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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삼국지

2004.11.22조회:3557

장정일 삼국지
글 장정일 / 총 10권 / 각권 값 8,900원


원전번역의 한계를 넘어 날카로운 역사의식과
소설적 재미로 무장한 우리시대의 진짜 삼국지!
5년간의 연구와 집필, 300여 권의 문헌과 고증자료!


뚜렷하고 거침없는 문학적 표현과 주제의식으로 주목을 받아온 소설가 장정일이 오랜 침묵을 깨고 굳게 닫힌 『삼국지』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다. 5년 전 『삼국지』를 완성하기 위해 기나긴 칩거생활에 들어간 그는 일체의 원고 작업을 중단한 채 300여 권의 『삼국지』 관련문헌과 고증자료를 섭렵하며 『삼국지』 연구와 집필에 온힘을 기울였다.
『삼국지』의 새로운 판도변화를 예고하는 이번 작품은 기존 『삼국지』과는 사뭇 다르다. 기존 『삼국지』들이 나관중본, 모종강본의 저본을 운운하는 번역판본인데 반해, 『장정일 삼국지』는 우리나라 작가가 시대에 맞는 역사관과 세계관으로 그동안의 번역본들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어 새롭게 완성한 우리 판본, ‘장정일판’ 삼국지이다. 저자의 이러한 의식은 본문에 삽입된 152컷의 삽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국 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빌려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색다른 해석과 철저한 역사고증을 통해 ‘우리’ 작가가 우리 그림으로 새롭게 형상화하였다.
10권의 책과 더불어 출간된 부록 『인물로 읽는 장정일 삼국지』 또한 저자의 역사해석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읽을거리다. <인물사전>에서는 『장정일 삼국지』만의 인물해석 방식으로 『삼국지』의 모든 인물들을 총집합시켰다. 기왕의 모든 인물 소개가 영웅 중심이었던 데 반해, 이번 『장정일 삼국지』에서는 영웅 뒤에 가려져 있던 역사 속·소설 속의 작은 인물들까지 모두 복원시켰다. 또한 <삼국지 인물로 보는 인물유형>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고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성격유형지표, MBTI 방식을 통해 조조·유비·제갈량·관우·여포 등 『삼국지』 주요 인물들을 분석한 것으로, 『장정일 삼국지』 못지않은 재미를 안겨준다.
수없이 『삼국지』가 출간되어 왔지만 처음으로 시도되는 우리 작가, 우리 그림으로 완성한 우리판본의 <삼국지> 출간으로, 600여 년을 지배해온 중화주의와 근왕주의 등의 편향된 역사의식이 사라진 ‘제대로 된’ 『삼국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왜 『장정일 삼국지』인가?

