후, 유럽인들이 뉴질랜드에 ‘진출’하며 데려온 외래종들을 알게 되면서 침입생물학(invasion biology)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애들레이드대학교, 버밍엄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가르쳤고, 런던동물원협회의 연구기관인 동물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다양한 국제 컨퍼런스에서 연사로 활동했다. 영국의 BBC와 《가디언》을 비롯해 독일, 인도, 호주 등의 언론이 그의 연구를 다뤘다. 

생일선물로 받은 ‘나방 덫’을 아파트 옥상에 설치하는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는 나방이라는 작은 조각으로 자연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춰나간다. 기후위기 시대의 가장 중요한 교양이 된 생태학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소개하며 “생물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증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규칙은 삶의 양상을 정의하고, 운은 그것에 색을 입힌다”
매일 밤 어둠 속에서 관찰한 자연의 숨겨진 법칙
2016년 7월 10일,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맞붙은 UEFA 유로 2016 결승전의 주인공은 승리한 포르투갈도, 패배한 프랑스도 아니었다. 그날 밤 경기장을 뒤덮고, 부상으로 쓰러진 호날두 선수의 눈썹에도 내려앉은 비녀은무늬밤나방이었다. 주로 밤에 활동해 인간의 눈에 거의 띄지 않는 나방이 왜 단체로 축구장에 모습을 드러냈을까? 이는 오랜 진화가 나방의 삶에 빚어놓은 규칙의 결과다. 빗방울 무게에 불과한 작은 나방은 그들의 조상이 그래왔듯 성장과 번식을 위해 대륙을 횡단했고, 다른 나방처럼 달빛과 별빛을 기준 삼아 직선 경로를 따라갔다. 그러나 큰 경기를 앞두고 밤새 불을 켜둔 파리의 경기장은 이들의 감각을 교란했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비행하던 그들을 끌어내렸다. 나방은 빛을 쫓은 것이 아니라 빛에 갇힌 셈이다.
 
30년 넘게 생물 다양성 연구에 몰두해온 생태학자인 저자는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The Jewel Box)≫가 나방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봉쇄된 시기, ‘나방 덫’에 찾아온 나방의 이름을 찾고 놓아주는 취미에 빠져든 저자는 점차 생태학자의 시선으로 나방의 삶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한정된 자원 위에서 이루어지는 생존과 번식, 피할 수 없는 탄생과 죽음의 길목에는 생태학이 있었다. 나방의 생태계는 프랙털처럼 자연의 규칙을 반영한다. 이 책은 나방의 삶과 죽음 속에서 생태학의 여러 이론과 개념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이끈다.
 
벌만큼 귀하다, 나비만큼 예쁘다!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나방
이 책은 보잘것없다고 여겨온 동물의 어마어마한 진실을 하나씩 보여준다. 우선, 나방은 벌 못지않은 중요한 수분 매개자다. 그러나 밤에 활동한다는 이유로 낮에 활동하는 인간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할뿐더러 나방을 만지고 눈을 비비면 실명된다거나, “예쁘면 나비, 못생기면 나방” 같은 근거 없는 구별법 속에서 혐오에 시달린다. 그러나 우리가 찬양하는 나비도 생물학적으로 이 거대한 종족의 일원이다. 낮에 활동하는 나방이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인류는 이 어둠 속 생물에게 수천 년간 식량과 옷을 빚져왔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 나방마저 사라진다면 인간은 어떤 열매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나방은 대부분 작으며, 짧고 굵게 산다. 나방은 아무리 커도 포식자인 새나 박쥐에게 맞설 수 없다. 따라서 몸집을 키워 양질의 알을 낳는 대신, 덜 성장하더라도 잡아먹히기 전에 빨리 알을 낳기로 ‘선택’했다. 생태학의 렌즈로 보면 나방이 저마다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된다. 무엇보다 나방은 모든 삶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나방 덫’에 날아드는 나방의 종류와 수는 이웃이 심은 식물에 따라 달라지고, 영겁의 시간과 대륙의 작용도 얽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자연환경이라는 ‘서사’를 떼어놓은 채 나방만 이야기해서는, 나방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외래종은 파괴자일까 구원자일까?
멸종을 둘러싼 이주의 힘 그리고 딜레마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는 시대에 이주는 생태학의 중요한 주제다. 이주해온 개체는 줄어드는 기존 개체군을 멸종위기에서 구할 수 있고, 황무지를 개척할 수도 있다. 애벌레 시절을 연못에서 보내는 물베니어나방은 개별 연못이 마르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지만, 이들이 성충이 되어 가까운 연못으로 날아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든 연못이 마를 확률은 거의 없으므로 종이 멸종될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것이다. 사실 토착종으로 불리는 것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주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저자는 종의 이주가 없었다면 세상 대부분의 지역은 생명체가 전혀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갈수록 파괴되는 상황에서 이주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실제로 생태학에는 ‘도움 이주’라는 개념이 있다. 기후위기 등의 변화 속에서 멸종위기종을 보존하기 위해 인간이 개체를 분포 한계 너머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생태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전부 알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한번 파괴된 생태계는 인간의 방식으로 되돌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그러니 사후 수습보다는 사전에 파괴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일깨운다.
 
경이롭게 뒤엉킨 강둑의 세계
다양성이 사라질수록 불운도 잦아진다!
멸종이 가속화하면서 ‘생물 다양성’은 점점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생물 다양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희귀종을 잘 보존하면 될까? 이 책은 오히려 흔한 종의 소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정 환경에 오래 적응해온 흔한 종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종이 포함된 생태계 전체가 함께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방은 대부분이 흔한 종에 속하는데, 오늘날 개체 수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면서 얕게 퍼져 있어 그들의 생태계는 살얼음처럼 위태롭다.
 
이 책에 따르면 멸종 자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종분화와 함께 멸종은 지구의 오랜 역사를 지탱해왔다. 현재 멸종이 문제가 되는 것은 멸종이 발생하는 속도 때문이다. 야생에서 개별 종은 언제든 우연히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개입은 종이 이러한 불운에 더 취약해지게 만들고, 불운을 더 자주 마주하도록 만든다.
 
찰스 다윈은 생태계를 다양한 식물과 새와 곤충과 애벌레가 뒤덮인 ‘뒤엉킨 강둑’에 비유했다. 저자는 ‘뒤엉킨 강둑’이 그 너머의 더 큰 환경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고 본다. 뒤엉킨 강둑에는 그곳에 사는 동식물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대륙과 시간의 작용도 얽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상호작용의 수만 가지 경우의 수를 모두 알아내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따라서 생물 다양성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세계를 지킨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