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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유발 하라리

Chapter 3.민족주의|지구 차원의 문제에는 지구 차원의 해답이 필요하다.

바라건대, 세계 나머지 지역은 유럽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지구가 단결해도 내 나라의 고유성을 축하하고 그것에 대한 내 특별한 의무감을 강조하는 종류의 애국심을 간직할 자리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남고 번영하고 싶다면, 인류는 그런 지역적 충성심을 지구 공동체에 대한 실질적인 의무감으로 보완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은 자기 가족과 이웃, 직업과 국가에 동시에 충성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이 목록에 인류와 지구를 추가하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사실 우리가 다중의 충성심을 품고 있을 때 갈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누가 인생이 단순하다고 말했나? 견뎌내야 한다.

 

민족주의

 

지구 차원의 문제에는 지구 차원의 해답이 필요하다

현재 인류는 전체가 하나의 문명을 이루어 살며 모든 사람이 공통의 도전과 기회를 공유하는데도, 왜 영국인, 미국인, 러시아인,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집단들은 민족주의적 고립으로 돌아설까?

 

민족주의로 회귀하면 우리 지구촌 세계가 직면한 전례 없는 문제의 진정한 해법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은 인류와 전 생태계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현실 도피적 탐닉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널리 퍼져 있는 신화를 떨쳐내야 한다. 상식과는 반대로, 민족주의는 인간 정신의 자연적이고 항구적인 부분이 아니며 인간 생물학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물론 인간이 하나부터 열까지 사회적 동물이며 집단 충성심이 인간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돼 있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호모 사피엔스와 원시 인류 조상들은 수만 년 동안 수십 명 정도의 작고 친밀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 그래서 인간은 부족이나 보병 중대, 가족 기업 같은 소규모 친밀한 집단에는 충성심을 갖기 쉽지만, 수백만 명의 낯선 사람들에게 충성심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집단적 충성심이 등장한 것은 지난 수천 년 동안 — 진화의 시간으로 치면 어제 아침 — 에 불과하며, 그것을 사회에 구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구축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일 부족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도전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수천 년 전 나일강을 따라 살았던 고대 부족들을 보자. 강은 그들의 생명줄이었다. 그것으로 들판에 물을 댔고 교역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강은 예측할 수 없는 동맹이었다. 비가 너무 적게 내리면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너무 많이 내리면 강이 범람하면서 온 마을을 파괴했다. 어떤 부족도 이 문제를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부족들은 저마다 강의 작은 부분만 지배했고, 동원할 수 있는 노동자도 수백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강을 억제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댐을 짓고 수백 킬로미터의 수로를 파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부족들은 점차 하나의 민족으로 합쳤고, 그 힘으로 댐과 수로를 건설하고, 강의 흐름을 조절하고, 흉년에 대비한 곡물 창고를 짓고, 전국에 걸쳐 운송과 연락 체계를 확립할 수 있었다.

 

그런 이점들이 있음에도 부족들과 씨족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민족과 자신을 동일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싶으면 이렇게 자문해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이 사람들을 아는가?”

 

나는 나의 두 누이와 사촌 열한 명의 이름을 댈 수 있고 그들의 인성과 특징, 관계에 대해 온종일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공유하는 800만 국민의 이름은 댈 수가 없다. 대부분 만난 적도 없는 데다 장래에 만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 모호한 무리에 충성심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나의 수렵·채집인 선조의 유산이 아니라 가까운 역사가 낳은 기적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해부학적 구조와 진화에 대해서만 잘 아는 화성의 생물학자라면 이 유인원들이 수백만 이방인들을 잇는 공동의 유대감을 계발할 수 있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나로 하여금 ‘이스라엘’과 800만 거주자들에 대한 충성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시온주의 운동과 이스라엘 국가는 전국적인 안전과 건강, 복지 체계는 물론 교육과 선전, 국기 흔들기 같은 엄청난 기제를 창조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 단위의 유대감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거대한 체계일수록 대중의 충성심 없이는 작동할 수 없고, 인간의 공감 반경을 확장하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보다 온건한 형태의 애국심은인간의 창조물 중에서도 가장 자애로운 것에 속한다. 내 민족은 독특하고, 충성할 가치가 있으며, 나는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대한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믿으면, 남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대신해 희생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민족주의가 없으면 우리 모두가 자유주의 낙원에서 살 거라고 상상하는 것은 위험한 실수다. 오히려 부족의 혼돈 속에서 살 가능성이 높다. 스웨덴과 독일, 스위스 같은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자유주의 국가들은 모두 민족주의 감정도 강하다. 민족적 유대감이 부족한 나라의 목록을 보면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 콩고, 그리고 다른 실패한 국가들 대부분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1945년 모든 것이 변했다. 핵무기가 발명되면서 민족주의 거래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균형은 급격히 기울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 사람들은 민족주의가 단지 전쟁을 일으킬까 걱정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민족주의가 핵전쟁으로 이어질까봐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완전 파괴의 참상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다. 원자폭탄이 적지 않은 도움을 준 덕분에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고, 민족주의라는 램프의 요정 지니는 적어도 절반 정도는 다시 병 속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고대 나일강 하구 주민들이 그들의 충성심을 지방 씨족에서 훨씬 더 큰 왕국으로 옮겨 위험한 강을 억제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핵무기 시대에도 지구촌 공동체는 점차 다양한 민족국가들을 넘어 성장해갔다. 그만 한 공동체만이 핵의 악령을 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족주의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 넘쳐나는 민족주의는 우리가 직면한 다루기 어려운 전 지구적 문제로부터의 도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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