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 마술과 뇌의 경계가 무너진다!
알고도 속는 착시부터 기억과 선택을 조종하는 법까지
매혹적인 마술로 읽는 경이로운 뇌과학
“저는 이분을 골랐습니다.”(최현우)
“현우 씨는 그분을 고른 적이 없습니다. 한번 확인해보시겠어요?”(송영조)
마술과 뇌과학은 원래 하나였다. ‘신관’, ‘연금술사’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사람들을 놀라게 할 방법을 궁리해온 마술사는 우리 뇌가 착각에 취약할 뿐 아니라, 기억을 재구성하고 선택을 조종하기 쉽다는 점을 일찌감치 알아챘다. 뇌과학이 공식적으로 밝혀내기 훨씬 전부터 뇌의 특성을 파악하고 마술에 활용해온 셈이다.
이 책은 마술에서 뇌과학을, 뇌과학에서 마술을 끌어낸다. 마술사가 원한 카드를 관객도 고르게 만드는 ‘크로스 컷 카드 포스’는 기억의 오류를 이용한 마술 기법이다. 뇌가 상황과 맥락에 따라 기억을 재구성하며, 잘못된 정보와 질문, 요약만으로도 기억이 쉽게 교란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유명한 드라마 대사, 늘상 방문하는 SNS의 로고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마술사가 의도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화술인 ‘이퀴보크’는 모호맹, 변화맹, 선택맹 등 우리 뇌의 특징이 집약된 기술이다. 뇌과학은 인간이 선택의 과정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선택지가 바뀌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며, 선택의 이유도 사후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을 밝혔는데, 마술사는 이러한 뇌의 허점을 오래전부터 응용해온 것이다.
뇌가 마술을 볼 때, 마술은 마법이 된다!
‘9와 3/4 승강장’ 착시부터 신체분리 마술까지
한계를 전략으로 만드는 뇌의 비밀
“실제 로프의 길이는 변하지 않습니다. 잡는 방법만 바뀔 뿐이죠.”(최현우)
“손으로 가려진 로프의 정보를 뇌가 또 채워주는 것이군요!”(송영조)
기억은 늘 선택적으로 조작되며,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은 별로 합리적이지 않았고, 현실도 각자의 뇌가 만들어낸다.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뒤흔드는 수많은 뇌과학책의 메시지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어메이징 브레인 쇼》는 이러한 뇌의 실패로부터 출발하는 책이다. 빈틈없는 논리로 무장한 뇌과학자와 사물의 ‘당연한’ 법칙을 무너뜨려온 마술사는, 우리 뇌의 어리석음이 일종의 ‘가성비’ 전략이며, 그러한 뇌의 한계 덕분에 마술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마술에서 널리 사용되는 ‘미스디렉션’은 관객이 보고도 인지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기법으로, 주의 과정의 한계를 기반으로 한다. 우리 뇌는 쏟아지는 정보를 모두 받아들일 수 없기에 좀 더 유리한 정보에 집중하도록 진화했는데, 마술사는 뇌의 이러한 ‘전략적 실패’를 활용하는 것이다. <해리포터> 속 ‘9와 3/4 승강장’ 착시, ‘맹점 실험’, ‘아인슈타인 조각’ 착시, ‘빌리어드볼 마술’, ‘로프 마술’ 등도, 망막으로 들어온 납작한 2차원 정보를 3차원의 고급 정보로 만들기 위해 뇌가 노력한 덕분에 태어난 마술이다. 동물의 보호색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나, 얼굴을 인식하는 데 눈보다 눈썹이 큰 역할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마술사의 손은 정말로 눈보다 빠를까? 마술사인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손이 빠른 게 아니라 뇌의 이런 특징을 이용해 관객의 시선을 분산할 뿐이라고 한다. 뇌의 한계와 전략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사실은, 벗어나기 힘든 우리 뇌의 비합리성을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보도록 해준다.
우리 뇌는 왜 마술을 원할까?
인공지능의 확산과 주의력 저하 시대
뇌를 끝없이 업데이트하는 법
“어린 시절부터 마술을 연습하면 지능 발달에 도움이 될까요?”(최현우)
“마술을 좋아하는 것은 개방성과 연관이 있고, 개방성은 창의적 사고와 관련되죠.”(송영조)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마술을 연구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길 즐겼다고 한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의 책 《오리지널스》에 따르면, 마술을 취미로 삼은 노벨상 수상자의 비율이 일반인보다 높았다. 왜 노벨상 수상자들은, 그리고 사람들은 ‘예측하는 뇌’의 본능을 거스르며 마술을 즐길까? 어쩌다 우리 뇌는 놀라기 싫어하면서도 놀라게 해주는 활동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이 책은 놀라움이 일시적으로는 뇌의 예측 실패를 뜻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예측의 정확도를 높인다고 강조한다. 놀라움을 마주한 뇌는 놀라움을 줄이기 위해 호기심을 품고 학습하며, 이를 통해 세계에 대한 감각을 업데이트하기 때문이다. 마술은 이러한 놀라움을 창조하는 예술이다. 예를 들어 ‘프렌치 드롭’은 기대한 손이 아닌 다른 쪽 손에서 동전이 나오면서 놀라움을 주는 동전 마술로, 우리 뇌가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기대하고 가정하는 특징을 이용한다. 마술사가 카드를 사라지게 했다가 보여줄 때, 주머니보다는 과일 등 상상하기 어려운 곳에서 꺼내는 것도 기대와 결과의 차이를 극대화해 놀라움을 증폭하기 위해서다.
예측이 빗나가는 상황에 노출될수록 우리 뇌는 성장한다. 따라서 호기심을 갖는 태도, 경이로워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술은 언제나 뇌의 예측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여기에 최적화된 활동이다. 실제 연구 결과, 마법과 같은 판타지를 선호하는 아이가 창의력도 높게 측정되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주의력 저하가 우리 뇌를 위협하는 시대에 뇌의 생존력을 높이는 열쇠도 착각하고 놀라는 뇌, 즉 ‘마술을 원하는 뇌’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