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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위대한 희망

2011.01.06조회:1304

김영사 보도자료

아프리카 여성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의 가슴 뜨거운 삶과 인생
위대한 희망

왕가리 마타이 지음 | 최재경 옮김 | 524쪽 | 값 23,000원


나에게 나무는 생명과 희망을 상징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천국은 녹색일 거라고...



부패 정권의 무분별한 개발에 맞선 환경운동가이자 그린벨트 운동의 창시자, 아프리카 여성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독재 정권에 대항하며 케냐의 민주화와 아프리카의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평화의 혁명가 왕가리 마타이, 그녀가 일궈낸 위대하고 감동적인 희망의 증거!

2004년 10월 8일, 노르웨이의 노벨상위원회는 노벨평화상의 수상자로 케냐의 여성 환경운동가를 선정했다. 기존의 노벨평화상이 분쟁 해결이나 인권 신장 혹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투쟁에 힘써온 정치인들에게 주어진 것을 고려할 때, 뜻밖의 수상 결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 세계에 환경을 지키는 것이 곧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노벨평화상’ 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역사적인 수상이기도 했다. 이 뜻 깊은 수상의 주인공이 바로 당시 케냐의 환경자연자원부 차관을 역임하고 있던 왕가리 마타이다. 부패한 독재 정권의 무차별적인 난개발에 맞서 그린벨트운동을 창시하고 이를 통해 빈민들의 자립을 위한 새로운 시민운동의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케냐를 넘어 아프리카 전체의 평화를 앞당긴 위대한 작은 거인, 왕가리 마타이. 억압과 핍박, 그리고 도전과 극복으로 이어지는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를 그대로 닮은 그녀의 일생이 담긴 자서전 《위대한 희망》이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식민지 케냐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동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나이로비 대학 해부학 교수를 거쳐 학장까지 역임했지만, 개인적인 성공을 뒤로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케냐의 환경을 지켜내는 데 쏟아부은 왕가리 마타이, 그녀가 펼친 환경운동은 단순한 환경보전운동이 아닌, 좀 더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도전이었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농촌의 여성들에게 나무를 심고 기르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케냐의 자연환경을 지켜나감과 동시에 빈곤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좌절한 여성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한 희망의 증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한 환경운동가로서의 왕가리 마타이가 아닌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의 권리 회복을 위해, 부패 정권의 무분별한 개발 속에서 자연을 지키기 위해, 가난으로 고통 받는 빈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독재 정권의 폭압 속에서 민주주의의 대의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평생을 바친 숭고한 영혼의 발자취라 할 수 있다.


환경은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환경을 만든다!

식민지 케냐의 작은 시골마을 소녀가 동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뜨거운 도전정신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나아가 전 세계의 환경을 뒤바꾼 이 시대의 작은 거인!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고 했다. 마타이는 케냐가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근대국가로 성장하는 전환기에 탄생한 작은 거인이다. 물론 마타이에게는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한번 결정한 일을 밀어붙이는 엄청난 추진력이 있었다. 남다른 능력이다. 시련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인한 정신력도 갖추고 있다. 이런 개인적 능력이 없었다면 마타이가 지금까지 이룬 성취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개인적 승리였다. 하지만 마타이를 시대의 영웅으로 만들어 준 또다른 원인은 마타이를 둘러싼 시대적 환경이었다. (추천의 글)

영국의 식민지였던 케냐의 작은 시골마을, 일부다처제를 전통으로 가지고 있는 키쿠유 부족의 한 가정에서 두 번째 부인의 맏딸로 태어난 작은 소녀, 마타이.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분위기 속에서 자칫 글을 배울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맏딸에게 부모는 과감하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고, 이것은 한 소녀의 역사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역사, 그리고 전 세계의 환경을 뒤바꾼 선택이 되었다.
시대의 변화 역시 마타이에게 큰 기회를 안겨주었다. 195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준비하며 영국 관료들을 대체할 케냐의 엘리트를 육성할 필요성을 느낀 케냐 임시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600여 명의 고등학생을 선발해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고등학교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마타이는 미국 유학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선발되어 미국 유학을 통해 새로운 사회에 눈을 뜨게 된다. 그녀는 이 미국 유학 시기가 ‘모든 일을 비판적이고 분석적으로 들으며, 배우고, 생각하고, 질문하는 태도’ 를 배웠다고 회고하고 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다시 독일에서 짧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마타이의 인생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케냐에서 몇 되지 않는 유능한 여성 전문직업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남편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안정적인 상류층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순탄해 보였던 그녀의 인생은 케냐의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믿었던 남편이 일방적으로 진행한 이혼, 이혼녀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들, 이혼과 함께 찾아온 경제적 어려움…. 하지만 두드릴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강철처럼 마타이를 둘러싼 주위 환경은 그녀를 더욱 강하고 굳건하게 만들어 나갔고, 그렇게 그녀와 그녀가 시작한 환경운동은 고난 속에서 점점 더 굳게 뿌리를 내려갔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경을 위하여!
생명에 대한 숭고한 열정으로 검은 대륙에 평화의 숲을 일군 불굴의 환경운동가 가슴 벅찬 인생 역정