1. 원전 중심의 단순 번역이 아닌, 역사를 해석한 새로운 판본
소설가 장정일이 탈식민주의와 문화 주체성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 “『삼국지』도 이제 우리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삼국지』의 판본을 새로 만든다는 각오로 춘추사관과 춘추필법,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를 배제한 ‘우리 삼국지’를 완성했다.
『장정일 삼국지』는 기왕에 되풀이되던 중국 『삼국지』의 단순 번역이 아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삼국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으로 번역되고 읽히고 있는 『나관중본』『모종강본』은 사실 현재 중국에서 읽히고 있는 숱한 판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는 믿음 자체가 허구인 것이다. 정사에 의하면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비롯해 초선(貂蟬)의 미인계니 적벽(赤碧)에서의 연환계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그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 일화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해석도 무수히 존재한다. 따라서 뒤틀린 원판을 놓고서 번역의 정확성을 아무리 따져본들, 생산적인 의제는 생겨나지 않는다. 원말(元末)·명초(明初)에 편찬된 『나관중본』과 청대(淸代)에 편찬된 『모종강본』은 각기 그 시대의 가치와 역사관만을 고스란히 반영할 뿐이다. 그 결과 단순 번역을 한 나관중·모종강 『삼국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역사적 왜곡과 오늘날 거의 설득력을 잃은 편향적인 해석으로 가득 차 있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삼국지』를 번역한 한학자와 작가들은 새 번역본을 낼 때마다 ‘그게 아니라면 세대와 시대에 맞는 『삼국지』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작가 장정일은 이제는 더 이상 번역이 아니고, 새로운 판본(板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라면 잘못 번역된 토씨 하나까지 발본색원하여 되풀이 번역되어야 하겠지만, 원래부터 저자가 없었던 연의(演義) 『삼국지』는 언제나 새로운 저자를 구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2. 중화주의와 춘추사관을 벗어난 객관적인 역사 해석, 민중과 변방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
춘추필법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선인(청류, 유학을 배운 사대부)과 악인(탁류, 환관과 외척)으로 정형화하고 이분화함으로써 인간 내면에서 모순되게 약동하는 욕망을 바로 읽지 못하게 한다. 또한 당대의 왕권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던 이러한 세계관으로 인해 소중하게 해석되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번번이 잘못 기술되고 있다. 이러한 춘추사관과 춘추필법이 중국 내부가 아닌 중화주의로 발현될 때는 한족이 청류가 되고 이민족은 탁류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중국 패권주의가 도래할지도 모르는 21세기에 중화주의로 점철된 『삼국지』를 아무 비판 의식 없이 번역하고 탐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저자 장정일은 “『삼국지』가 한족에 의한 한족을 위한 한족의 선전물 또는 강령일 수도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나관중과 모종강이 구축해 놓은 화이론(華夷論)적 차별을 주의 깊게 해체한다. 한 왕실에 대한 불충과 무단(武斷) 행위가 절대 동탁이나 여포만의 전매특허가 아니건만 그 두 사람이 동급(同級)의 여타 주인공들에 비해 턱없이 의리 없고 예절 모르는 야수로 묘사되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정통 한족이기보다는 변방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옹유반조(擁劉反曹) 시각의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은 한족 중심의 왕조를 미화해야 했던 그 시대 그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분적인 선악론에 불과하다. 『장정일 삼국지』는 옹유반조를 편들지 않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한나라 멸망의 전조였던 황건적의 난을 황건농민군의 봉기로 해석한다. 장정일은 자신의 『삼국지』가 시도하는 역사해석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황건군을 황건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교이념이 득세했던 시절의 체제지배적 해석에 불과하다. 황건군을 황건적이라고 부르는 선민적(選民的) 역사관으로는, 삼국시대를 살았던 당대 민중의 염원은 물론이고 현재의 중화민국 건국에 관한 진실마저 파악할 수 없다. 중국 역대 왕조는 항상 농민혁명으로 붕괴되었으며, 때문에 오늘날의 중국 정부는 황건난을 ‘황건기의(黃巾起義:의로운 봉기)로 높여 부르고 있다. 인간사(人間事)의 현상과 본질을 가려 바른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 나관중·모종강은 유비를 그야말로 더러운 티끌이 하나도 묻지 않은 고매한 충의지사로 만들기 위해, 한때 유비와 황건군이 합작했던 역사적 사실을 어물쩍 넘어간다. 성리학적 시각에 입각한 나관중·모종강은 ‘아무리 어려워도 어떻게 도적들과 연합을 할 수 있는가?’라는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건군을 도적으로 보지 않는 장정일의 『삼국지』는 나관중·모종강이 어물쩍 넘어간 그 사실을 당당히 드러내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3. 주변민족과 민초들의 생활사와 복식사를 역사적으로 고증·복원한 153컷의 삽화
중화주의와 춘추사관을 지양하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는, 많은 『삼국지』들이 중국 그림을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작가가 그려넣은 총 153컷에 이르는 본문 삽화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삽화는 최근 ‘날카로운 역사의식과 올곧은 시선을 지닌 역사만담꾼’, ‘젊은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예’라는 평을 들으며 언론의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김태권 화백의 작품이다. 착한 유비, 음탕하고 광포한 동탁, 힘만 세고 무식한 여포, 기회주의자 가후, 야만스러운 맹획 등 실제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을 새롭게 형상화시킴으로써 『장정일 삼국지』가 제시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잘 살려내고 있다. 또한 수백 권에 이르는 각종 문헌과 고증자료를 통해 한나라 말기와 삼국지 시대의 복식과 생활문화, 특히 나관중·모종강 『삼국지』에서 가려져 있던 주변민족들과 민초들의 생활사를 고증, 복원하여 당시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우리 작가에 의해 시도된 최초의 『한국판 삼국지』 판본이라는 사실에 걸맞은 최고의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4. 한글세대의 감각에 맞는 속도감 있는 문체, 빠른 사건전개와 재미, 현실적인 묘사
『장정일 삼국지』는 “~사옵니다”“하노라” 등의 고어체 어미를 지양하고 간결한 어투의 사용, 모든 연도 앞에 ‘서기’ 표기 등 젊은 한글세대 독자들의 현대적 감각에 맞는 ‘젊은 삼국지’이다. 저자는 젊은 독자들을 위해 속도감 있는 문체를 사용하고, 빠른 사건전개와 호흡으로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또한 나관중·모종강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묘사와 황당무계한 사건들을 배제하고자 했다. 기본적으로 『삼국지』는 군담역사소설의 형식에다가 중국의 민중들이 좋아하는 지괴담(귀신과 도사 이야기)이 많이 섞여 있다. 좌자, 우길, 관로 등의 술사들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관우가 죽고 난 다음 관우의 혼령이 불쑥불쑥 출몰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장정일은 독자의 흥미를 끄는 지괴담을 고스란히 보존하면서도 과학적인 해석이나 꿈으로 치환하여 소설적 리얼리티와 흥미라는 두 요소를 양립할 수 있게 했다. 국내외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모험적이고 혁명적인 발상으로 새롭게 창작된 『장정일 삼국지』는 역사소설의 재미와 속도감, 한국적 『삼국지』가 제시해야 할 역사의식의 문제까지 심도 있게 다룬 최초의 『한국판 삼국지』라고 할 수 있다.


