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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인문학> - 개빈 에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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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올해의 색깔, '보라'에 얽힌 문화 이야기

* <컬러 인문학>의 본문 일부를 미리 봅니다.

 

한때 보라는 왕족의 색이었다.

 

많은 경우 왕족이 아닌 사람은 착용이 금지되었고, 이를 어기면 때로 죽음의 고통이 따르기도 했다. 이는 천연 재료로 생산하려면 값이 무척 비쌌기 때문이며, 그래서 보라 하면 굉장한 부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로마 시대부터 1856년 합성염료가 발명되기까지 보라는 그런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들어 보라가 유행하면서 중산층도 처음으로 이 색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 들어 보라는 한 번 더 인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반문화의 색으로 반항과 사이키 델릭 아트, 양성애와 연관되었다.

 

21세기에 와서 보라는 제2의 여성 색으로 또다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보라는 또 남성 동성애자와도 연관성을 갖게 되었는데, 동성애자 영화감독이자 화가인 데릭 저먼은 이렇게 말했다.

 

 

데릭 저먼 (다음 영화)

남성의 파란색과 여성의 빨간색을 합치면 기묘한 보라색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보라는 장례식 색(앞 페이지 참조)으로 선택되었다. 그 이유는 참회와 애도를 상징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인데, 이런 관습은 오늘날의 타이에서도 계속 이어져 그곳 미망인들은 종종 보라색 옷을 입는다.

 

일본과 라틴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 보라는 죽음과도 연관된다. 이러한 전통은 남편 앨버트 공을 잃

은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영국에서 생겨난 뒤 195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예를 들어 현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가 1952년 사망하자 웨스트엔드 가게 유리창마다 엷은 보라색 속옷이 진열되었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보라는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띠었다. 스페인에서는 음식과 포도주를 지나치게 탐닉하는 사람을 가리켜 ‘보라스럽다to purple’라고 말한다. 영어에서는 딜리 댈리의 노래 가사에서처럼 “보라색 분노가 치밀었다I got that purple rage”는 표현이 있다. 그냥 화는 빨갛지만 분노는 보라색이다. 둘 다 너무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사람들의 얼굴색과 관련이 있다.

일본인, 러시아인, 폴란드인들에게 보라는 시기와 질투와도 관련 있다.

오늘날 보라색은 다른 어떤 색보다도 정신적인 부분과 관계가 깊다.

인터넷에서 ‘보라색의 의미’에 대해 검색해보면 “보라는 파랑의 차분한 안정감과 빨강의 격렬한 에너지를 겸비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흔히 보라는 평화와 헌신, 신비와 마법을 상징하며, 정신을 고양하고, 신경을 차분하게 안정시키며, 신성을 드높이고, 양육 성향과 감수성을 강화하며, 상상력과 창의성을 길러주고, 더 높은 자아와 ‘제3의 눈’과 연관되며, 우주 전체와 조화를 이루도록 도와준다고 알려져 있다.

 

 

보라색 망토를 걸친 유스티아누스 황제. 그가 살았던 6세기에 이 색은 너무 비싸서 왕족만 입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보라는 과연 뭘까? 〈나는 무지개를 노래할 수 있어요〉라는 노래에서 보라는 스펙트럼의 색 중 하나이다. 뉴턴의 빨주노초파남보에서 이 색은 보라violet로 불리며, 목록의 제일 마지막에 위치하고, 또 꽃 이름을 딴 유일한 색이다. 그런가 하면 보라색 합성염료는 원래 담자색mauve으로 불렸다. 색채 전문가들은 이들은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자주색은 좀 더 진하고 불그스름하며, 보라색은 덜 진하고 푸르스름하다. 담자색은 연한 자줏빛이라는 것이다. 물감 상자에서 이 색들은 파랑과 빨강을 섞어 얻을 수 있고 담자색의 경우 흰색을 조금 집어넣으면 된다. 일상 대화에서는 이들을 서로 바꿔 써도 무방할 때가 많다.

이 색이 문화의 한복판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 정확히 언제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1967년 해이트-애시버리 주변과 샌프란시스코를 휩쓸었던 ‘사랑의 여름’ 때가 아니었나 싶다. ‘히피’와 ‘플라워 파워’라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LSD와 환각제를 털어넣고, 축제에서 애시드 록과 얼터너티브 뮤직을 듣고, 베트남전에 반대하고, 기성 패션과 가치, 도덕을 멀리하면서 작가 팀 리어리가 쓴 대로 “도취하라, 어울려라, 일탈하라”는 생각을 제대로 읽어낸 것이다.

 

이는 스콧 매켄지의 1967년 노래 〈샌프란시스크〉가 포착해낸 정신이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머리에 꽃을 꽂은 온화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체가 그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사랑의 여름’의 메시지는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보라는 1967년 ‘사랑의 여름’에 절정을 이 루었다. 당시 보라는 시대정신을 포착하며 히피 운동의 색으로 떠올랐다.

색채 동향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이 모두에서 보라가 넘쳐났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머리에 꽂은 보랏빛 꽃, 보랏빛 평화 사인과 사랑의 사인 같은 각종 모티브, 보랏빛으로 홀치기 염색한 옛날 할머니 조끼와 블라우스와 탑 등등. 곧이어 파리, 런던, 베를린, 도쿄, 스톡홀름을 비롯해 전 세계 젊은이들이 보라를 입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안개가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있다는 가사로 끝나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퍼플 헤이즈〉라는 노래로 이 새로운 의미들을 흡수했다.

 

당연히 패션 산업은 그러한 동향을 그야말로 활발하게 받아들였고 60년대 말에 접어들어 양성용 보라색 의류가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한 색이 역사의 귀중한 몇 년을 정의하기에 이르렀

다. 흰색 정장과 중절모 차림으로 글을 쓰면서 시대 가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한 톰 울프는 이 시기를 ‘보랏빛 시대’라고 명명하며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했지만, 폭탄처럼 작열하며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의 몇 년을 사로잡았던 보랏빛 유행은 그 뒤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헤로인 중독과 마약 과다 복용, 제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의 죽음, 롤링 스톤스의 알타몬트 공연 도중 발생한 폭주족에 의한 흑인 관객 사망 사건, 맨슨 패밀리의 살인극, 미국·독일·이탈리아에

서 발생한 극좌 테러리즘 등 이 모두가 히피 시대는 끝났으며 곧이어 보라는 구식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인식에 기여했지만 그 영향력의 일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1968년 영국의 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가 차 위로 뛰어올라 자신들은 딥 퍼플이라고 외쳤지만 레드 제플린의 위세에 곧 굴복하고는 헤비메탈 밴드로 변신했다. 거들먹거리며 포즈를 취하고 머리 모양에 무척이나 신경 썼던 70년대의 시대정신에 좀 더 걸맞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보랏빛 음악에 대한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장엄한 순간이 마지막으로 한 차례 더 남아 있었다. 기타의 거장 헨드릭스가 죽은 지 15년 뒤 그의 후계자라는 말이 돌기도 했던 프린스가 온통 보라색 차림으로 〈퍼플 레인〉(싱글 앨범이자 영화)을 들고 나타나 80년대의 좀 더 어두워진 보랏빛 열풍을 일으켰던 것이다.

 

항의하는 정부 공무원들에게 유색 물을 쏘아대는 인도 경찰. 법 집행에 보라색 염료를 사용하는 사례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