사람들은 내 인생과 그린벨트 운동이 만나게 된 과정을 알고 나면 반드시 나에게 \"왜 하필 나무야?\"라고 묻는다.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문제에 대응하는 나의 방식 때문이다. 나는 눈앞에 닥친 수많은 무제들 중에서 우선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있는 것부터 골라 그것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살다보니 내 뿌리에서 샘솟아난 생각이 다른 지식과 행동의 샘물들과 합류하여 어느덧 내가 상상했던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자라나 거대한 강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222쪽)


1970년대 초 계속되는 남벌과 제초, 지속 불가능한 농사와 토양 손실로 케냐 시골 여성들의 환경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당시 케냐여성위원회의 회원으로 세미나에 참여해 케냐 여성이 안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던 마타이는 케냐 여성들의 문제가 바로 자연환경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자연의 생명력을 회복함과 동시에 케냐의 여성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나갈 돌파구로 그린벨트운동을 창시한다. 1977년 처음 시작된 그린벨트운동은 케냐를 넘어 아프리카 전역에 30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는 성과를 올린 성공적인 환경 운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지배와 무분별한 개발정책으로부터 여성과 자연을 해방시키기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이후 그린벨트운동은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남벌과 빈곤, 무지와 구조적· 경제적 불균형에 대항하는 성공적인 운동으로 성장해나갔다.
그린벨트운동을 통해 유럽의 지배 하에서 마구잡이식으로 개발된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을 효율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는 것이 아프리카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케냐의 국민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린벨트운동을 진행하는 공동체 내부에서도 정부가 무엇을 해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스스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는 것은 그린벨트운동이 가져온 큰 성과 중의 하나로, 시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왕가리 마타이의 활동가적인 면모는 선도적으로 앞서가되 홀로가 아닌 함께 하는 방식을 지향하면서 더욱 돋보였다.
국제사회에서 그린벨트운동에 대한 인식은 늘어갔지만 정작 케냐 국내에서 마타이에 대한 독재 정권의 탄압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마타이와 케냐 정부 사이의 첨예한 대립은 우후루 공원의 타임스 복합빌딩 건설을 두고 일어났다.
1989년 케냐 정부는 나이로비 시내의 우후루 공원 부지를 외국투자자들에게 초고층 빌딩 용지로 팔아넘기려는 계획을 세웠다. 왕가리 마타이는 직접 시위대를 이끌며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꿋꿋하게 정부의 탄압에 맞섰다. 그 과정에서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과 방해공작을 받았고 심지어 정신 나간 여자로 매도당하기도 했지만, 마타이는 케냐 시민단체와 국제기구의 동조를 이끌어내며 마침내 지금의 우후루 공원을 지켜낸다.


생명의 힘으로 폭력의 시대에 맞선 평화의 혁명가
환경운동을 통해 아프리카의 살아있는 역사가 된 왕가리 마타이의
영혼까지 뒤흔드는 인간 승리와 숭고한 삶의 메시지!

우리 중 누구도 우리가 처한 상황 전부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상황이 내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나는 언제나 실패를, 나를 성장시키고 계속 전진하게 만드는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좌절은 우리가 걸어가는 긴긴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하나의 고비일 뿐이며, 거기에만 머무르다가는 우리의 여정이 지연될 뿐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성공한 사람은 모두 여러 번씩 넘어져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다시 전진했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298쪽)

타임스 복합빌딩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케냐에서 환경운동을 한다는 것은 항상 권력과 맞서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개발에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정부의 중심부에 있는 실세들인 까닭이다. 때문에 왕가리 마타이는 환경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험로에서 투옥되기도 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마타이의 그린벨트운동이 케냐 정부의 탄압을 받아왔던 것도 이 운동이 단순히 환경운동에 그치지 않고 인권 특히 빈민과 여성의 인권신장과 관련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마타이가 억압적인 케냐 정부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이유도 환경과 인권 신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타이가 30년에 걸쳐 펼쳤던 나무 심기 운동과 여성 인권 신장, 민주화 투쟁은 마징기라녹색당이라는 녹색정당을 결성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으며, 케냐의 민주화를 이끌어내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마타이에게 케냐의 민주화는 여성해방과 환경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실은 2004년 노벨평화상으로 돌아왔다.

