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선한 일도 못 하고 일상에 쫓겨 죄만 짓고 살았는데…
저는 어떻게 되나요?”
수천 명의 마지막을 돌보며 깨달은 삶과 죽음의 아름다운 여정
국내 불교계 최초로 호스피스 전문병원을 만들어, 말기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평안을 돕고 있는 능행 스님이 30여 년간 죽음의 현장에서 겪고 느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삶과 희망의 이야기.
늙고 병든 부모 앞에서 재산만 탐하는 자식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자식을 가슴에 품고 보내지 못한 부모, 한국전쟁 때 사람을 죽인 트라우마를 죽음의 순간에도 내려놓지 못한 할아버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마지막 순간까지 미련을 남기고 떠난 인연들…
삶의 굴레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탄생과 죽음은 공평하다. 비록 생명은 유한하지만 죽음으로 가는 길에 진정한 참회와 발원으로 새 삶을 희망한다면, 죽음이 영원한 단절이 아니라 다음 생에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잡은 능행 스님의 손이 미덥고 따뜻하다.
“오늘 하루 우리는 무엇과 이별했는가”
생의 모든 현상은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반짝이는 이슬 같고 번갯불 같으니,
그대 마땅히 그와 같이 알아야 할지니라.
_<금강경>
시작이 있으면 마지막도 있다. 태어났으므로 누구나 죽는다. 잘 살았든 힘들었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 마지막 모습은 모두 똑같지 않다. 한평생 이고 지고 온 이 삶을 어떻게 내려놓을지, 얼마나 아름답게 떠날지는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죽음도 삶의 한 여정일 뿐”이란 마음으로, 30여 년간 말기암 환자들이 마지막 길을 편히 갈 수 있도록 보살펴온 정토마을 자재병원 능행 스님이 그간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생각들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새롭게 내놓았다. 이 책은 저자의 기출간 도서인 베스트셀러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와 《이 순간》 《숨》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글을 가려 내용을 보완하고, 새로 쓴 글을 추가하여 엮었다. 이 세 권의 도서는 죽음과 소생이라는 불교의 희망적인 내세관來世觀을 많은 독자들에게 쉽게 소개하여 출간 당시 수십 만 독자들을 가슴을 울리고 감동을 몰고 왔다.
죽음은 살아 있는 이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고, 우리는 사후死後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하기에 막연히 두렵고 생이 끝나는 시점에 겪는 고통이 무섭다. 태어남이 그러했듯 죽음의 길은 혼자 가야 하기에 더 불안하다. 깜깜한 밤길을 혼자 걸어야 할 때, 등불을 들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안내자가 있다면 그 작은 불빛에 의지하며 위안을 얻는다. 숨이 꺼져가는 순간의 고통은 오롯이 환자의 것이지만, 마음의 고통은 호스피스 영적돌봄가의 도움을 받아 덜 수 있다. 현생의 사람, 재산, 지위 등의 관계는 죽으면 다 부질없으니 이제 모두 내려놓고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며 다음 생을 기원하며 잘 정리하고 홀연히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길의 끝에서 능행 스님이 등을 들고 배웅한다.
“마음을 내면 낼수록 힘겨워지고, 쌓으면 쌓을수록 무거워지는 것이 삶. 무소유의 삶으로 이 세상에 가볍게 머물다가 홀연히 떠나야 하는 것이 진정 충만한 삶의 기쁨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 얼마나 될까.” -167쪽, <새털처럼 가벼운 인생>
“스님은 할 수 있어.
내가 죽어서라도 도와줄게. 원만 세워! 원만 세우면 다 돼.”
청주 정토마을에서 병든 환자들을 돌보다 병원 건립을 반대하는 사람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능행 스님은 우연히 타 종교 병원에서 폐암 말기로 죽어가던 한 스님을 만나고, 그가 사력을 다해 불교 호스피스 전문병원을 만들어 달라고 한 당부 앞에서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마침내 국내 불교계 최초 호스피스 전문병원을 만들었다. 불교 신자들이나 스님들이 부처님의 뜻에 따라 자존감을 지키며 여법如法하게 마지막을 맞을 수 있는 전문병원의 필요성이 절실했고, 능행 스님의 서원과 고행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염원이 모여 정토마을 자재병원에 이르렀다.