5. 단순한 무협의 세계를 넘어 인간 심리 드라마로
『삼국지』는 인과성과 사실성이 결여된 ‘이야기’의 세계다. 때문에 제갈량의 동남풍과 같은 ‘전설 따라 삼천리’식의 일화가 심심찮게 출몰한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를 읽다 보면 어떤 인물은 괜찮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이 희화화되거나 사소하게 지나쳐 가고, 반대로 어떤 인물은 겉과 속이 다른 무능력자인데도 영웅시되거나 중시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앞서 말했던 춘추필법이 『삼국지』를 좌우했기 때문이다.
『장정일 삼국지』는 제갈량의 동남풍과 같은 전설의 세계와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 춘추필법의 원리를 바탕으로 조탁된 여러 인물들의 메마른 전형성을 벗어나기 위해, 인과성과 사실성이 중시되는 새로운 ‘소설’의 세계를 천작한다. 그래서 『장정일 삼국지』에서는 귀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제갈량도, 인의의 화신인 유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겉으로는 인의(仁義)·구국(救國)·창신(創新)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권력과 허명(虛名)을 &#51922;은 당대의 야심가들에 불과했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인의의 화신인 유비와 귀신과 같은 재주를 지녔던 제갈량을 잃은 대신, 독자들은 인간의 피가 도는 주인공들과 조우할 수 있게 됐다”라고 단언한다.
『장정일 삼국지』는 영웅적 능력이나 이분법적 전형성에서 벗어나 인간 심리를 깊이 탐구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전쟁무협소설(군담역사소설)에 불과했던 『삼국지』에 새로운 빛을 비춰준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한번 칼을 빼들면 수천 명의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왕이 결심만 하면 하루아침에 수십만의 병사가 거병을 하는 『삼국지』의 세계에 현대 소설이 중시하는 인과성과 사실성을 부여함으로써, 단순한 무협의 세계를 인간 심리의 드라마로 읽도록 유도한다.


6. 춘추필법을 극복하기 위해 본문의 시(詩)를 새로 쓰다
원래의 『삼국지』에는 많은 시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장정일 삼국지』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자가 직접 쓰거나 상황에 맞게 새로 인용한 시들로 원시를 대체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삼국지』의 문제는 바로 『삼국지』에 들어 가 있는 시”였기 때문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200여 수의 시들은 『삼국지』의 편찬자인 나관중이 삼국시대 이후 촉한정통론을 예찬하는 문인들의 시를 찾아 넣은 것들로, 『삼국지』 속의 시는 춘추필법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삼국지』에 삽입된 원시들에 의하면 유비(촉)는 언제나 찬양되고 그 외의 모든 제후장상들은 폄하되거나 조롱받는다. 유비· 관우· 장비와 같은 영웅들의 삶과 죽음만 미화되고 민중들의 고통과 애환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정일 삼국지』는 춘추필법과 화이론의 정수인 원시를 채택하는 대신 정일의 새로운 시들을 첨가함으로써 보편적인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내밀한 심리를 묘사하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어 조조군이 하비성을 포위한 채 잔치를 벌이면서, 성을 지키고 있는 관우 병사들을 투항시키기 위해 부르는 노래와 그 노래를 들은 하비성의 관우 병사들이 부르는 답가는 나관중·모종강본 『삼국지』에 수두룩하게 인용·삽입된 사대부 문인계층의 시들과 달리 훨씬 소박하면서도 사실적이어서 독자의 감정이입을 쉽게 도와준다(가사만 인용함).

