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독일 베를린에서, 유대인 사업가인 아버지와 정치인 집안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얼마 전 전사했고, 화가이던 어머니가 사업을 이어받아 이끌었다. 1935년 나치당이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는 뉘른베르크 법을 제정하자 독일에서의 삶을 뒤로한 채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는다. 스웨덴으로 이주했다가 노르웨이로, 이듬해에는 프랑스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틈틈이 첫 소설 《삶의 옆에 있는 사람들(Menschen neben dem Leben)》을 집필했다. 이 작품은 스웨덴어로 번역되어 ‘욘 그라네’라는 필명으로 스웨덴에서 출간되었다. 소설의 성공에 힘입어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 입학해 두 학기를 다녔다. 이후로도 보슈비츠는 수도 없이 경찰에 체포되고 추방되고 벨기에와 영국 등지로 거처를 옮겨야 했지만, 계속되는 망명 생활 중에도 집필을 이어갔다. 1938년 11월 독일에서 대규모의 유대인 박해 사건인 일명 ‘수정의 밤’이 벌어졌고,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사 주 만에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두 번째 소설 《여행자》를 써냈다.
《여행자》 역시 필명으로 1939년 영국에서, 1940년 미국에서 출간되었지만, 보슈비츠는 작가로서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에 있던 그는 독일 국적자라는 이유로 적국인으로 분류되어 맨 섬의 수용소에 격리당했다. 1940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포로수용소로 옮겨졌다. 이때도 그는 ‘죽는 것보다 원고를 잃는 게 더 두렵다’고 말할 정도로 원고에 매달렸는데, 이미 출간된 《여행자》를 철저히 손 본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는 개정판 원고 일부를 동료 수감자 편으로 어머니에게 보냈고, 1942년 영국 귀환이 결정되자 마지막 원고를 지닌 채 배에 올랐다. 출발 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저는 이 책에 분명 성공할 만한 힘이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이 배가 독일 잠수함이 쏜 어뢰에 맞아 침몰하면서 보슈비츠는 원고와 함께 죽음을 맞았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보슈비츠가 고쳐 쓴 원고는 사라졌지만, 1938년에 집필된 《여행자》 독일어 초고는 남아 있었다. 전쟁 직후 독일 지식인들이 이 책을 출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고, 소설가 하인리히 뵐이 발 벗고 나섰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부담을 느낀 출판사들이 출간을 거절하여 《여행자》는 독일국립도서관 문서실에 잠들어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고 마침내 2018년, 보슈비츠의 친척과 연락이 닿은 독일 편집자의 손을 거쳐 독일어로 쓰인 《여행자》가 출간되었다. 원고가 모국어로 출판되기까지 꼭 80년이 걸린 셈이다. 《여행자》는 독일 역사의 어두운 면을 당대에 묘사한 최초의 소설로, 자국의 치부를 다룬 작품임에도 언론과 독자의 찬사를 받으며 문학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2019년, 보슈비츠를 기리는 걸림돌(나치 희생자를 기억하는 설치물)이 베를린의 슈마르겐도르프에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