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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없는 예수 교회

2008.12.09조회: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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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없는 예수 교회

한완상|152*225|300쪽|12,000원


우리 시대의 참 지식인, 한완상 박사의 교회 힐링 메시지!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역사적 예수의 체취와 숨결, 그리고 그분의 꿈

베스트셀러 <<민중과 지식인>>에 이은 한완상 박사의 또 하나의 역작! 교회의 승리주의적 태도, 물량주의, 배타적 독선에 울리는 경종, 그리고 겸허한 자기반성과 세상 속의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좌표를 제시한 책!
종교적 선민의식과 종파주의를 초월했던 예수, 그에게서 한국 교회가 배워야 할 평화적 저항, 익살스러움, 날카로움, 통쾌함, 당혹스러움, 탄성을 발하게 하는 해학적 감동, 신앙의 역설을 애정 어린 질책과 함께 절제된 언어로 풀어냈다. 이를 통해 양적 팽창 속에서 지속되어온 반지성적 풍토와 기복적 신앙, 경직되고 불투명한 교회운영과 권위주의적 교회 구조, 예수의 삶이 증발되어버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천박한 이기주의를 치료할 해법을 제시한다. 밖으로 굽으시는 하나님의 팔, 우아한 패배의 원리, 실패와 자기 부인의 십자가 정신, 자기 비움과 남 채움의 원리 등 끊임없이 자기 속에서 충동하는 탐욕과 독선의 힘을 비워내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체득해야 할 삶의 방식 또한 제시하고 있다. 인간적인 체취가 묻어나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해석을 통해 한국 교회의 일그러진 교회상을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회복시켜줄 힐링 메시지!

“예수 없는 껍데기 교회로 성장할수록
예수님의 질책과 세상의 모멸적 비난은 더 매서워질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대부분 한국에 있을 정도로 급성장한 한국 교회가 정작 우리나라에서 불신과 모멸과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은 단지 교인수의 감소에서 찾는 위기가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면에서의 위기이다. 그것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우리의 ‘믿사오니’ 열정과, 예수의 삶을 올곧게 닮아가는 ‘따르오니’의 삶 사이의 간격, 그 멀어진 간격으로 말미암는다. 한완상 박사는 사회학자로서의 노련한 안목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시대 교회가 앓고 있는 중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치료할 해법을 모색한다. <민중과 지식인>이 한국 사회에 던진 화두를 던졌다면, 이 책은 한국 교계에 던지는 또 하나의 화두이다. 목회자 없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시작한 새길교회에서 틈틈이 전했던 메시지 가운데 이 시대에 필요한 주제들을 모아 전면 수정하여 엮은 책으로, 수많은 책들 가운데 처음으로 인세를 받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새롭게 조명되고 해석되어야 할 역사적 예수
사회과학자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병은 겉으로 드러난 환부를 치료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배후에 자리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즉 역사적 예수에 대한 몰이해, 내지 이해 부족에 있다. 그 대표적인 증후를 ‘사도신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했다는 것과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당했다는 사실 외에는 그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 일용할 양식의 문제, 빚진 자를 탕감하는 문제, 탐욕과 독선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문제 등 이 땅의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셨던 예수, 밑바닥 인생의 억울한 고통을 함께 나누시고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당했던 그 당시 씨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나사렛 예수에 대한 외면은 결국 예수의 구체적 삶이 증발되어버린 신조와 신앙고백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양적 팽창 속에서 지속되어온 반지성적 풍토와 기복적 신앙, 경직되고 불투명한 교회운영과 권위주의적 교회 구조, 천박한 이기주의와 개교회주의를 치료할 해법은 다름 아닌 역사적 예수의 회복에 있다고 본다.

신앙, 그 감동의 역설
종교적 선민의식과 종파주의를 초월하신 예수, 그에게서 한국 교회가 제대로 배워야 할 평화적 저항, 익살스러움, 날카로움, 통쾌함, 당혹스러움, 탄성을 발하게 하는 해학적 감동, 그리고 신앙의 역설을 애정 어린 질책과 함께 절제된 언어로 풀어냈다. 구약의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 누가 자기의 어머니요 가족인지를 말한 예수의 이야기,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등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예들을 통해 하나님의 팔이 어떻게 ‘밖으로’ 굽으셨는지를 보여주고, 이를 통해 그동안 줄곧 안으로만 굽었던 한국 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확인케 한다. 지면서도 이기는 우아한 패배의 원리, 승리의 십자가가 아니라 실패와 자기 부인의 십자가 정신, 자기 비움과 남 채움의 원리 등은 끊임없이 자기 속에서 충동하는 탐욕과 독선의 힘을 비워내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체득해야 할 삶의 방식이자 우리에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촉구하는 우리 시대의 ‘불온한 발언’이기도 하다.

