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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공간> - 미치오 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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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우리는 왜 아직 타임머신을 만들지 못했을까?

 

우리처럼 물리학을 믿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별하는 것이 ‘떨쳐버리기 어려운 환상’임을 잘 알고 있다.

_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타임머신 만들기

 

1988년 6월, 세 사람의 물리학자(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킵 손과 마이클 모리스Michael Morris, 그리고 미시간대학교의 울비 유르체버Ulvi Yurtsever)가 타임머신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전문 물리학자들이 타임머신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놀라운 것은 이들의 논문이 세계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물리학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게재되었다는 점이다. (그 전에도 물리학 주요학술지에 시간여행에 관한 논문이 여러 편 제출되었지만 물리학적 근거가 부족하여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들은 장이론에 입각하여 논리를 전개한 후 자신이 내세운 가정의 문제점을 신중하게 분석해나갔다.

 

학계의 반감을 무마하기 위해 킵 손과 그의 동료들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웜홀을 타임머신으로 이용한다’는 아이디어에 물리적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블랙홀의 중력이 너무 커서 우주선이 그 안으로 진입하기만 하면 산산이 부서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시간여행이 수학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논문의 주제가 타임머신인 이상, 무언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했다.

 

두 번째로 신경써야 할 부분은 ‘웜홀의 안정성’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에서 웜홀에 해당하는 해는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약간의 충격만 가해도 아인슈타인-로젠 다리는 순식간에 붕괴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태운 우주선이 블랙홀 안으로 진입했을 때 웜홀의 입구가 멀쩡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세 번째 문제는 웜홀을 통과하여 반대쪽에 도달하려면 빛보다 빠르게 날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웜홀의 입구는 외부의 충격이 없어도 엄청난 양자적 효과에 의해 스스로 닫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블랙홀의 입구에서 방출되는 강력한 복사에너지는 그곳으로 접근하는 우주선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입구 자체를 막아버린다.

 

다섯째, 웜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르다가 중심에 도달하는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다. 이 광경을 외부에서 바라보면 우주선이 점점 느려지다가 블랙홀의 중심에서 완전히 멈추고, 승무원들도 마치 얼음땡 놀이를 하듯 전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웜홀을 통과하는 데 무한대의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웜홀을 통과하여 지구로 귀환한다 해도, 지구의 시간은 이미 수백만 년, 혹은 수십억 년이 흘렀을 수도 있다.

 

 

이처럼 웜홀해는 수학적으로 별 문제가 없지만 현실에 적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물리학자가 자신의 경력을 걸고 연구할 만 한 주제는 아니었다. 킵 손도 이 논문을 쓰기 전까지는 타임머신을 허무맹랑한 가십거리 쯤으로 생각했으나, 1985년에 칼 세이건Carl Sagan의 부탁을 받고 《콘택트Contact》라는 소설의 초고를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콘택트》는 칼 세이건이 직접 저술한 공상과학소설로서, 지구인이 외계의 지적생명체와 접촉하면서 겪는 일련의 사건을 매우 정교하면서 도 서정적으로 묘사한 걸작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가끔씩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신중하게 고려하다가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금지령에 막혀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빛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없으므로, 기존의 우주선을 타고 다른 별에 도달하려면 수천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칼 세이건은 소설을 쓰면서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지구인과 외계인을 어떻게든 만나게 하고싶은데 현실적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킵 손에게 SOS를 친 것이다.

 

킵 손은 세이건의 부탁을 받고 생전 처음으로 시간여행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칼 세이건을 돕는 일이었으니, 그보다 순수한 동기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리학자들은 천문 관련 현상을 연구할 때 중성자별이나 블랙홀, 빅뱅 등 대상을 구체적으로 선정한 후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을 적용하여 시공간의 곡률을 계산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특정한 질량-에너지 분포에 대하여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면 주변 시공간의 휘어진 정도인 곡률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킵 손과 그의 동료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연구동기 자체가 학술적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상과학소설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었기에, 원인(질량-에너지 분포)이 아닌 결과(시공간의 곡률, 웜홀)를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웜홀을 통한 시간여행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우주선이 블랙홀의 조력(潮力, tidal force) 에 의해 갈가리 찢겨나가지 않아야 하고, 웜홀의 입구가 여행 도중 갑자기 닫히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안정적이어야 하며, 웜홀을 통한 왕복여행이 수백만 년이나 수십억 년이 아닌 단 며칠 만에 완료되어야 한다. 킵 손은 ‘시간여행자는 웜홀에 진입한 후에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편안해야 한다’는 대전제하에, 위의 조건을 만족하는 웜홀이 생성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계산했다.

