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국새에 영어 이름 ‘톰’이 새겨져 있을까?”
시공간을 초월한 33번의 흥미진진한 역사 여행
흩어진 유물ㆍ유적ㆍ문헌을 통해 봉인된 역사와 시간을 깨우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고고학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발견되는 유물과 유적 대부분은 오랜 세월 훼손되어 원형을 잃고 파편화된 상태. 그렇기에 그 안에 깊숙이 봉인된 정보를 복원하는 작업은 지난하고, 내용 또한 전문적이어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각계각층의 노력이 있었는데 《하이, 스토리 한국사》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은 미지의 세계로 남겨진 역사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핀셋으로 가려 뽑듯 찾아내 서사를 만들고, 그 안에 온축된 옛사람들의 삶, 그들이 창출한 문화의 실타래를 생동감 있게 풀어낸 문화유산 탐사기다. ‘하이, 스토리(Hi-Story)’는 ‘역사(History)’를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난다는 뜻이다.
저자 이기환은 고고역사학자이자 히스토리텔러이다. 지난 30여 년간 역사 속 다양한 유물과 유적, 인물과 사건에 얽힌 에피소드를 깊이 있는 분석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소개하며 ‘역사 저널리즘’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역사는 무궁무진한 소재가 넘쳐나는 보물창고와 같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들을 대중에 전달해온 방식이 지나치게 학문적이라는 것. 여기서 저자 특유의 종합 능력과 글솜씨가 빛을 발한다. 학자로서의 전문성과 저널리스트로서의 예리한 통찰로 흩어진 파편을 붙이고 생명력을 부여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음미할 수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 책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한국사의 기막힌 발견과 반전의 순간들을 33개의 주제로 풀어내고 있다. 신석기인의 똥 화석으로 당시 고인류의 삶을 입체적으로 복원하고, 얼굴 모양 토기를 통해 신라시대 유행한 문화와 사회상을 조명하고, 낙서를 좋아하는 인류의 본능이 낳은 역사적 기록들을 추적하고, 민간인이 쓴 난중 일기와 시대를 풍미한 댓글 문화를 통해 백성들의 애환을 그려내고, 국새나 문헌 등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어떻게 해외로 반출됐는지 그 경로를 낱낱이 밝히며 봉인된 역사와 시간을 깨운다. 특히 유물과 유적이 발견된 당시 현장 전문가들의 증언과 뒷이야기,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발품을 판 방대한 사료들, 사회ㆍ문화ㆍ예술 등 다방면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흡인력 있는 서술로 독자들을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다채로운 이면을 만나는 시간!
사건과 사연부터 인물과 인연까지,
새로운 발견과 기막힌 반전의 스토리가 한눈에 펼쳐진다
《하이, 스토리 한국사》는 새롭게 발굴된 유적과 유물, 현재 진행 중인 역사적 이슈, 유명한 위인들의 색다른 면모,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살피는 반성의 시선까지, 우리 역사의 면면들을 다채롭게 담아냈다. 각각의 사건을 주제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조망함으로써 역사 지식을 한 차원 높인 점 또한 탁월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저자가 옛날 이 땅을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현대적 언어로 적확하게 표현해냈다는 것이다.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인류의 본성, 감정, 그리고 삶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기에 글을 읽을 때마다 “그때도!”라며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 구석기판 맥가이버 칼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등장 : 세계 구석기 학계를 뒤집은 동아시아 최초의 발견
1978년 4월, 여자친구와 연천 전곡리의 한탄강 유원지를 찾은 미군 그레그 보웬의 눈에 돌멩이 하나가 포착된다. 자연석 같으면서도 누군가 인공적으로 깎은 흔적이 있는 차돌이었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그는 ‘심상치 않은 석기의 발견’을 세상에 알렸고, 곧 이것이 ‘아슐리안 주먹도끼’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동아시아 최초로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세계 구석기 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동아시아에서는 단순한 ‘찍개 문화’만 유행했다는 ‘모비우스의 가설’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찍기ㆍ찌르기ㆍ자르기ㆍ썰기ㆍ부수기ㆍ파기 등의 기능을 겸비한 ‘구석기판 맥가이버 칼’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본격적인 발굴조사에서 한탄강 변 전곡리 유적 24만 평에서 구석기 유물이 고루 출토되었다. 이곳이 구석기인의 집단 주거지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3년부터 해마다 5월이면 전곡리에서 구석기 축제가 열리고 있다.
■ 케플러보다 4일 앞서 ‘케플러 초신성’을 발견한 조선 : 우리 선조들의 선도적인 천문 기록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1604년 10월 17일에 관측한 초신성 폭발 현상을 ‘케플러 초신성’이라 명명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4일 전인 10월 13일, 조선 천문학자들이 먼저 이 우주 쇼를 관측했다는 사실이다. “1경(오후 7~9시)에 객성(客星)이 미수(尾宿) 10도의 위치에 있었다. 형체는 목성보다 작고 색깔은 황적색이었다.” 2017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ㆍ영국 등 6개국 연구진이 2016년 칠레에서 전갈자리 꼬리 부분에 있는 별을 둘러싼 가스구름을 관측했는데, 그들이 참고한 기록이 〈세종실록〉이었다. “객성이 미성(尾星)의 둘째 별과 셋째 별 사이에 14일간이나 나타났다.” 그 가스구름이 바로 1437년 폭발한 신성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관측 기록이 최첨단 기구로 무장한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결정적 자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의 천문 관측은 어떻게 당대 최고 수준이었을까? 왕조시대 임금은 하늘이 내리는 상서로움과 재앙, 길흉의 조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월식, 지진, 혜성, 신성 등의 이변은 불길한 징조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책임이 임금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천문학에 관심을 쏟고 천문 관측이 정교해진 것이다.