20세기, 우리는 자연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것이 인간의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해준다고 믿었고, 그렇게 우리는 자연을 개발과 맞바꿔 나갔다. 하지만 그런 믿음으로 한 세기를 보낸 우리 앞의 현실은 우리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 파괴로 인한 숱한 자연재해는 오히려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고, 환경자원을 둘러싼 분쟁은 민족과 종교 분쟁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환경은 문제는 바로 인간 생존의 문제이자 평화의 문제와 직결된다. 왕가리 마타이는 이런 진리를 누구보다 먼저 깨닫고 실천해나간 이 시대의 진정한 선구자요, 평화의 혁명가이다. 이 책은 그녀의 숭고한 메시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추천의 글

왕가리 마타이와 그린벨트운동은 아프리카의 희망이다. 그녀는 아프리카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와 평화로 이어짐을 몸소 보여준 탁월한 지도자다. _ 넬슨 만델라(노벨 평화상 수상자)

유려한 문체로 진솔하게 써내려간 현대 아프리카의 고난과 승리의 역사이자, 모진 핍박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대의를 지켜낸 승리의 표본이다. _ 빌 클린턴 (前 미 대통령)

왕가리 마타이는 가난이라는 현실 앞에 좌절한 케냐 사람들을 독립적인 삶으로 이끈 위대한 리더이며,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자신이 생각보다 더 강인하고 현명하며 용감하다는 것을 직접 입증해 보여준 인물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미국 여성운동가)

수많은 역경을 딛고 이뤄낸 그녀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 어떤 노벨상보다도 평화의 가치를 더 깊이 깨닫게 한다.
〈시애틀 타임스〉

왕가리 마타이는 소신과 열정, 그리고 불굴의 집념을 통해 케냐와 아프리카를 넘어 전 세계를 변화시킨 감동의 주인공이다.
〈워싱턴 포스트〉



왕가리 무타 마타이 Wangari Muta Maathai

아프리카 여성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독재정권의 무분별한 개발에 맞서 지속적인 환경운동을 통해 케냐의 민주화와 아프리카의 평화에 크게 기여한 환경운동가이자 정치운동가. 미국과 독일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동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 나이로비 대학 해부학 교수를 거쳐 학장을 역임한 그녀는 자신의 교육적 배경을 개인적 성공이 아닌 억압받는 케냐의 빈민들, 특히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사용했다. 물 부족과 영양 결핍, 가난으로 고통 받던 케냐 농촌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고, 부패한 정권의 개발정책에 맞서 1977년부터 그린벨트운동을 시작, 여성들에게 나무 심는 법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남벌과 빈곤, 무지와 구조적·경제적 불균형에 대항하는 성공적인 운동으로 성장한 그린벨트운동은 아프리카 전역에 30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는 성과를 올린 성공적인 환경운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시대와 무분별한 개발정책으로부터 여성과 자연을 해방시키기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이후 환경과 여성문제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왕가리 마타이는 1989년 나이로비 시내 우후루 공원에 62층짜리 타임스 복합빌딩을 세우려는 정부 계획을 반대하며 우후루 공원의 자연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펼친 끝에 마침내 복합빌딩 건설 계획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2003년 케냐의 천연환경자원부 장관에 취임, 200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왕가리 마타이는 환경과 평화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새로운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


옮긴이 최재경
1971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95년 가을 〈상상〉에 단편소설 〈살아 있는 죽은 여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 《반복》《숨쉬는 새우깡》《플레이어》와 에세이 《여자 서른, 자신 있게 사랑하고 당당하게 결혼하라》《신 여우의 기술》이 있고, 옮긴 책으로 《깃털이 전해준 선물》《그레이시》《까마귀의 마음》《글쓰기 수업》《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예술가들의 사생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