그 사연 많은 30년 세월 동안 스님이 겪은 마지막 이야기는 산과 바다를 이루고 하나같이 가슴 절절하다. 큰오빠처럼 든든하던 환자가 떠나던 날의 아픔은 뼈에 사무치고, 채 피지도 못하고 떠난 스물여섯 살 아가씨의 죽음은 파도에 쓸려가지 않고 밀려오고 또 밀려온다.
“그토록 애타게 가족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건만 늘 내일 말해준다며 미루더니 이리도 허무하게 떠나버린 자운 거사님을 다시 생각하니, 아!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저몄다. 행려병동에서 만난 뒤 4년의 세월 동안 자신이 고아라는 말을 그렇게 하기 어려웠을까. 고아란 사실이 자운 거사님에게는 아픈 상처로, 삶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었나 보다. 매년 명절 때마다 가족을 만나러 간다던 거사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다녔던 걸까. 너무 가엾고 불쌍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62~63쪽, <극락에는 치과가 없소?>
죽음을 코앞에 둔 환자의 병실로 찾아와 아픈 환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돈이 될 만한 것을 뒤져 가지고 간 가난한 형제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은 어떤 말로도 이해가 되지 않고, 재산이 많은 부모의 죽음 앞에서 아웅다웅만 하는 자식들의 모습은 오늘날 세태를 보여주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환자가 임종하기 일주일 전, 고향에서 친구 한 명이 찾아왔다. 나는 그 친구에게 지나가는 말로 환자에게 돈이 조금 있는데 형제가 모두 어디에 사는지 환자가 말을 하지 않으니 통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날 저녁 늦게 택시 한 대가 정토마을로 들어왔다. 그때부터 벌어진 사태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누워서 꼼짝도 못 하는 환자 방에 형제들이 들이닥쳐 환자의 소지품을 찾아 짚이는 대로 가지고 갔다. (…) 눈이 뒤집혀 형제도 주변 사람도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183~184쪽, <인간 세상에도 육도가 있다>
“막내딸의 패악을 들으며 누운 할머니는 빙긋이 웃었다.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원하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서 뼈와 피를 나누었지만, 인간은 역시 별개인 존재인가 싶어졌다. (…) 할머니는 손자 손녀나 며느리가 오면 미리 바꿔 두었던 현금을 뭉텅뭉텅 주었다. ‘내가 이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야. 너희는 나를 함부로 하면 안 돼. 나를 잘 보살펴야 해.’ 이런 뜻이 담긴 돈이었다.” -112~113쪽, <무소유가 소유>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또 다른 생의 시작,
인과 연으로 피고 질 뿐
이별과 상실의 아픔, 관계의 굽이를 지나 스님의 이야기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약속으로 끝을 맺는다. 이생이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사람들은 이 지구라는 별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수행자인 저자는 정토에 태어나는 길로 사람들을 안내한다.
“정토에 태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염불수행을 권한다. (…)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믿음과 발원이다. 마지막 순간이 올 때 조금의 의심도 없이 다음 생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여정에 임해야 한다. 죽음에 가닿는 순간이야말로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기회이며, 이것을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245쪽, <희망은 우리를 춤추게 한다>
가을이 되면 한여름 푸르렀던 나뭇잎은 검붉게 변하고 마침내 나무에서 떨어진다. 한겨울 나무는 가지만 남아 생장을 멈춘 채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듬해 봄이 되면 나무에서 작은 싹이 트고 생명의 순환을 다시 시작한다. 죽음은 겨울을 지나는 나무와 같다.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250쪽)
부처님이 찾아오라 한 겨자씨를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모두 다 죽는다’란 진리를 깨달은 여인처럼, 우리도 꽃이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는 자연의 순리를 알아 이듬해 봄날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감사히 살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