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각색으로 역동적이고 유쾌하게 구성해낸 서양철학사
새로운 생각으로 변화를 만들고 싶은 모든 이를 위한 교양 철학 만화, 그 완결편!
세계의 문제에 관심 많은 소피에게 어느 날 날아든 의문의 편지와 함께 시작된 철학 수업. 소피는 알베르토 선생님과 함께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철학의 기원에서부터 서양 사상의 주요 흐름을 알아보는 흥미진진한 탐구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소피는 자신이 한낱 만화 속 등장인물임을 깨닫고, 만화의 사각형 칸에서 작가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 떠나게 되는데... 자유를 향한 이 새로운 모험은 소피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출간 30년이 지나도록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철학소설 《소피의 세계》가 만화로 독자를 찾아왔다. 프랑스의 유명 출판사 알뱅 미셸에서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현재 2권까지 출간)에 이어 야심 차게 기획한 지식교양 만화로, 열다섯 살 소녀 소피가 의문의 철학 선생님과 편지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양철학사 전반을, 그리고 자신이 누구이고 그를 둘러싼 세계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소피의 세계》를 더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한 만화로 재탄생시켰다. 신화시대에서 바로크시대까지의 내용을 담은 1권 한국어판이 2022년 가을에 먼저 출간되었는데, 원작소설보다 더 쉽고 재미있게 철학을 소개할 뿐 아니라 그래픽노블로서의 작품성도 탁월하여 청소년과 성인독자들의 관심과 호평을 받았고, 출판사에는 2권의 출간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 출간된 2권에서는 서양 근현대 철학을 다룬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흄, 루소,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다윈, 프로이트, 니체,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등 17세기 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서양 철학자들이 그 주인공들인데, 현대 사상의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마르크스, 다윈, 프로이트도 각각 한 장씩을 할애해 다루었다.
돋보이는 상상력, 다채롭고 실감나는 만화적 장치
현대적으로 재탄생한 《소피의 세계》
원작소설 《소피의 세계》가 출간 후 30년이 지나도록 사랑받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 안에 2500년 서양철학사의 주요 주제를 풀어낼 수 있었던 까닭이다. 노르웨이에서 철학교사로 일하기도 했던 요슈타인 가아더는 다소 복잡하지만 흥미로운 액자소설의 구성 안에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부터 사르트르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서양철학자들의 사상을 10대의 눈높이에 맞추어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세계는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와 같은 물음을 파고드는 소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오래된 철학 질문이 어떻게 나의 ‘철학함’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출간되자마자 호평을 받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금세 청소년 필독서로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철학입문서로 사랑받았다.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는 놀라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만화적 요소들을 활용해 소피의 철학모험을 소설보다도 한층 역동적으로, 흥미롭게 펼쳐보인다. 1권에서는 원자설을 주장한 데모크리토스가 레고블록으로 조립된 모습으로 등장해 자신의 사상을 그대로 체현하는가 하면, 주인공 소피는 떠다니는 글자를 잡아타고 현실 세계와 철학의 세계를 오가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2권에서는 이러한 만화적 장치를 더욱 다채롭고 실감나게 활용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험론자 흄을 만나는 공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과 유사한데, 여기서 소피는 아이가 되었다가 노파로 변하는 등 기묘한 경험을 하면서 기존의 사고를 의문에 부치게 된다. 카를 마르크스는 벽에 붙은 연필 소묘화에서 걸어나오는데, 그가 설명하는 내용 역시 19세기 자본주의의 현실을 보여주려는 듯 모두 거친 터치의 흑백 드로잉으로 묘사된다. 무의식의 심해를 탐사하는 일은 프로이트의 잠수정을 타고서 이루어진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를 만나는 곳은 20세기 프랑스 사상가와 작가들의 아지트였던 파리 플로르 카페인데, 독자는 웅성대는 말소리며, 담배 연기며, 마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만화 시나리오 작가 뱅상 자뷔스와 그림작가 니코비는 원작자인 요슈타인 가아더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용받고 작업했다고 한다. 10대 소녀 소피가 의문의 철학 선생님과 편지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양철학사 전반을, 그리고 자신이 누구이고 그를 둘러싼 세계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큰 스토리는 그대로이지만, 섬세한 각색을 거쳐 현대적으로 재탄생한 이 작품은 원작과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난 자유로워지고 싶어!“
‘지금 여기의 나’와 관계 있는 철학
《소피의 세계》 한국어판이 처음 출간된 것이 1990년대 중반이었니, 벌써 한 세대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에는 그간 달라진 문화가 반영되었다. 호기심 많고 자신과 세계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명민한 주인공의 성격은 그대로이지만, 2020년대의 소피는 기후위기를 실존적 문제로서 고민하며 ”지구에서 1년간 만들어지는 자원을 반년 만에 다 써버리고, 나머지 반년 동안은 외상으로“ 사는 오늘의 삶의 방식에 대해 신랄한 물음을 던진다. 여성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뒤떨어진 철학에 맞서는 시선도 조금 더 예리해졌다.
원작소설도 그러하지만, 이 만화 속 소피의 철학수업이 매력적인 이유는 철학이 ‘지금 여기의 나’와 아무 관계 없는 고담준론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특히 2권에서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소피의 이야기와 철학사상, 만화적 상상력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신의 존재가 ”저자의 머릿속 신경덩어리“에 그치길 거부하는 소피는 끊임없이 만화의 사각형 프레임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자유로워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야기를 끝내겠다며 절벽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기도 할 정도로 절실한 문제의식을 지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철학자들과의 만남과 배움은 계속되는데, 가령 역사에 대한 헤겔의 관점을 접하고서 소피는 좀더 넓고 낙관적인 시야를 갖게 되고, 키르케고르와 만난 뒤로는 ‘행동하고 선택할 때야말로 자신의 실존을 확인할 수 있는 때’라는 점을, 카뮈와의 만남에서는 ”목표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시도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점을 깨닫고 ‘마지막 선택’을 감행할 용기를 내게 된다.
운명론과 이미 짜인 각본에 맞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려는 소피, 문제의식을 갖고 세상을 바꾸고자 고민하고 참여하는 소피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고민하는 10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생각하며 당당한 주체로 서기를 바라는 오늘의 모든 젊은 독자들은 소피의 모습에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