■ 고려시대 왕들의 초상화는 왜 남아 있지 않을까? : 분영갱상의 만행을 저지른 성군의 대명사 세종
현재 고려 왕들의 초상화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세종이 모조리 불태우고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세종은 즉위 후 도화원에 있던 고려 역대 군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모두 불살라버리라고 명했다. 더 나아가 고려 태조의 진영과 쇠로 만든 주물상 및 공신들의 영정을 모두 각각의 무덤에 묻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어진들도 모조리 찾아내 없앴다. 한마디로 고려 임금들의 초상화를 불태우거나 땅에 묻는 이른바 ‘분영갱상(焚影坑像)’의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세종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마치 살아 있는 듯 사실적으로 그려진 고려 임금들의 초상화를 보는 일이 꽤 불편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어진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왕조를 상징한다고 봤기 때문에 색출 작업까지 해서 없애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고려 임금들의 어진은 거의 사라졌다. 만약 고려ㆍ조선의 역대 임금 초상화가 모두 남아 있었다면, 그야말로 숱한 이야깃거리와 연구거리가 탄생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 왜 우리 국새에 영어 이름 ‘Tom’이 새겨져 있을까? : 국가를 상징하는 국새와 어보의 수난사
1882년에 제작된 국새 대군주보에는 생뚱맞은 낙서가 새겨져 있다. 바로 ‘W B. Tom’이라는 영어 이름이다.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대군주보는 일본에 압수당한 뒤 일왕의 진상품이 되어 궁내청으로 들어가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1945년 해방을 맞자 미 군정청이 국새를 모두 인수해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인계하지만,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대한제국기에 제작한 국새는 물론, 종묘에 보관하던 어보까지 행방불명되고 만다. 당시 국새를 관리하던 기관은 “전쟁 중 괴뢰군이 가져갔을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당시 신문 기사를 통해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있다. 어보와 국새의 상당수가 도난당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급기야 미국인에게 넘어간 것이다. 미군이 옥새를 감정 중이라는 첩보를 듣고 금은방 현장을 급습해 압수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심지어는 “국민 중 몰지각한 분자들이 외국인의 환심을 사려고 국보든 뭐든 가리지 않고 선물했다.” 대군주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어느 미국인이 이를 수중에 넣고는 자기 이름을 버젓이 새겨넣은 것이다.
■ 쌍욕에 신상 털기까지, 19세기를 풍미한 조선의 댓글 문화 : 그때도 지금도 사람 사는 것은 다르지 않다
19세기 말 전후로 당시에도 댓글 문화가 있었다. 세책점(도서 대여점)에서 빌린 소설책에 독자들이 툭툭 써 내려간 낙서가 그것이다. 특히 국권이 침탈되던 당대 소설책에는 암울한 시대 상황을 꼬집고 풍자하는 ‘시국 댓글’이 줄을 이었다. 주공격 대상은 매국노였다. “대역부도 이완용아, 천하의 몹쓸 놈 아무 때 죽어도 내 손에 죽으리라. 총리대신 이완용 개자식!” 대놓고 욕할 수 없었던 민중의 울분이 고스란히 담겼다. 익명성에 기댄 욕설 등의 악플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책 주인아, 예전같이 돈을 받으면 감옥소에 보내 종신징역 하게 될 터이니 조심해!”라며 대여비가 비싸다고 주인을 겨냥한 낙서도 줄을 잇는다. 낙서한 사람을 욕하는 유치한 악플 릴레이도 펼쳐졌다. “이것 쓴 사람은 개자식”이라든지, “만약 이 낙서를 보고 욕하는 놈은 내 아들이다” 하는 식이다. 낙서나 댓글은 당대 사회상을 반영하는 일종의 쌍방 간 의사소통이다. 지독한 악플은 문제이지만 이 역시 사회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니 그 자체로 소중한 역사 자료임이 틀림없다.
추천사
고고학 유적과 유물, 역사기록에 남겨진 지혜와 삶의 편린들을 이토록 흥미롭게 써낸 책이 있었던가?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새로운 차원이나 단편적으로만 이해해왔던 면면들에 담긴 인류사적 의의를 쉽고 깊이 있게 안내한다. 이 책은 우리 시대에 극히 드문 폭넓은 식견을 가진 저널리즘 고고역사학자가 대중에게 보내는 지식선물이다.
_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우리나라 최고의 ‘히스토리텔러’인 저자는 고고학 자료에 깊숙이 봉인된 정보를 발굴하는 탁월한 능력과 글솜씨로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미지의 세계로 남겨진 역사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핀셋으로 가려 뽑듯 찾아내 서사를 만들고, 그 안에 온축된 옛사람들의 삶, 그들이 창출한 문화의 실타래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그의 글은 늘 새롭고 설득력이 있다. 역사에 관심 있는 모든 분께 일독을 권한다.
_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