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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동

다윈의 식탁

2008.11.25조회:3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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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식탁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

장대익지음|145×210|316쪽|값13,000원

인류의 위대한 성취, 진화론. 그 150년 논쟁에 새 이정표를 제시한다! 화석화된 교과서 속 진화론 너머, 소통이 살아 숨쉬는 지식의 참맛을 즐겨라!

여기,《다윈의 식탁》이 있다. 식탁에 초대받은 손님들의 입이 무척이나 부산한 건, 그저 차린 음식들이 더없이 훌륭해서만은 아니다. 익히들 알고 있다시피, 천하제일 산해진미도 때와 장소에 따라 참기 힘든 고역이 되는 경우, 얼마나 많은가. “식탁은 대개 밥과 함께 하지만, 언제나 밥을 넘어선다”는 저자의 말마따나 ‘식탁의 힘’이 음식 자체만으로 생기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함께한 사람들 간에 오가는 이야기와 음식 구석구석에 ‘희로애락’이 양념과 소스처럼 스밀 때야 비로소, 식탁은 살아 있는 맛과 향취로 풍성해지는 법. 책쓴이 장대익 교수(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가 책제목에 ‘논쟁’ 대신 굳이 ‘식탁’이란 용어를 쓰면서 내친 김에 ‘식탁하다tablize’라는 조어까지 제안한 데는, 이렇듯 책쓴이 나름의 ‘식탁론’이 조리법처럼 자리해 있다.
《다윈의 식탁》은《종의 기원》이후 150년 논쟁 속에서 진화해온 진화론을 다윈의 후예들이 어떻게 ‘식탁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이다. 진화생물학계를 양분해온 두 유파의 좌장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를 필두로 내로라하는 진화론 고수들이 장장 엿새에 걸쳐 벌이는 지적 용쟁호투를 통해, 화석화된 교과서 속 과학 지식은 유머와 위트, 격정과 곡절이 깊이 배인 맛깔스런 먹을거리들로 탈바꿈한다.
2002년 5월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진화 이론계의 거두 윌리엄 해밀턴 경의 넋을 기리고자 그가 재직한 옥스퍼드대학에 모였다가 BBC의 전세계 독점생중계하에 주요 토픽별로 맞장토론을 펼치게 된다는 팩션faction식 설정도 이 책에서 다루는 토픽들에 대한 흥미와 현장감을 높인다. 진화론 관련 토픽들과 지적 통찰을 가상적이면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구조’에 녹여냄으로써 고급 교양에 대한 독자들의 접근성과 친근감을 배가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과학 지식이나 과학적 진리가 본질적으로 ‘정답’을 선취하려는 승자독식형 경주가 아니라, 그 답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접근법의 타당성과 설득력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 속에서 진화해간다는 점까지 아울러 보여준다. 지난 2004년 말~2005년 초 우리는 소위 ‘황우석 스캔들’로 “논쟁 없는 과학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는지”, 과학이 어떻게 논쟁을 먹고 크는 지성의 요람이긴커녕 ‘국익’에 부화뇌동할 뿐인 현대판 주술로 쪼그라들 수 있는지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다윈의 식탁》은 진화론 지식의 지도를 작성하는 데뿐만 아니라 황우석 스캔들, 광우병 쇠고기, 한반도대운하 논쟁처럼 갈수록 첨예해지는 과학기술 지식 논쟁이 지닌 사회철학적 함의를 짚는 데도 유용한 길라잡이다. 물론 진화론 논쟁 자체를 통해서도 이런 미덕은 마찬가지로 드러나는 바, 진화론이 어떻게 오늘날 (진화)생물학 영역을 넘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지적 재결합 혹은 통섭을 이끌고 있는지 경쾌하게 보여준다.
책 말미에〈이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들〉과〈도킨스 깊이 읽기〉,〈‘과학과 종교’ 논쟁의 최근 풍경〉으로 구성된 ‘레서피’는 진화론의 문턱을 넘는 데 유용한 이론적이고도 현실적인 논의들을 한데 묶었다. 앞서 펼쳐 보인 ‘식탁하기’에 대한 간접 경험을 넘어, 직접 메뉴를 정하고 식탁을 차리는 데 힘이 될 일종의 심화텍스트라고 보면 되겠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을 이끄는 21세기 지성의 입구, 진화론!
상상불허, 흥미만점의 가상 논쟁으로 진화론이 한층 더 맛있어진다!

