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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 김형석

Chapter 6.#6. 조금, 오래된 이야기들_책 속 수필선: 선비 정신과 돈

선비 정신과 돈

 

동양 사람들은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꺼내지 않는 습성이 있다. 특히 그 생각이 체면에 걸린다거나 남들의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때는 그대로 어물어물해버리기가 일쑤다.

 

그런 버릇 중에서도 제일 심한 것이 정신적 생활을 하는 사람과 돈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가까운 친구가 불만스러운 푸념을 하고 있었다. 왕복 여섯 시간이 넘는 곳까지 다녀왔는데 백 분간의 강사료가 형편없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몇천 원을 세금으로 감하고 나면 거의 무료봉사를 한 셈이라는 것이다.

 

나는 “왜 초청을 받았을 때 강사료가 얼마냐고 묻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 친구가 “김 선생 같았으면 따져 물었겠어요?”라고 반문했을 때는 나도 웃어버리고 말았다.

 

나도 비슷한 경우를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해놓고는 “관에서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구먼요”라는 식으로 대답해버린다. 생각했던 액수보다 너무 적을 때는 “나쁜 사람들!”이라고까지 말하면서도 강의료는 얼마냐고 묻지 못하는 것이 선비 후예들의 소심성과 옹졸함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모 월간지의 사원이 원고 청탁을 하러 왔다. 쓸 시간이 없으므로 다른 이에게 부탁을 하기로 합의가 되었다. 나는 그 사원에게 “그래 원고료를 얼마씩 주지요?”라고 물었다. 그 액수를 알아야 대신 부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원의 얘기는 예측했던 그대로였다. “저도 고료가 얼만지는 잘 모릅니다”는 것이다. 마치 그 표정이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아가지고 다니느냐?” 싶기도 했고, “교수들이 어쩌면 돈타령만 하는지 모르겠다”는 인상 같기도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교섭해보라고 말을 했다.

 

때때로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 전화를 받는다. 내가 먼저 “고료는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또 돈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지나 않을까 싶은 기분도 든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조금 기다려주세요. 알아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답한 뒤 고료를 윗사람에게 물어 대답해준다. 그렇게 되면 고료가 적기 때문에 못 쓰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런지 그런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선비의 후예들인 훈장들의 생리이다.

 

외국 같으면 강연이나 원고를 청탁할 때 모든 내용을 밝힌다. 왕복 교통비는 어떻게 하며 어느 호텔에 머물며, 강사료는 얼마인데 응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온다.

 

우리가 그런 초청장을 내거나 받으면 ‘점잖치 못하게 돈 얘기만 앞세우는군’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가장 큰 관심이 거기에 있으면서도….

 

그래서 돈 얘기는 제3자를 시켜서 알아보거나 부탁한다. 오히려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에 작고한 Y 교수는 무슨 부탁을 받을 때마다 사례를 묻는 습관이 있었다. 그 때문에 돈만 아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솔직한 게 선비 정신이 못 된다는 것이 아니다. 돈을 앞세우는 학자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옛날 양반들은 조반을 굶고 나오면서도 이쑤시개는 물고 다녔다고 한다. 체면 때문이다. 오늘의 선비들이 따지고 보면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속으로는 앓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돈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식의 체면이다.

 

미국인 같으면 누가 3만 원을 받는다면 나는 5만 원 받아야 한다고 솔직히 말한다. 우리도 가수나 배우에게는 그 목적에 따라 차별 대우를 하면서 교수나 정신적 지도자들에게는 다 같은 대우를 한다. ‘그분들은 점잖은 분들이니까’로 통하면 된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인지 모르겠다. 표리가 다른 생활도 좋지 않으나 선비는 돈에서는 초월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자타가 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몇 가지 석연치 않은 경우들이 있다. 자신들은 높은 봉급과 대우를 받으면서 다른 손님들에게는 무료 봉사를 요청하는 일부 종교계의 처사이다.

 

관공서에 가보면 식사 대금은 몇만 원씩 지출하면서 사례나 교통비는 몇천 원에 그치는 경우가 있었다.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들의 해결은 어디서부터 시정되어야 하는가.

 

선비 정신이란 일이 귀하기 때문에 일을 한다는 뜻으로 집중되어야 하며 사람들에게 일을 부탁하는 측에서는 어떻게 손님을 위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돈 때문에 움직이는 지성인도 불행하나 지성인을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사회 풍토도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