조조군의 노래: 에헤헤 헤이 헤
내 고향은 하동河東 안읍安邑이고요
옆집에는 버들강아지 같은 처녀가 살았는데요
별도 달도 잠들어버린 그날 밤 흠흠흠.
어느덧 초생달이 반달이 되고
반달은 커져서 보름달이 될 때
나는 겁이 나서 출행랑을 쳤는데요
이제 내가 장군이 되어 돌아가더라도
장모님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오.

관우 병사들의 답가:우리 장모님이 말씀하시길
좋은 쇠는 못이 되지 않고
좋은 사람은 군인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어쩌자고 나는 군인이 되어
마눌님보다 더 무서운 전쟁터를 헤매나
에헤이 헤이 헤
너무 오래되어 내 고향 계양桂陽을
내 못 찾아 가겠네.
‘장모’로 끝나는 조조군의 노래를, ‘장모’로 시작하는 또 다른 노래로 받는 관우 병사들을 통해 장정일은 비록 편을 나누어 싸우고 있지만, 군역을 나온 백성들의 고단함과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병사 일반의 소망을 말하고 있다.


7. 이름과 자(字) 등 호칭을 통한 주인공들의 내면 읽기
중국의 예절에 의하면 높은 어른이나 선배 또는 동배(同輩)와 말할 때는 상대방의 자를 불러 경의를 표한 반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랫사람이나 관직이 낮은 사람은 바로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나관중이나 모종강의 『삼국지』는 유비가 등장할 때부터 시종일관 현덕이란 자로 부르며, 관우 역시 적장에 의해 꼬박꼬박 관운장으로 높여 부른다. 대신 조조나 손권은 한 번도 그 지위에 걸맞은 호칭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원 텍스트가 옹유반조의 춘추사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런 무원칙은 춘추필법을 굳이 문제 삼지 않더라도, ‘님’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붙이면서 욕을 해대는 우스운 광경을 수도 없이 연출한다. “유비, 이놈이 나를 애먹이는구나!”는 그럴 듯해도 “현덕, 이놈이 나를 애먹이는구나!”는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 『장정일 삼국지』는 조조나 손권, 유비가 모두 대등하게 불리는 것으로 춘추사관의 묵은 때를 벗기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이름과 자를 혼용해 쓰는 것으로 주인공들의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제갈량 최대의 적수였던 사마의는 제갈량의 죽음을 전후로 다음과 같이 이름과 자를 번갈아 쓴다.

ⅰ) “장성(將星) 하나가 빛을 잃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제갈량이 중환에 걸려 죽을 징조다.”
ⅱ) “공명이 죽은 것이 분명하구나!”
ⅲ) “제갈량이 살아 있구나! 내가 또다시 그의 계책에 빠졌다!”

이름과 자를 번갈아 쓴 위의 예문은 차례대로 제갈량에 대한 ‘적의’, 망자에 대한 ‘예의’, 그리고 속은 것에 대한 ‘분함’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장정일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어떻게 부르는가에 따라 등장인물이 처한 권력의 크기와 외교적 정황은 물론 심리상태까지 미묘하게 잡아낼 수 있다.


8. 한족만이 아닌 동아시아의 역사소설로 복원
『삼국지』는 한족이 중심이 된 위·촉·오의 쟁투를 그리고 있으나 실제로 삼국시대는 삼국만의 시대가 아니라 숱한 제후들이 각축하던 시대였고, 한족만이 아니라 오늘날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불리는 숱한 민족이 총동원되어 전쟁을 벌이던 시기다. 하지만 나관중과 모종강은 될수록 비(非)한족을 『삼국지』의 무대에 올리길 꺼려했고 설사 등장한다 하더라도 한족에 의해 정복되고 감화받는 열등한 미개인으로 묘사한다.
『장정일 삼국지』는 한족 중심의 화이론(華夷論)을 벗어나 모든 소수민족의 자리를 찾아 주려고 노력했다. 그 일례로 중국 역사에는 공손연이 연나라를 세우고 위나라에 대적했을 때(서기 237년) 위의 황제인 조예가 고구려 동천왕에게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나와 있으나 소설 『삼국지』에는 누락되어 있다. 『장정일 삼국지』는 그 누락의 역사를 복원함으로써 『삼국지』를 한족만의 역사소설이 아닌 동아시아의 역사소설로 복원시켰다.


