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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동양신화> - 정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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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이야기 동양신화] 고대의 새와 사람의 얼굴을 한 새 '인면조'

 

사람을 살리거나 사람을 잡아먹거나

사랑하는 연인들이 꼭 잡아먹어야 할 새도 있었다. 북쪽 헌원산에 사는 황조라는 새는 올빼미 같이 생겼고 머리는 흰빛인데 제 이름 소리를 내며 울고 다녔다. 이 새를 잡아먹으면 불같은 질투심이 돌연 사라졌다. 황조는 오늘날 꾀꼬리라고 부르는 새이다. 그러나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꾀꼬리는 노란 털빛에 결코 올빼미같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황조 꾀꼬리라고도 하며 질투심을 없애 주는 새이다. 남송시대 작자 미상의 <유지황조도>.

 

 

황조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전해 내려온다. 고구려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의 배경 설화가 바로 그것이다. 유리왕에게는 귀족 출신의 화희와 중국 상인의 딸인 치희라는 두 후궁이 있었는데 둘은 임금의 사랑을 놓고 서로 자주 다투었다. 어느 날인가 화희가 치희의 신분이 미천하다고 깔보는 말을 하였다. 화희의 이런 텃세에 치희는 너무나 화가 나서 그만 친정으로 돌아가버렸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왕이 급히 그녀를 쫓아가 달랬으나 이미 마음이 싸늘해진 그녀는 왕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낙심하여 혼자 돌아오는 길에 왕이 두 마리의 황조가 나뭇가지 위에서 정답게 노니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아파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데 그 노래가 <황조가>이다.

 

펄펄 나는 저 황조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오,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할조 투지를 북돋워주는 새. 청 《고금도 서집성》<금충전>에서

 

 

질투 때문에 달아난 사랑스러운 후궁을 그리워하는 유리왕의 마음속에는 잡아먹으면 질투하지 않게 된다는 신화적 새인 황조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원의 휘제산에 사는 할조라는 새는 색다른 방식으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 새는 꿩 같은데 몸집이 더 크고 온몸이 푸른빛을 띠었으며 털이 난 뿔이 있었다. 이 새는 한번 싸우면 죽어서야 그만둘 정도로 용맹하였다. 그래서 싸움터에 나가는 군인들은 이 새의 깃털을 투구에 꽂아 투지를 북돋웠다고 한다.

 

그러나 조류는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로만 상상되지는 않았다. 흉하고 불길한 일을 유발하거나 그 징조가 되는 흉조도 적지 않았다.

 

가령 남쪽의 거산에는 주라는 새가 살았는데 이 새는 올빼미처럼 생겼고 사람과 같은 손을 갖고 있었다. 이 새는 마치 암메추리와 같은 울음소리로 제 이름을 불러댔다. 그런데 이 새가 나타나면 그 고을에는 귀양을 가는 선비들이 많아졌다.

 

평론가 김현은 그의 저서《분석과 해석》의 부제를 ‘주와 비의 세계에서’라고 이름 붙였다. 비는 그것이 지나간 곳은 모두 말라버린다는 불길한 짐승이다. 군사 독재 시절에 나온 그의 평론집은 많은 사람들이 죄 없이 끌려가고 인권이 유린됐던 그 암울한 시절을 불길한 동물인 주와 비가 활개를 치는 시대로 표현했던 것이다.

 

 주 귀양살이를 예고하는 새. 청오임신의 《증보회상산해경광주》에서.

 

 

거산 근처인 영구산에 사는 옹이라는 새 역시 올빼미같이 생겼는데 사람의 얼굴을 하고 네 개의 눈에 귀까지 달려 있는 요상한 모습이었다. 이 새가 나타나면 온 세상에 가뭄이 들었다.

 

 옹 가뭄을 예고하는 새. 명 호문환의 《산 해경도》에서.

 

 

서쪽 녹대산에 사는 부혜라는 새도 큰일을 낼 새였다. 이 새는 수탉같이 생긴데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한번 모습을 나타냈다 하면 꼭 전쟁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고대인들은 닭싸움, 곧 투계를 무척 즐겼다. 싸움닭으로서의 수탉의 이미지 때문일까? 수탉같이 생긴 새가 전쟁을 암시하거나 예언하는 징조로 생각되었던 것은 투계의 전통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부혜 전쟁을 예고하는 새. 일본의 《괴기 조수도권》에서.

 

 

서쪽 장아산의 필방이라는 새도 경계해야만 했다. 이 새는 학같이 생기고 외다리에 붉은 무늬, 푸른 몸 바탕에 흰 부리를 하였는데 나타났다 하면 그 고을에 원인 모를 불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앞서의 붉은 털빛을 한 꿩 및 부리가 붉은 새 민이 불을 예방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필방의 붉은 무늬

가 불을 유발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왜 똑같은 붉은색이 이렇게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필방 화재를 예고하는 새. 일본의《괴기 조수도권》에서.

 

 

재앙 중에는 물난리, 곧 홍수가 빠질 수 없다. 역시 서쪽인 숭오산에 사는 만만이라고 하는 새는

물오리같이 생겼는데 날개와 눈이 하나뿐이어서 다른 한 놈과 몸을 합쳐야만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새가 나타나면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다. 두 마리의 물오리 같은 모습이 물의 과잉을 상징했던 것일까?

 

 

만만 물난리를 예고하는 새이자 넘치는 애정의 상징. 일본의《괴기조수도권》에서.

 

 

만만은 비익조라고도 부르며 이 새의 이미지는 후세에는 좋게 바뀐다. 즉, 이 새는 두 마리가 꼭 붙어 있어야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후세의 문학 작품에서 변치 않는 남녀간의 사랑을 표현할 때에 빈번히 인용되었다.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는 <장한가>라는 시에서 양귀비와 현종 황제 간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한다.

 

 

양귀비 온천에서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 양귀비. 그녀는 풍만한 육체 미인의 전형 이었다. 청 강도의 <화청출욕도>.

 

 

칠월 칠석날 장생전에서,

한밤중에 둘이 몰래 약속했지.

바라건대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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