사회를 치료하는 소셜 닥터, 그 지난했던 길
이 책은 한완상 박사가 신앙을 갖게 된 과정, 부모님에 대한 기억, 고등학교 2학년 때 신학자와 의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야기, 대학생 시절 절친했던 친구의 어이없는 죽음, 학보병으로 입대해 겪은 군대 이야기, 김대중대란음모사건으로 받았던 고문, 망명생활 이야기, 끝내 자식의 복직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 등 개인적인 라이프스토리를 많이 담고 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에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 맞은 해방과 곧이어 터진 6.25 전쟁, 가난과 질병의 고통으로 점철된 그 시기를 지나 암울했던 현대사의 격랑을 헤쳐 나오는 동안 그는 어느덧 ‘사회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한 시대의 구조적 불의와 씨름했던 지난 70여 년 동안 교수, 수인, 부총리, 위원장, 적십자 총재, 대학교 총장 등 다양한 직책을 경험해보았지만, 그 경험을 관통하는 것은 ‘희망의 힘’이었다고 회고한다. 그 삶의 행간들에는 힘의 논리로 작동되는 ‘평화 지키기’보다 나눔과 비움을 통해 세워지는 ‘평화 만들기’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삶의 이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


본문 중에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한국에 있습니다. 주요 개신교 교파마다 세계 제일의 교회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터에, 한국 기독교를 ‘개독교’라 폄하하고 개신교 성직자를 ‘먹사’로 희화하는 오늘의 현실을 보고 크리스천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안티 기독교의 온갖 비난과 질책은 한국 개신교회를 향한 이 시대 ‘돌들의 외침’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역행하는 교회가 불러일으킨 자업자득의 결과 같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분노하기에 앞서, 왜 한국 교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진솔한 자기반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pp.6-7

예수를 열심히 믿는 신자일수록 그들의 하나님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옛날 유대종교에 열성이었던 신자들처럼 말입니다. 종교적 선민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들의 하나님을 배타적인 신으로 믿고 싶어 합니다. 과연 우리 하나님은 그 팔이 안으로만 굽으실까요? 온갖 사이비 종파주의자들이 굴을 파거나 숨어 살면서 종파적 이기주의를 극대화하는 것도, 그들의 하나님이 종파적 신이기에 그 팔은 항상 안으로만 굽는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p.41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마 16:24). 여기에서 ‘자기부정’과 ‘십자가 지기’는 같은 뜻의 말씀을 두 번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부정은 자기 비움과 같습니다. 자기 비움은 끊임없이 자기 속에서 충동하는 탐욕과 독선의 힘을 비워내는 일입니다. 십자가 지기는 자기 지움을 뜻합니다. 영어로 ‘cross out’은 지워 없앤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자기 탐욕과 독선을 지워 없애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예수따르미가 지켜야 할 기본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걸어가신 길이 이러할진대, 예수의 이름으로 자기를 지워 보려는 모든 노력을 단지 그것이 교회 테두리 밖에서 이뤄진다는 이유로 정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종교적 독선주의, 배타주의, 이기주의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언뜻 보기에 예수따르기에는 자기 패배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온갖 탐욕의 경쟁에서 스스로 지기를 자청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따르미의 상징으로 십자가보다 두 번 지우는 결단의 상징인 ×가 더 적절한 듯합니다. 실제로 십자가를 질 때 생기는 십자가의 모습도 이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새로운 기독교 상징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pp.217-18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이야말로 우아하게 지면서 마침내 모두 함께 이길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새로운 삶, 멋있게 짐으로써 함께 이기는 새로운 삶의 가치를 오늘날 개신교 지도층이 가장 이해를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은 한국이나 구미에서나 크게 다를 바 없어 더욱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그 원인은 주로 물리적, 물질적 힘에 의한 승리, 그에 따른 평화를 오랫동안 숭배해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이나 한국에서 교회 지도자의 주류는 승리주의 가치를 기독교 본연의 가치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적 기반이 강한 교회이기에, 힘을 통한 승리와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교회일수록 역사적 예수 운동의 원래 의도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교인일수록 예수의 삶과는 동떨어진 삶을 정상적인 크리스천의 삶인 양 착각하는 듯합니다. 하기야 성서도 이 문제를 언급하는 데 일관성이 부족한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pp.252-53


저자 소개
한완상
사회과학자, 행동하는 양심, 자원봉사자의 귀감이 되고 있는 한완상. 그는 교육계, 정치계, 사회학계, 종교계를 넘나들며 참 지식인상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 사회와 교계의 환부를 예리하게 진단, 처방하는 소명을 다하고 있다. 엄혹했던 현대사의 격랑으로 두 번의 해직과 수형생활을 겪어야 했지만, 힘의 논리 위에 서 있는 ‘평화 지키기’보다 나눔과 비움을 통해 세워지는 ‘평화 만들기’를 끝까지 주창한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고 강자가 약자의 체질로 변화되는 이사야 11장은 그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유토피아다. 일제 시대에 태어나 6.25 전쟁을 경험하고, 껍데기뿐인 민주주의로 인해 독재와 비리, 사회의 부조리를 일찍부터 경험했기에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치료하는 예수와 같은 의사’ 곧 소셜 닥터(social doctor)의 길이 그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소명이었다. 그 이력은 높고 범상치 않았으나 지향점은 항상 ‘낮은 곳’이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모리 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서울대 문리대 교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와 상지대 총장, 부총리겸통일원장관, 부총리겸교육인적자원부장관, 대한적십자 총재를 역임했다. 저서로 <<현대사회와 청년문화>><<지식인과 허위의식>><<민중과 지식인>><<저 낮은 곳을 향하여>>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