2002년 5월 20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뉴칼리지 예배당. 급작스레 사망한 20세기 최고의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넋을 기리는 이곳에 ‘그들’이 왔다. 리차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를 비롯해, 리차드 르원틴과 에드워드 윌슨, 스티븐 핑커, 닐 엘드리지, 대니얼 데닛, 수잔 오야마, 킴 스티렐니, 션 캐럴, 데이비드 윌슨, 그리고 노엄 촘스키까지 한자리에 모인 것! 이 꿈의 진풍경은 오래지 않아 BBC가 엿새 동안 온 세계에 생중계하는 세기의 대토론으로 진화하기에 이르는데…. 다윈의 식탁을 놓고서 벌어지는 21세기 진화 논쟁과 논쟁의 진화, 그 역사적인 현장에 가다! 이 현장에 서기로 동석하게 된 장대익, 그가 입체적으로 전하는 식탁의 풍경!


첫째 날 | 자연선택의 힘 | 강간도 적응인가?
굴드팀 코인, 굴드, 르원틴, 촘스키 도킨스팀 코스미디스, 핑커, 도킨스, 윌슨

요는 이것이다. 어떤 능력이나 행동의 적응성 여부는 그것의 옳고 그름 여부와 별개라는 것. 같은 적응이라도, 언어 능력은 좋지만 강간은 나쁜 행동이다. 자연은 윤리적 기준을 갖고 선택하진 않는다. 자연은 일부 페미니스트의 주장처럼 여성 편도, 그렇다고 남성 편도 아니다.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
하여간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진화심리학이 승승장구하다가 쏜힐에게 발목이 잡혔다. 그렇다고 진보적인 진화심리학의 연구 프로그램이 갑자기 퇴행적이 되지는 않을 터. 이 프로그램은 여전히 새로운 예측들을 산출하고 있고 일부를 입증해가고 있다.《강간의 자연사》는 잘 나가고 있는 연구 프로그램에 옴팡 묻어가려는 시도였지만 오히려 진화심리학 프로그램에 큰 부담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탄탄한 동물행동학자라고 해서 꼭 좋은 진화심리학자가 되는 것은 아님도 잘 드러냈다.
더욱이 같은 캠프에 있다고 해서 무딘 검증의 칼날을 들이대는 게 과학자 공동체에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지도 보여줬다. 이중잣대는 언제나 문제다! 핑커와 코스미디스는 쏜힐의 연구를 극찬한 데 대해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윌슨의 갑작스런 사과는 감동적이기까지하다. 나이를 괜히 먹은 게 아닌가 보다.(45~46쪽)


둘째 날 | 협동의 진화 | 이기적 유전자로 테레사 수녀를 설명할 수 있나?
굴드팀 굴드, 데이빗 윌슨, 소버 도킨스팀 윌리엄즈, 도킨스, 트리버즈