9. 남성적 기만의 세계를 통째로 거부하는 평등 『삼국지』
『삼국지』는 여성 독자가 전무하다. 그 이유는 『삼국지』가 충군(忠君)과 가부장적인 질서로 무장된 철저한 남성 서사(군담소설)이기 때문이다. 그 틈서리에 끼어 있는 극소수의 여자 주인공들은 충군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보조·강화해주는 구실을 할 때에만 등장한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미인계의 미끼가 되기를 수락하는 초선, 유비 진영에 있다가 조조에게 귀순한 아들의 아둔함을 꾸짖으며 대들보에 목을 매어 죽은 서서의 어머니, 중상을 입은 채 유비의 어린 아들 아두를 안고 조조군의 추격을 받던 중 조운을 만나 아이를 건네주고 자신은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우물에 몸을 던져 죽은 유비의 둘째 부인, 손권의 여동생으로 유비와 정략결혼을 했다가 결국 파혼하고 본국으로 돌아온 손부인 등등. 이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거의 여성잔혹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삼국지』의 여성잔혹 결정판은 “형제는 수족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며 네 차례나 부인을 팽개치고 도망 다닌 유비의 소행이나, 여포에게 쫓겨 산길을 헤매던 배고픈 유비에게 아내를 잡아(?) 화로에 구워주었던 어느 사냥꾼의 엽기 행각 가운데 어느 하나일 것이다. 『장정일 삼국지』는 여성 독자를 막기 위해 남성 편찬자들이 쳐놓은 금줄을 걷어낸다.
조조의 근거지를 빠져나온 관우가 형수(유비의 부인)를 호위해 위험하고 고단한 먼 길을 헤매며 유비를 찾아가는 도중 관우의 명성을 듣고 달려온 황건군의 잔당이 자신들을 휘하에 거두어 주길 원하자, 관우는 단호히 거절한다. 황숙(皇叔)의 군대가 도적 무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황건군 대장과 그 부하들의 애원이 워낙 극진하여 관우는 유비의 첫 번째 부인인 감부인의 수레에 가서 사정을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관중본』과 『모종강본』을 바탕으로 번역본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남편과 황군(皇軍)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없으니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감부인의 대답을 되풀이 한다.
하지만 『장정일 삼국지』 속의 감부인은 수천 년 동안 성실히 수행해 왔던 남성적 수사(修辭)의 앵무새 노릇을 거부하고 “장군님, 예로부터 병비일가(兵匪一家)라고 했으니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장정일 삼국지』는 가녀린 여자의 입에서 나온 ‘군인과 비적은 원래 하나’라는 단 한 마디 말로 남성적 기만의 세계를 통째로 거부한다.


10. 학제적 연구를 종합한 신판 『삼국지』
소설가 장정일은 신판 『삼국지』를 쓰기 위해 삼국시대는 물론 『삼국지』에 대한 모든 문서를 찾아 읽고 연구하는 등 5년의 오랜 자료준비 기간과 연구과정, 집필을 거쳐 그것의 1차적인 결과물이 2003년 3월에 출간되어 『삼국지』 마니아들에게 충격과 환호를 던져준 장정일 공저 『삼국지 해제』(김영사)이다. 장정일은 공부삼아 600여 쪽이 넘는 『삼국지 해제』를 내놓은 뒤로도 새로운 자료가 나오는 대로 그것을 읽고 새 『삼국지』를 쓰는 데 반영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경제·문화에 대한 현대적 이론을 함께 반영함으로써 신판 『삼국지』는 가히 학제적 연구를 종합한 지식과 정보의 창고 역할을 한다. “『장정일 삼국지』는 먼 옛날, 먼 나라에서 온 고전을 단순히 번역한 게 아니라 중국과 중국 역사에 대한 통찰과 해석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경제·외교·군사 문제에 대한 이해를 드높일 수 있게 했다. 신판 『삼국지』는 오늘을 읽는 유용한 자료와 정보의 창고이자 지혜의 창구가 될 것이다”라고 작가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