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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 김형석

Chapter 2.#2. 살아간다는 것_인생론: 무소유의 삶을 생각한다

살아간다는 것_인생론

무소유의 삶을 생각한다

 

오래전 일이다. 부산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었다. 나와 마주한 사람은 수도복을 입은 사십 대 후반쯤의 남자였다. 중간 복도를 지나가던 승무원이 가벼운 점심거리를 권하면서 식당칸이 없으니 필요하면 사라는 것이었다.

 

수도사는 빵과 사이다를 사면서 2인분을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대금을 내려고 했더니 그는 꼭 자기가 사고 싶다면서 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수도사님은 돈이 없으실 텐데…”라고 했다.

 

“아닙니다. 오늘 같은 경우에는 필요한 돈을 수도원에서 받아서 나옵니다. 돌아가서는 무엇을 위해 어디에 썼다는 내용만 보고하면 됩니다. 얼마 안 되지만 선생님과 식사를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라는 것이었다.

 

나는 사이다를 마시면서,

역시 수도사님들은 소유가 없이 사는 것을 서약하고 지키시지요?

라고 물었다.

 

“저희는 세 가지 규정은 엄밀히 지키기로 되어 있습니다. 재물을 갖지 않기로 되어 있고, 여성과의 만남이 없습니다. 그리고 수도원 안에서는 말을 하지 않기로 되어 있으니까 자연히 바깥세상에 나와도 가급적 침묵을 지키게 됩니다. 어제는 제 부친의 장례식이 있어서 허락을 받고 다녀가는 길입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기차가 왜관역에 멎었을 때 수도사는 조용히 인사를 하고 열차에서 내렸다.

 

그와 헤어진 뒤, 나는 젊었을 때 깨끗한 삶과 숭고한 정신을 위해 신부나 수도사들은 어떻게 살까 하는 가벼운 연모심 같은 심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음을 상기해보았다.

 

왜 신부나 수도사가 되고 스님이 되었을까.

흔히 속세를 떠나고 싶어서였다. 불필요한 상념의 노예가 되는 것도 어리석고 무의미한 소유욕에 사로잡혀 헛된 인생을 보낼 어리석음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된 삶이 무엇인가를 찾고 인생의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가를 터득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혼의 안식이 세속적 욕망보다 중하며, 무욕과 무소유의 삶은 인간적 죄악에서 구원받는 길임을 실천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적인 것을 버림으로써 인간을 초월한 성스러운 가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성인은 되지 못하지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사라져가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을 초월하고 싶은 정신적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고, 나도 한때는 그런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볼 수도 있다.

 

신부나 스님이 되는 사람의 수가 적으니까 다행이지 모든 사람이 다 그 길을 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 경제의 발전과 그 결과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옛날부터 침묵은 웅변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으나, 정치인들의 웅변에는 거짓과 명예욕이 깔렸기 때문에 불필요한 언변보다는 침묵을 지키는 인품이 고귀하다는 판단은 옳으나 선하고 아름다운 대화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즐거운 행복으로 이끌어주지 않는가. 만일 남녀 간의 이성관계가 끊어진다면 후손들이 태어나지 못하며 종교적인 성스러움을 찾아 누릴 인간 존재 자체가 사라지지 않을까.

 

세속적이고 무가치해 보이더라도 인간적 삶이 존재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더 귀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어떤 철학자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고의 행복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인간을 사랑하기로 하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니체는 신들을 찾아 성스러워 보이는 산에서 내려오면서 나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으로 간다고 고백했다. 인간을 사랑하는 일, 그보다 더 소중하고 성스러운 가치의 삶은 없었기 때문이다. 석가도 그 뜻을 찾아 가르쳤고 예수도 십자가를 통해 그 길을 몸소 열어주었던 것이다.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길이며 이웃을 위하는 삶인 것이다. 삶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이다.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가 무소유일 수 있다. 그러나 무소유가 삶의 목적은 아니다.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고 갔는데, 오래지 않아 법정 스님이 무소유의 삶을 가르쳐주고 세상을 떠났다. 소유가 인생 전부인 양 허덕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고마운 교훈을 남겨주었다. 소유가 인생의 목적이 아님을 가르쳐주었다. 소유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면 무소유도 삶의 목표가 아니다.

 

인간은 소유의 유무를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몸의 부분인 어떤 기관이나 세포가 홀로 존립할 수 없듯이 인간도 공동체를 떠나 홀로 살도록 되어 있지 않다. 더불어 살도록 되어 있다. 태어날 때 그러했고 죽음도 사회적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소유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나를 위해서는 적게 가지고 이웃을 위해서는 많이 주는 삶이다.

 

그 정도와 노력에 따라 인생이 평가받을 수도 있다. 나는 많이 갖고 이웃에게는 적게 주는 것이 잘못된 인생이다. 소유에 대한 욕망이 바로 그런 것이다.

 

또 무소유의 삶 속에는 소유를 필수로 삼는 본능적 욕망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 욕망이 삶의 고통과 번뇌를 유발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가장 값있는 인생은 어떤 것인가.

 

사랑이 있는 고통과 고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우리가 존경하며 감사히 여기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를 위해 사랑의 짐을 져준 사람들이다.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가 무소유일 수 있다. 그러나 무소유가 삶의 목적은 아니다.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고 갔는데, 오래지 않아 법정 스님이 무소유의 삶을 가르쳐주고 세상을 떠났다. 소유가 인생 전부인 양 허덕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고마운 교훈을 남겨주었다. 소유가 인생의 목적이 아님을 가르쳐주었다. 소유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면 무소유도 삶의 목표가 아니다. 인간은 소유의 유무를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_62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