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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위한21가지제언

<석복> -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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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예고_채우지 말고 비우고, 움켜쥐는 대신 내려놓다 <석복>

누릴 복을 아껴라, 석복惜福

 

석복惜福은 복을 아낀다는 뜻이다. 옛사람은 이 말을 사랑했다. 다 누리지 않고 아껴둔 복은 저축해두었다가 함께 나눴다. 지금은 절제를 모르는 세상에서 욕망의 화신이 되어 산다. 죽기 아니면 살기요, 전부가 아니면 전무全無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의 탐욕은 비탈을 굴러 내려가는 수레와 같아 제힘으로는 결코 멈출 수 없다. 중간에 장애물을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전복되거나 부서지고 만다. 누릴 복을 조금씩 덜어 아끼고 나누며 살아가면 좋을 텐데 그 일이 쉽지가 않다. ‘복 많이 받으세요’ 대신 ‘복 많이 아끼세요’로 신년 인사를 건네면 어떨까?

 

 

나이가 들면서 혼잣말이 늘어간다. 운전을 하다가, 산길을 걸을 때, 빈방에 혼자 있으면서 자꾸 혼잣말을 하는 나를 본다. 늘어나는 혼잣말은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릴까? 그때마다 특정하기 힘든 청자聽者가 있다.

 

두서없는 혼잣말이 떠올린 그 누구는 누굴까? 나는 왜 자꾸 혼잣소리를 하는가? 설명해 납득시키자니 피곤하고 고인 채 안에 두자니 답답하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눅여 눌러 다독인다. 대신 옛사람을 불러내 그들 입을 빌렸다. 누추하다. 세상은 대체 변할 줄 모르고, 인간은 좀체 바뀌지 않는다. 동서양이 따로 없고 고금이 한가지다. 그러니 무얼 더 보탠단 말인가. 그래서 자꾸 혼잣소리를 하고, 옛사람 입을 빌린다.

 

 

지난 시간 우리는 인간의 탐욕과 독선이 빚어낸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왔다. 그 끝에는 광명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뒤로도 터널은 자꾸 나올 것이고, 바다에 이르러서야 길은 끝난다. 나만이 정의롭고 떳떳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주어진 복을 아끼고, 남은 하루하루를 아끼며 걸어갈밖에.

 

경수무풍야자파鏡水無風也自波! 거울 같은 수면에 바람도 없는데 물결은 절로 인다. 산은 층층 높고 물은 풍풍 깊다. 단가 〈고고천변杲杲天邊〉의 가락을 듣다가 우리네 인생도 노래 속 별주부처럼 앞발로 벽파碧波를 찍어 당겨, 뒷발로 창랑滄浪을 탕탕, 요리 조리 조리 요리, 앙금 둥실 높이 떠 지나갔으면 싶다. 토끼의 간을 내와야 하는 숙제가 남긴 했지만 말이다.

 

다시 네 글자로 된 100편의 글을 한데 묶어 《일침》, 《조심》,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 이어 네 번째로 세상에 내보낸다. 그 뒤야 뉘 알리, 더질더질.

2018년 새봄, 행당서실에서 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