다수준 선택론은 ‵굴러온 돌‵이지만 너무 자신만만하다.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며 ‵박힌 돌‵을 아예 뽑으려 한다. 그리고 마치 오늘이 혁명 전야인 양 떠든다. … 하지만 나는 다수준 선택론이 다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를 잡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40억년 생명의 진화 역사에서 가장 분명하게 벌어진 일대 사건들, 다시 말해 ‘상위 수준의 생성’에 관한 물음이다. 생명은 어쨌건 최초의 복제자에서 시작하여 DNA를 만들었고 그것이 모여 한 수준 위의 단세포를 만들었으며 그 위에 다세포를 만들었다. 즉, 주요 전환 사건들은 모두 새로운 상위 수준이 생기는 사건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전환 과정에서 협동의 진화 문제가 발생한다. 단세포는 왜 다른 세포들과 협동하여 더 큰 다세포 개체를 만들었을까? 이 과정에서 단세포는 틀림없이 배신의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물론 완벽하지는 못했다. 오늘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암을 보라. 다른 세포들과 협력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복제하겠다는 배신자 아니겠는가? 다수준 선택론은 이렇게 통시적인diachronic 관점에서 생명 진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81~82쪽)


셋째 날 | 유전자, 환경, 그리고 발생 | 유전자에 관한 진실을 찾아서
굴드팀 굴드, 르원틴, 오야마 도킨스팀 도킨스, 키처, 캐럴

유전자 결정론은 유전자를 ‵청사진blue print‵에 빗댄다. 하지만 유전자는 표현형을 결정하지 못한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현형을 산출할 뿐이다. 유전자 결정론을 거부하는 이유가, 그것이 이념적으로 나쁘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거부해야 한다.
유전자가 발생 과정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그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흥미로운 비유가 있다. 유전자를 청사진이 아닌 ‵요리법recipe‵에 빗대는 방식이다. 요리사는 요리법대로 음식을 만들기는 하지만 어떤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조합하는가에 따라서 똑같은 요리법에도 아주 다른 맛을 내는 음식을 내놓을 수 있다. 유전자를 이런 요리법에 빗대는 것은, 유전자가 기본적으로 발생 과정을 지시하기는 하지만 주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느냐에 따라서 최종 산물이 결정된다는 식의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요리법 비유는 오늘 나온 오케스트라 비유와 일맥상통한다. 유전자가 지휘자이긴 하지만, 단원들의 실력에 따라 연주하는 음악의 질은 달라진다고 할 수 있으니까.(115~116쪽)


넷째 날 | 진화 속도와 양상 | 진화는 1백미터 경주인가, 넓이뛰기인가?
굴드팀 굴드, 엘드리지, 길버트 도킨스팀 도킨스, 데닛, 마이어

길버트가 제기한, 근대적 종합의 위상에 대한 논쟁에서 도킨스 팀의 대응은 다소 방어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도킨스 팀의 구성원들이 근대적 종합에 너무 큰 무게를 두는 것 같아 아쉽다. 과학에서 완벽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진화론도 진화한다는 것이 뭐 그리 나쁜 소식인가? 둘째 날에도 느낀 것이지만 발생학에 대한 홀대는 도킨스에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도킨스 편에서는 이보디보에 대해 빨리 정리된 입장을 만들어야 할 듯하다.
오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진화론 역사의 산증인인 백세 노인의 마이어가 자신보다 반세기나 적게 산 발생학자 길버트에게 집요하게 추궁당하는 장면이다. 이게 바로 과학이다. 과학에는 종교에서 있는 신이나 경전 같은 것이 없다. 단지 영웅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영웅도 새로운 이론의 발전 앞에서 스러지고 만다.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오, 뉴턴도 그렇게 스러져갔다. 100년 후에 다윈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150~151쪽)


다섯째 날 | 진화와 진보 | 박테리아에서 아인슈타인까지
굴드팀 굴드, 맥셰이, 라우프 도킨스팀 도킨스, 메이너드 스미스, 서트머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도킨스는 과학주의scientism를 신봉하고 굴드는 사회구성주의를 따른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 사회구성주의와 과학주의는 과학에 대한 양 극단의 입장이다. 과학에 대한 이런 근본적 견해 차이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둘 간의 모든 불일치가 혹시 이런 차이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
나는 오늘 토론을 보면서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킨스도 과학의 시대성과 한계를 인정한다. 다만 인류의 그 어떤 다른 지적 활동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학의 인식적 지위가 더 우월하다는 정도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진리에 대해 과학의 비교우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도를 과학주의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한편 굴드도 과학의 진리성을 부인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과학에 사회적 요인들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라기보다는 개입하기 쉬우니 주의를 기울이자는 정도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두 사람을 모두 부드럽게 해석하면 화해의 길도 열리지 않을까? (183~184쪽)


