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모양
나는 아버지를 어떻게든 좋게 기억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물론 그게 아버지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세이
슬픔의 모양 이석원 저자
  • 2024년 11월 30일
  • 300쪽128X190mm김영사
  • 979-11-94330-81-3 03810
슬픔의 모양
슬픔의 모양 저자 이석원 2024.11.30
“내게 가족이란 늘 행복한 지옥이거나
지옥 같은 천국 둘 중 하나였다.
내가 아는 한 한 번도 중간은 없었다.”
《보통의 존재》《언제 들어도 좋은 말》의 작가 이석원이 전하는,
나와 꼭 닮은 한 가족의 기쁨과 슬픔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시던 날, 가족의 시간은 각자 다르게 흐르기 시작한다. 완전히 바뀐 하루를 살고 매일 밤 부모님이 사시던 아파트를 찾아가 불 꺼진 빈방을 올려다보는 아들 석원. 《슬픔의 모양》은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는 긴 병간호와 조금씩 예민해지는 가족들 그리고 언젠가 홀로 남겨질 자신의 시간을 이석원 작가 특유의 솔직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 산문집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슬퍼지기도 해서 거리를 두고 싶지만, 그럼에도 가족은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하고 복잡한 운명을 주고받는 존재들. 이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이 글을 통해 저자는 미워할 수만은 없는, 꼭 내 가족 같은 기시감이 드는 한 가족의 다양한 얼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슬픔의 모양》은 이별이라는 우리 앞에 언젠가 당도할 슬픔을, 그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을,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인 일상의 순간순간을, 그 순간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석원만의 흡입력 강한 글이다.
 
P.28
밤이고 낮이고 꺼지지 않는 저 방의 불을 보면서, 팔십대 중반에 이른 내 부모가 아직 살아 있고, 저곳에서 지금 편히 누워 주무시거나 티비를 보며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구나, 생각하면 그 모든 것에 감사하고 안도하는 마음이 들어 내 작은 근심마저 덜 수 있었는데. 이렇게 결코 꺼져본 적 없던 방의 불이 꺼진 모습을 보니, 더군다나 엄마가 있는 거실 쪽만 홀로 불이 켜져 있는 모습은 또 그것대로 어찌나 안쓰럽고 외롭게만 보이던지. 나는 그만 길가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P.44
하지만 난 왜 여전히 몰랐을까.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남들이 나와는 다른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는 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P.120
그것은 분명 사진이라는 왜곡이 부린 마법일 테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슬펐다. 이렇게라도 함께 모일 일이 다시는 없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때도 나는 이 감정이 진짜인지 아니면 단지 상황에 취해 눈물을 쏟고 있는 것뿐인지 내 마음의 진위를 알고 싶어 했을까? 그게 내 마음의 평화를 깨서 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린 가족이니까. 가족은 슬퍼할 만해서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할 만해서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가족이기 때문에 모든 게 가능한 사람들이니까. 
P.173
요양병원이 정해지던 날. 그날 하루만 다섯 군데가 넘는 병원들을 직접 돌며 살피느라 한겨울에 땀으로 온몸이 젖어 좋은 곳을 찾았다고 숨이 턱에 차 기뻐하던 누나는… 집안의 장녀로서, 또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자기 부모를 위해 그런 헌신적인 노력과 책임감쯤 얼마든지 더 발휘할 수 있을 사람이지만, 대신 누나는 자신이 책임감을 발휘할 대상, 즉 부모님과 살갑게 소통하는 데엔 영 재주가 없었다.
P.188
부모는 언제나 우리에게 두 가지 방식으로 교훈을 준다.

나는 저렇게 살아야지.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P.280
나는 아버지를 어떻게든 좋게 기억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물론 그게 아버지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1부 덫 
2부 악역 
3부 아버지에게 가는 길 
4부 내 마음이 왜 이럴까 
5부 중요한 건 일상이었다 
6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7부 귀환歸還
8부 PT(프레젠테이션)
9부 출구 없는 미로 
10부 어느 봄의 캠프파이어 
11부 종이 인형 
12부 기억들 
작가의 말 
작가이미지
저자 이석원
1971년 서울 출생. 《보통의 존재》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등을 출간했다.
“가끔은 알고도 못 떠날 먼 길처럼 긴 하루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에 대해서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윤슬처럼 눈부시게 빛나던 청춘의 순간도 가을 낙엽처럼 시들면 이별의 때가 온다. 우리는 마치 이별하기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뜨겁게 사랑하고 미워하지만 결국 모두 헤어진다. 이유는 달리 없다.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주리라 믿는 존재, 부모의 부재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우리는 그 느닷없음에 슬픔보다 당혹스러움을 먼저 느끼고, 당혹감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 슬픔은 눈물이 되어 터져 나온다.
 
