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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인문학> - 개빈 에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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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레드벨벳이 부른 '빨간 맛'은 자유로움일까, 두려움일까?

빨강은 혁명, 생식력, 행운과 보호의 능력, 사악함과 여성의 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왔습니다. 같은 '빨강'인데 굉장히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음을 <컬러 인문학>의 저자 개빈 에번스는 밝힙니다.

 

한때는 귀족의 색이었던 빨강은 가을의 색이자 산타클로스의 색이며, '붉은 행성’으로 불리는 화성의 색이기도 합니다.

 

 

 

*<컬러 인문학> 본문 일부 미리보기

 

 

오늘날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주 서해안 지역에서 어부들은 작업장에서 일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들은 물감을 만드는 중이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지식과 기술에 의지해 골수에서 추출한 지방과 붉은 황토(산화철)를 조개껍질로 만든 단지에 넣고 뼈 주걱으로 조심스럽게 섞어가며 합성 물감 제작에 착수했다.

 

그들이 빨간 물감으로 무엇을 했는지, 몸이나 도구, 무기에 칠했는지 아니면 동굴 벽에 칠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들이 물감을 만든 지가 벌써 10만 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로 풍화가 진행되면서 증거가 사라지고 말았지만 도구 상자와 빨간 물감의 찌꺼기, 그리고 빨간 얼룩이 묻은 구슬이 남아 있어 적어도 그때 이후로 인간은 색을 사용해 스스로를 표현하고 장식하는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표현의 시작

 

똑같은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된, 이보다 훨씬 더 눈길을 끄는 유물은 아마도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상징 예술일 것이다. 유럽에서 이와 견줄 만한 유물이 나오기까지 약 3만 년이 걸렸는데 이곳에선 이미 삼각형과 마름모, 선을 새긴 황토편 두 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물의 연대는 7만 5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에도 우리는 이 판화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이 지역의 다른 해안동굴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당시 이런 상징들이 널리 사용되었으며, 그 용도는 아마도 뭔가를 기록하려는 데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보다 나중에 남아프리카, 나미비아, 유럽, 중동,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일부 지역의 동굴 거주민들이 남긴 벽화들은 노랑과 검정만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빨강을 ‘선택’했다. 빨간 동물, 빨간 손, 빨간 사람들의 이미지가 모두 기록되어 있다.

 

스와질란드의 봄부산맥에서 고고학자들은 4만 년 전 빨간색과 노란색 황토를 채취하던 광산을 발견했다. 이 황토는 몸에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10만 년 전, 현생 인류의 두뇌가 진화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장식하고 자신의 생각을 상징적,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빨강이 모든 문화가 공유했던 최초의 색이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히브리 구전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은 붉은 흙, 즉 토기용 찰흙으로 빚어진다. 아담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뿌리는 ‘빨강’을 의미하며, ‘피’를 뜻하는 ‘dam’이라는 낱말과도 연관되어 있다. 다시 말해 아담A-dam은 ‘피의of blood’라는 뜻이다.

 

 

언뜻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듯 보이지만 남아프리카 블롬보스 동굴에서 출토된 이 붉은 황토편은 연대가 7만 5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인간의 손으로 만든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예를 살펴보자. 최초의 백인 개척민들은 북아메리카에 상륙해 그곳에서 조우한 원주민들을 ‘붉은 인도인Red Indian’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피부색 때문이 아니라 몸과 얼굴을 두껍게 칠하는 데 사용했던 붉은 황토 반죽 때문이었다. 이는 원래 출정용 물감이었지만 여름에 벌레를 쫓거나 겨울에 맨얼굴을 보호하는 용도로도 쓰고, 악귀를 물리치는 데에도 사용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