여섯째 날 | 휴식 | 진화론의 나무 아래서

닷새 동안 달려온 토론이 그만큼 숨가빴기 때문일까. 비록 하루 쉰다고 하지만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있을까 싶다. 그렇다. 무슨 일이든 쉼표를 찍는 게 중요하다. 날숨도 쉬어야 들숨도 쉴 수가 있듯, 아무리 좋은 영양식도 단숨에 해치우려다간 되려 체하고 말 뿐.
밍기적거리다 BBC 홈페이지의 시청후기 게시판에 들어가봤다. 쟁점들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다윈의 식탁에 초대받은 진화학자들의 지적 계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나 표가 있으면 좋겠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흐음, 읽고 보니 일종의 지도처럼 하나 만들어 두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업데이트는 두고두고 해야 하더라도 말이다. 다윈이 그렸던 ‵생명의 나무‵를 모티브 삼아, 진화론의 나무 혹은 진화론의 계보를 그려봤다.
얼추 그려놓고 보니, 각각의 입장들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지금 내가 이 든든한 아름드리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글쎄, 마냥 쉬고만 있을 수야 없겠지. 그래서도 안 될 테고.(186쪽)


마지막 날-공개강연 | 진화와 종교 | 다윈의 진정한 후예는?
도킨스 종교는 왜 정신 바이러스인가? 굴드 다윈의 진화론은 왜 불완전한가?

도킨스 냉엄한 철학과의 단순한 접촉으로는/ 모든 매력적인 것들이 날아가지 않는다고?/ 한때 하늘에는 장엄한 무지개가 떠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의 요소와 구성을 안다. 그리하여/ 무지개는 지루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철학은 천사의 날개를 묶어버리고,/ 규칙과 정렬로 모든 신비를 정복하며,/ 귀신이 나오는 분위기와 땅 신령의 보고(寶庫)를 없애고,/ 무지개의 비밀을 푼다.(존 키이츠, \'레미아\', 1820)

갑자기 웬 시 낭송인가?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었던 키이츠의 \'레미아\'라는 장편시에 나오는 싯귀입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철학\'은 과학을 지칭합니다. 과학적 발견들로 인해 자연과 인생의 의미가 점점 축소돼간다는 염려가 담긴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키이츠는 뉴턴이 \"무지개를 프리즘 색으로 축소시킴으로써 무지개에 관한 시를 모두 파괴해 버렸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시에서 따온《무지개의 신비를 풀며》(1998)라는 제목으로 정반대의 메시지가 담긴 책을 몇 해 전에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학적 발견이 많아질수록 자연과 인생의 신비, 가치가 점점 퇴색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자연에 대한 비밀이 하나 풀리면 그 해답은 또 다른 비밀을 낳곤 하죠. 그렇기에 해답은 문제만큼이나 경이롭습니다. 저는 종교를 퇴치해야 할 바이러스라고 보며 그것에서 그 어떠한 경이감도 느낄 수 없습니다만, 오히려 과학을 통해서는 인생과 자연에 대한 경이감을 충만히 느낍니다. 신약성서를 보면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이 개안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저는 진화론을 통해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진화론은 신의 존재와 종교의 가치를 부정하지만 인생과 자연에 새로운 종류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모두 웃음)

굴드 어쨌든 과학과 종교에 대해서는 종합 토론 시간에 도킨스 교수와 토론을 벌이면 좋겠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몇 달 전에 제 생애에 가장 두꺼운 책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진화론의 구조》(2002)라는 제목이 붙은 책인데 무려 1433페이지나 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주책을 좀 부린 셈이죠. 이 책을 내 준 하버드대학 출판부가 저 때문에 큰 타격을 입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모두 웃음)

무겁다는 듯이 두 손으로 책을 들어올려 보이는 굴드의 모습이 익살스럽다.