솔직하고 개성 있는 문체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 이석원. 그는 급작스럽게 닥친 아버지의 병고 앞에서 이별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을 때로는 시니컬하게 그러면서도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고 애틋함을 담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랜 시간 먼 산과 같았던, 그래서 트라우마를 잔뜩 안겨주던 아버지. 그리고 한때 작가에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사람인 엄마, 위기 상황 앞에서는 각자의 역할 분담 또한 확실한 두 누나까지, 어느 한 사람 쉬운 사람이 없는 가족이지만 아버지의 일을 거치며 그들이 곁에 있다는 것, 그 하루하루가 귀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작가의 이야기는 좌충우돌하지만 따듯한 한 편의 가족 영화처럼 읽힌다.
 
“왜 그런지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주무실 때도 불을 끄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가 계시는 안방이며 엄마가 기거하는 거실까지 늘 환하게 켜져 있는 불을 보면서, 나는 뭔가 모를 안도감에 가슴이 따뜻해지곤 했었다. 그럼 그렇게 충전된 온기를 가지고 또 얼마간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덕에 난 지금껏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27~28쪽

“나는 아버지를 어떻게든 좋게 기억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알아가는 마음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마지막 동전까지 꺼내줄 것만 같은 사람, 부모를 위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의문이 들게 하는 사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대체 그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어진다. 때때로 상황이 답답해서 짜증을 내기도 하고, 자식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나이 든 부모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이 또한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 순간에도 저자의 눈동자는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긴 병에 효자가 없기에 병간호는 쉬운 일이 아니라지만, 그는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묻지 않는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그 단어만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나누는 존재. 그래서 작가 이석원은 《슬픔의 모양》에 물질로는 가늠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심지어 절박함마저 느껴지는 그 마음을, 가족의 곁에서 얼마 남지 않은 여리고 작은 빛일지라도 지키고 싶은 그의 마음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나는 평생 특히 당신의 늘그막엔 더더욱 자주 아버지를 내 마음속 법정에 올려서는 매일같이 점수 매기는 짓을 해왔지만, 짐작컨대 아버지는 결코 일생 단 한 번도 나를, 아니 우리들을 자식으로서 몇 점이라고 평가하진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290쪽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 가족과 똑 닮은 한 가족의 이야기
그때는 대개 그랬다. 경제활동을 하는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무관심하고 가정에서 대접받기를 원하고, 집에서 살림하는 엄마는 자녀들 교육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나이가 든 아버지는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 가족들을 부리려고 한다. 성격이 그래서라기보단 시절이 그랬다. 아버지에서 장남, 아들로 이어지는 가부장의 시대를 사셨으니까. 그런 아버지에게 자식들은 때론 환멸을 느끼기도 하지만 잔잔하게 밀려오는 애잔함이 미움 혹은 원망조차 덮어버린다.
 
《슬픔의 모양》에도 그런 가족이 등장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집 자식들과 당신 자식들을 비교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비교가 왜 잘못인지도 모르는 아버지. 저자는 이렇듯 지독하게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조차도 특유의 위트와 비유를 통해서 미워할 수만은 없는, 애정이 느껴지는 대상으로 표현한다. 마치 아이처럼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마치 부모가 된 것 같다고 말하는 저자. 하지만 그의 말에 깊은 공감의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때 우리들은 어쩌면 정말로 아버지의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 자식에 대한 걱정이 한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입에서는 잔소리가 쉴 틈이 없이 나왔으니까.” -179쪽
 
나이가 들어가는 자식과 부모 사이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가 되는 인연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저자는 여전히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기억과 사랑이라고 글을 맺는다.
 
“무슨 인연으로 우리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연으로 맺어져 이런 한평생을 보내게 되었을까. 이제 처음 해보는 고백을 하면서 책을 마칠까 한다. 아버지를 사랑했고 또 미워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고 영원히 잊지 않을 거라고.” -2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