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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 김형석

Chapter 7.#7. 조금, 오래된 이야기들_책 속 수필선: 정이라는 것

정이라는 것 1

 

생명은 물질 속에 있으나 물질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정밀한 기계를 만든다 해도 그 기계가 생명으로 화하지는 못하는 법이다. 우리는 미국의 커다란 자동차 공장에서 하루에 몇백 대씩의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낸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어린애들도 암놈 자동차나 수놈 자동차가 있어 새끼 자동차를 낳아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여러 개의 인공위성이 달나라를 돌아온대도 그 과학과 기술로써 물질에서 생명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비록 물질 속에 머무른다고는 하여도 생명은 여전히 물질에 비하여 이질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이성理性과 자각自覺은 생명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생명 그 자체는 아닌 것 같다. 한때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을 휩쓴 일이 있었다. 모든 유기체는 아메바로부터 진화했으며 원숭이는 인간의 선조라고 많은 사람이 믿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원숭이가 인간의 선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으며 많은 인류학자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 듯싶다. 과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우리의 대뇌 세포의 수는 적어도 96억에 달한다는 것이며, 만일 인간을 만들고자 한다면 96억 개의 진공관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 막대한 수의 진공관에 전기를 보내려고 한다면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을 전부 발전시켜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이 감정을 가지며 사고와 선택을 하는 인간이 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단추를 누르면 왼손을 흔들고 또 다른 단추를 누르면 오른발을 내미는 인간은 될 수 있으나, 사랑하고 감격하며 행복과 가치를 논하는 인간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한두 숟가락의 음식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비교해본다면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오히려 우리는 과학을 미루어 생각하기 전에 진화론을 상식에 물어 호소할 수도 있을 듯하다. 만일 원숭이들이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다면, 그 옛날보다도 오늘의 원숭이들은 더 빨리 진화할 수 있을 법하며 산중의 원숭이들보다는 인간 사회와 접촉이 많은 원숭이가 더 잘 진화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하여서 동물원의 원숭이들이 때때로 옷을 걸쳐 입고 모자를 쓰고서, 나도 이제는 그대들 인간과 같이 살아야겠다고 진화해 나올 것으로 상상이 되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성과 자각이 생명 속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생명과는 별개의 존재인 것만 같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나게 동물과 인간이 이질적인 존재라 하여도 그 사이에 정과 사랑이 통하며 하나의 생명적 연결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이라는 것 2

 

오래전에 있었던 얘기다.

 

평양 시에서 약 이십 리쯤 떨어진 산골 마을에 살던 우리는 작은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삼 년 동안이나 정들여 길러왔을 뿐, 종류가 좋은 개도 못 되었고 특별히 영리한 개도 아니었다. 그저 기르는 동안에 정들었고 식구와 같이 산 밑 오막살이에서 자랐을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떻게 된 셈인지 그 개가 한 발을 앓게 되고 마침내 그 때문에 한 다리를 절단까지 하고야 말았다.

 

그해 늦은 여름, 평양에 사는 큰어머니께서 집에 다녀가시면서 그 개를 좀 데려가면 좋겠다는 청을 했다. 부친도 처음에는 그 청을반기지 않았으나, 동네에서 새로운 강아지를 또 얻을 수 있기에 약간 다리를 저는 개를 보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온 가족이 섭섭함을 금치 못했다. 어린 동생들이 제각기 정다운 작별의 뜻을 나누고 떠나보냈다. 개는 삼 년이나 지키고 있던 집을 여러 번 돌아다보면서 끌려갔다.

 

몇 차례 부친이 평양에 다녀만 오면 동생들은 개가 잘 있는지 다리가 좀 나았는지 묻곤 하였다. 그러나 개가 집을 떠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싶은 어느 날 아침이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동생이, “어젯밤 꿈에서 큰어머니 댁에 간 개를 보았어. 개가 앞뜰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야단하던데…”라고 말했다. 작은 누이동생이, “나도 우리 개를 봤어. 이놈의 개가 언제 여기까지 왔어? 그러면서 쫓아 나갔더니 어디 갔는지 없어졌던데…” 하고 떠들었다. 그러나 개꿈을 꾼 것은 두 동생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같은 밤 꿈에 개를 안아보았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분명히 한 다리를 절고 있더라”라고까지 말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동물과 인간이 이질적인 존재라 하여도 그 사이에 정과 사랑이 통하며 하나의 생명적 연결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