저는 이 책에서 다윈 진화론의 핵심을 정리하고 그 진화론이 왜 불완전하며 어떻게 하면 더 완전해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전통적인 다윈주의가 세 가지 토대 위에 세워졌다고 봅니다. … 불행한 일이지만, 20세기 초반에 헤게모니를 쥐게 된 \'근대적 종합\'이 일어난 이후에 다윈주의의 이 세 가지 토대는 의심없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죠. 특히 방금 전에 강연해주신 도킨스 교수의 탁월한 언변에 힘입어 근대적 종합은 좀 더 단단해진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연선택이 유전자 수준에서만 작용하고 진화적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며 그런 변화가 누적되어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진화해왔다는 견해는 명백히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견해는 한마디로 \'울트라 슈퍼 다윈주의\'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만일 다윈이 부활해서 도킨스 교수를 만나게 된다면 틀림없이“내가 바로 찰스 다윈인데 댁은 누굴 찾으시는지…”라고 의아해 할 겁니다. 근대적 종합 이후의 진화론은 너무 협소하게 흘러갔어요.

추천의 말

논쟁은 과학이라는 블랙박스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다. 장대익 교수의《다윈의 식탁》에서는 적응, 협동, 진보, 종교 등 현대 진화론과 관련된 여러 첨예한 문제를 둘러싼 가상 논쟁이 한창 진행중이다. 굴드, 데넷, 도킨스, 핑커, 르원틴 같은 쟁쟁한 논객들이 진검승부를 벌이고자 포도주로 입을 축이고 있는 이곳에 여러분도 초대를 받았다니, 신나지 않는가. 이 논쟁을 구경하다 보면 현대 진화론에 대한 여러분들의 이해가 10년은 더 성숙해 졌음을 느낄 것이다.
홍성욱_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


최근 두드러지는 진화론과 인지과학의 만남은 인간의 본성, 뇌, 종교와 같은 주제들에 대한 기존 생각의 틀을 바꾸고 있다.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학자들의 생생한 토론을 따라 생각하는 것만큼, 그런 주제에 대한 이해와 분석적 사고력을 키우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러기에 이 책은 더 없이 안성맞춤이다.

이정모_성균관대 심리학과, 인지과학 협동과정 교수


책쓴이 장대익
‘다윈’이나 ‘진화’는, 대전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KAIST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할 때만 해도 정말 먼 나라 얘기였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공부하는 동안 진화론의 우아함에 매료돼 비로소 학문의 새로운 줄기를 잡았다. 인간 본성을 화두로 삼아 서울대 행동생태연구실에서 인간팀을 이끌었고, 영국 런던정경대학의 과학철학센터와 다윈세미나에서 생물철학과 진화심리학을 공부했다. 영장류학에도 푹 빠져 일본 교토대학 영장류연구소에서 침팬지의 인지와 행동을 공부하기도 했다. 융합생물학의 사례로 최근에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이보디보Evo-Devo의 역사와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에는 미국 터프츠대학 인지연구소의 진화철학자 대니얼 데닛 교수의 날개 밑에서 마음의 구조와 진화를 공부했다.
지식의 소통에도 관심이 많아 국내의 젊은 학자들이 참여한〈지식인마을 시리즈〉를 기획했으며, 그 중《진화론도 진화한다: 다윈&페일리》와《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쿤&포퍼》는 직접 쓰기도 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화두로 등장한《통섭》의 공역자이기도 하지만, 통섭은 구호가 아니라 생활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현재는 동덕여자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자연과 인문의 공생을 가르치고 있다.


이 책에 관한 좀더 자세한 문의는 편집부 인문팀(담당자 박동범, 02-3668-3209)으로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