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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공간> - 미치오 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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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갈 수 있을까?

 

우리처럼 물리학을 믿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별하는 것이 ‘떨쳐버리기 어려운 환상’임을 잘 알고 있다.

_알베르트 아인슈타인

 

 

To Build a Time Machine | 타임머신 만들기

 

시간여행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갈 수 있을까?

또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타임머신》의 주인공처럼 기계장치의 다이얼을 돌려서 서기 802701년으로 뛰어넘거나,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주인공 마이클 J. 폭스Michael J. Fox처럼 플루토늄으로 작동하

는 스포츠카를 타고 과거와 미래를 종횡무진 넘나들 수 있을까?

 

 영화 'Back to the future' 포스터

 

시간여행이 가능해지면 그동안 상상밖에 할 수 없었던 온갖 판타지가 현실로 둔갑한다. 영화 〈페기 수 결혼하다Peggy Sue Got Married〉의 여주인공 캐슬린 터너Kathleen Turner처럼, 누구나 과거로 돌아가 실수를 바로잡고 싶은 ‘비밀스러운 소원’을 갖고 있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그의 대표작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통해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은유적으로 묻고 있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굳이 시를 쓸 필요 없이 삶의 분기점으로 되돌아가서 실수를 만회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있다. 또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날로 돌아가 핵심요인에 영향을 줘서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다.

 

 영화 '슈퍼맨' 이미지

 

영화 〈슈퍼맨 Superman〉의 클라이맥스에서 캘리포니아에 지진이 일어나 도시가 붕괴되고 슈퍼맨이 보는 앞에서 그의 사랑하는 여인 로이스 레인Lois Lane이 수백 톤짜리 바위 밑에 깔린다. 평소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슬픔과 분노를 가누지 못한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하늘 높이 날아올라 지구 주변을 빛보다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한다. 그 바람에 시공간의 구조에 변화가 생겨 시간이 천천히 흐르다가 멈추더니, 어느 순간부터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슈퍼맨의 초광속 비행 덕분에 캘리포니아는 지진 전의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슈퍼맨의 여인도 살아났다. 역시 슈퍼맨은 슈퍼맨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 현실세계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속도가 빠를수록 시간이 느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아무리 슈퍼맨이라 해도 빛보다 빠르게 날 수는 없다(따라서 과거로갈 수도 없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해 속도가 광속에 도달하면 질량이 무한대가 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초광속 비행은 특수상대성 이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영국의 세균학자 불러A. H. R. Buller는 특수상대성이론에 깊은 감명을 받고 다음과 같은 오행시를 발표했다.

 

브라이트라는 젊은 여인이 있었다네,

빛보다 훨씬 빠른 여인이었지,

어느 날 그녀는 여행을 떠나,

상대성의 길을 거쳐,

전날 밤에 돌아왔다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직접 다뤄보지 않은 과학자들은 시간여행을 외계인납치 못지않은 난센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타임머신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빛보다 빠르게 달릴 수도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여행을 부정하던 과학자들도 내막을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특수상대성이론만 보면 시간여행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일반상대성이론까지 고려하면 상황이 급반전된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일반상대성이론이 특수상대성이론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적용범위가 넓은 이론이라는 점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텅 빈 우주공간에서 등속운동을 하는 물체에 한하여 적용되는 반면, 일반상대성이론은 이보다 훨씬 강력하여 엄청나게 무거운 별이나 블랙홀 근처에서 가속운동하는 로켓까지 묘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얻어진 단순한 결론 중 일부는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의 범주 안에서 타임머신의 가능성을 신중하게 타진해본 물리학자들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 누구도 ‘No’라는 확답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간여행 지지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이 특정한 형태의 시간여행을 허용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도 시간을 원형으로 구부리면 엄청난 에너지가 개입되어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시간여행이 가능한 에너지영역에서는 일반상대성이론보다 양자이론이 훨씬 중요하게 부각된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의하면 시공간의 곡률(휘어진 정도)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에너지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실제로 방정식을 풀면 시간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시간을 극단적으로 구부리는 데 필요한 물질-에너지의 양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양이 너무 방대하여 일반상대성이론은 효력을 잃고, 양자이론이 바통을 넘겨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강력 중력장에서 위력을 상실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여행의 가능성에 최종판결을 내릴 수 없다.

 

바로 이 시점에서 초공간이론이 새로운 증인으로 등장한다. 양자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은 10차원 공간에서 하나로 통일되기 때문에, 시간여행의 열쇠는 초공간이론이 쥐고 있는 셈이다. 차원통로와 웜홀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최종판결문의 마지막 장은 초공간이론이 풀가동되었을 때 비로소 쓰일 것이다.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시간여행을 둘러싼 논쟁과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미묘한 역설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인과율의 붕괴

 

한 개인이 과거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상과학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스토리는 표면상으로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타임머신이 상용화되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마치 승용차를 몰듯이 타임머신을 상습적으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길게 말할 것도 없다. 한마디로 혼돈, 그 자체다. 우주의 구조가 갈가리 찢겨 나가고 세상은 엉망진창, 아수라장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와 남의 과거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몰려가고, 개중에는 적의 부모가 후손을 낳기 전에 암살하겠다며 무기를 가져가는 극성맞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각 시대별 인구현황 자료도 완전 무용지물이 된다.

 

시간여행의 가장 큰 부작용은 인과율이 붕괴된다는 것이다. 인과율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진다. 링컨 대통령의 암살을 막겠다며 수천 명의 현대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포드 극장으로 날아가 진을 치고,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촬영하기 위해 수천 명의 시간여행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해변에서 대기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어디 그뿐이겠는가? 역사를 바꾸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또 한 무리의 시간여행자들이역사의 현장에서 먼저 온 시간여행자들과 충돌하여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일지도 모른다.

 

역사에 남은 유명한 전쟁도 난장판이 된다.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5만 명이 채 안 되는 병력으로 다리우스 3세가 이끄는 20만 대군을 격파하여 페르시아를 점령했고, 이 전쟁은 향후 천년 동안 서양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식 무기로 완전무장한 용병 1개 중대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곳으로 파견되었다고 상상해보라. 로켓포 몇 발만 날리면 알렉산더의 병사들은 혼비백산 흩어질 것이고, 지금 독자들은 아랍어로 쓰인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몰론 누군가가 또 그곳으로 날아가서 상황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이처럼 시간여행은 역사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역사책은 결코 완성될 수 없고, 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1860년으로 날아가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장군을 암살한 후, 다시 1930년대의 독일로 날아가 나치당 간부에게 원자폭탄 설계도를 넘겨주면 단 한 사람에 의해 세계사가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칠판을 지우듯이 세계사를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의 과거는 바닷가 모래알처럼 이리저리 휩쓸릴 것이고, ‘역사’라는 개념 자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생각해보라. 누구나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세상에서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타임머신을 신중하게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도 이런 상황은 결코 반갑지 않다. 역사가 무의미해질 뿐만 아니라, 과거나 미래로 진입할 때마다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우주론 학자 스티븐 호킹은 이 상황을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증거로 제시했다. 그는 “인류는 지금까지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므로 시간여행 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