 

현재의 기술로 불가능하다거나 비용이 지나치게 비싼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들의 관심은 시기가 언제이건 ‘공학적으로 구현 가능한’ 타임머신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킵 손과 그의 동료들은 논문의 도입부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물리학자들은 묻는다. ‘물리학의 법칙은 무엇인가?’ ‘이 법칙은 우주에 대하여 무엇을 예측할 수 있는가?’ 그러나 우리가 본 연구에서 제기한 질문은 이런 것이 아니라 ‘극도로 발달한 문명세계조차도 극복할 수 없는 물리법칙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였다. 이 질문의 답을 생각하다 보면 법칙 자체와 관련하여 몇 가지 흥미로운 후속 질문이 떠오르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웜홀이다.

 

 

극도로 발달한 문명은 우주여행의 수단으로 웜홀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의 연구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이 글의 키워드는 ‘극도로 발달한 문명’이다. 물리법칙으로부터 알수 있는 것은 실용성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즉, 우리는 물리법칙으로부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별할 수 있지만, 실용적인 것과 비실용적인 것을 구별할 수는 없다. 물리법칙의 가능성과 그것을 검증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지구 총생산의 수백 만 배가 넘을 수도 있다. 킵 손과 그의 동료들은 “우주여행에 웜홀을 활용하려면 문명이 무한정으로 발전하여 에너지의 양에 상관없이 모든 실험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했다.

 

그들은 모든 요구조건을 만족하는 해를 의외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해는 블랙홀이 아니었기에, 과도한 중력 때문에 우주선이 찢겨져나갈 걱정도 없었다. 킵 손은 이것을 여타의 횡단 불가능한 웜홀과 구별하기 위해 ‘횡단가능웜홀transversible wormhole’로 명명했다(실제로 칼 세이건의 《콘택트》에는 킵 손의 연구결과가 부분적으로 인용되어 있다). 처음에는 칼 세이건을 돕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연구였지만, 놀랍게도 이들이 발견한 해는 물리학과 대학원 신입생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다. 실제로 킵 손은 칼텍의 1985년도 1학기 일반상대성이론 기말고사에 아무런 설명 없이 자신이 찾은 웜홀해를 제시하고 물리적 특성을 서술하라는 문제를 제출했다(대부분의 학생들이 답을 대충 적어내긴 했으나, 시간여행을 허용한다는 결정적 사실까지 적은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

 

학생들이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다면 킵 손이 제시한 웜홀해에서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간파했을 것이다. 사실 킵 손의 해에 등장하는 웜홀은 아주 평온하여, 마치 상용 여객기를 타고 지나가는 것처럼 편안하게 통과할 수 있다. 여행자의 몸에 가해지는 중력은 지구에서 느끼는 중력과 비슷하다. 게다가 여행 도중에 행여 웜홀 입구가 닫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다. 킵 손의 웜홀은 영원히 열려 있기 때문이다. 킵 손과 마이클 모리스는 웜홀을 횡단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약 200일로 추정했다.

 

외계생명체의 평균수명이 얼마나 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

 

킵 손의 논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우리가 찾은 웜홀해에는 시간여행과 관련된 역설이 나타나지 않는다. 과거로 가서 자기 자신을 죽이는 등 공상과학물의 역설적 시나리오에 익숙한 사람들은 CTC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경로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논문에서 그는 웜홀에 등장하는 CTC가 과거를 바꾸거나 역설을 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를 ‘충족시킨다’는 것을 입증했다.

 

킵 손과 그의 동료들이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에서 발견한 웜홀은 인간이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물론 순수한 이론이긴 하지만, 이들의 논문은 전문 물리학자가 웜홀 여행을 진지하게 연구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되었다.

 

킵 손의 연구결과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왜 아직 타임머신을 만들지 못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극도로 발달한 문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킵 손은 계산의 마지막 단계에서 횡단 가능한 웜홀이 생성되는 데 필요한 물질-에너지의 양을 계산하다가 특이물질이 웜홀의 중심에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이 특이물질은 우리가 아는 물질과 많이 다르지만 기존의 물리법칙을 위배하지 않는다. 미래에 어떤 물리학자에 의해 특이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지만,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면 특이 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극도로 발달한 문명에서는 웜홀을 이용하여 과거로 여행하는 타임머신을 만들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