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영사가 기획한 특별한 즐거움.
책과 함께하는 재미가 가득합니다.

21세기를위한21가지제언

<초공간> - 미치오 카쿠

  • 다른회 보기
  • 1
  • 2
  • 3
  • 4

Chapter 4.아직 끝나지 않은 논쟁거리

 

우리처럼 물리학을 믿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별하는 것이 ‘떨쳐버리기 어려운 환상’임을 잘 알고 있다.

_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타임머신 설계도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들은 킵 손의 타임머신이 별로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거실 의자에 편안히 앉아 가고 싶은 시간대를 입력하면 불이 번쩍거리면서 역사에 남은 위대한 전투장면과 문명의 흥망성쇠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다가 아기예수가 누워 있는 마구간 앞에 사뿐히 안착하면 좋겠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다.

 

킵 손의 타임머신은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방에는 두 개의 평행한 금속판이 설치되어 있다. 금속판 사이에는 엄청나게 강한(지금의 기술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전기장이 걸려 있어서 그 안 의 시공간이 찢어지고, 이로부터 두 방 사이의 공간을 연결하는 터널이 형성된다. 둘 중 하나의 방은 로켓과 함께 빛보다 빠른 속도로 가속되고, 두 번째 방은 지상에 남아 있다. 웜홀은 시간대가 각기 다른 두 방을 연결할 수 있으므로, 첫 번째 방의 시계가 두 번째 방의 시계보다 느려도 연결상태는 지속된다. 또한 시간은 웜홀의 양끝에서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으므로, 둘 중 한쪽 끝으로 진입해서 반대쪽 끝으로 나오면 과거나 미래에 도달하게 된다.

 

다른 형태의 타임머신도 가능하다. 특수물질을 금속처럼 가공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원통이다. 여행자가 원통의 중심에 서면 특수물질이 시공간을 구부러뜨려서 여행자의 주변을 에워싸게 만들고, 그곳에 웜홀이 생성되어 다른 시간대의 우주와 연결시켜준다.

 

여행자는 소용돌이처럼 돌아가는 시공간의 중심에서 웜홀로 진입할 때 1g 정도의 중력(지구의 중력)밖에 느끼지 않으며, 이곳을 통과하면 다른 시간대의 우주에 도달하게 된다.

 

수학적인 면만 보면 킵 손의 논리는 흠잡을 곳이 없다.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에는 웜홀해가 분명히 존재하고 웜홀의 양끝은 시간대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으므로, 시간여행은 원리적으로 가능하다. 물론 관건은 웜홀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킵 손과 그의 동료들이 지적한 대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막대한 에너지를 투입하여 특수물질로 만든 웜홀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입자물리학의 기본신조 중 하나는 모든 물체가 양(+)의 에너지를 갖는다는 것이다. 진동하는 분자와 달리는 자동차, 하늘을 나는 새, 포효하며 솟아오르는 로켓 등 모든 만물은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텅 빈 공간, 즉 진공의 에너지는 0이다). 그러나 에너지가 음(-)인 물체(진공보다 에너지가 작은 물체)가 존재한다면, 시간이 원형으로 휘어진 희한한 시공간을 만들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에너지가 양수여야 한다는 간단한 개념을 ‘평균 약에너지 조건(averaged weak energy condition, AWEC)’이라는 난해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킵 손은 그의 논문에서 AWEC가 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시간여행이 가능하려면 에너지가 일시적으로 음 (-)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에너지가 존재하면 ‘밀어내는 중력’을 비롯하여 상식에 위배되는 현상이 이미 관측되었어야 하는데, 천문관측 역사상 그런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킵 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음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기본 아이디어는 양자이론의 결과 중 하나인 ‘카시미르 효과Casimir effect’에 기초한 것이다. 1948년에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헨드릭 카시미르Hendrik Casimir는 “전기적으로 중성인 두 개의 금속판을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도록 세워놓으면 양자적 효과에 의해 서로 잡아당기는 인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고전적으로는 두 금속판이 아무리 가까워도 인력이 작용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금속판 근처(안과 밖)의 공기를 모두 제거하여 진공상태로 만들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에 의해 수조 개의 입자와 반입자들이 생성되었다

 

가 사라지고(이것을 가상입자virtual particle라 한다. 가상입자는 진공 중에서 갑자기 생성되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에 관측이 불가능하지만, 물리법칙에는 위배되지 않는다), 이 입자들이 금속판을 때리면서 일종의 압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두 금속판 사이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우면 안에서 밖으로 때리는 입자보다 밖에서 안으로 때리는 입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두 금속판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다가 결국 들러붙게 된다.

 

카시미르가 이 내용을 논문으로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전하를 띠지 않은 금속판 두 개가 어떻게 들러붙는단 말인가? 그러나 1958년에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스파르 나이M. J. Sparnaay가 실험실에서 이 현상을 발견함으로써 카시미르의 예측은 사실로 판명되었으며, 그때부터 ‘카시미르 효과’로 불리게 된다. 서로 마주보는 한 쌍의 도체금속판을 양쪽 웜홀 입구에 세워놓으면 음에너지가 생성되어 타임머신을 작동시킬 수 있다. 킵 손과 그의 동료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결국은 평균 약에너지 조건이 결코 위배될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웜홀과 시간여행도 불가능해진다. 다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리를 건너려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행동이다.” 킵 손의 타임머신은 아직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채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완벽한 양자중력이론이 완성된다면, 모든 문제는 일거에 해결될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웜홀 입구에서 방출되는 강력한 복사 에너지가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질량-에너지 항에 피드백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웜홀 입구에 변형이 생겨서 영원히 닫혀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킵 손은 복사에너지가 웜홀 입구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초끈이론이 개입된다. 초끈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포함하는 양자이론이므로, 원래의 웜홀이론에 보정을 가할 수 있다. 원리적으로는 AWEC 조건의 타당성과 안정한 웜홀의 존재 가능성(즉, 시간여행의 가능성)도 초끈이론을 통해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호킹은 킵 손의 웜홀에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킵 손보다 훨씬 비현실적인 웜홀을 제안한 장본인이었다. 호킹의 웜홀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라, 우리의 우주와 무한히 많은 평행우주를 연결하는 통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