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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이야기 동양신화> - 정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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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우리 존재의 근원, 의식의 뿌리 '동양 신화'를 찾아보자. <이야기 동양신화>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당신은 기억하는가?

 

아침에 눈을 뜨면 뜨락의 나팔꽃이 정겹게 인사하고 들녘의 새들이 말을 걸어오던 유년의 그 꿈같았던 시절을, 신화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어린 시절의 세계처럼 모든 것이 하나가 됨을 느끼곤 한다. 꽃과 새, 돌과 대화할 수 있었던 그 좋았던 시절, 별을 보고 우리 미래의 길을 상상하던 그 시절은 참으로 행복했었다.

바야흐로 신화가 돌아오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사라졌던 신들이, 망각의 지층 아래 봉인되었던 거인들이 속속 귀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마치 개선장군처럼 갈채를 받으며 등장하고 있는 신들의 면면을 보자.

 

위엄 있지만 바람기를 어쩌지 못하는 제우스, 정절을 내세우면서도 마음속에 뜨거운 질투를 감추고 있는 헤라, 여전히 요염한 자태로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프로디테. 아,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들의 반대편 한쪽에서 오랫동안 군림했던 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제우스의 권능에 필

적할 만한 황제, 헤라처럼 여신들을 지배했던 여와, 아프로디테와는 또 다른 우아한 매력의 소유자 서왕모,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기에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이제라도 그들을 찾아보아야 하겠다. 비록 지금은 기억마저 희미해졌지만 우리 존재의 근원이자 의식의 뿌리인 동양의 신들을.

 

《산해경》이라는 중국의 오래된 책을 펼쳐보면 사람 같기도 하고 물고기 같기도 한 괴물이 나타난다.

 

동양의 인어 아저씨 저인

 

서양의 인어 아가씨

 

물고기 모습을 한 이 괴물에게는 저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저인은 분명히 ‘인어’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인어 아가씨’가 아니라‘인어 아저씨(?)’이다. 서양의 동화나 그림책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인어 아저씨란 그야말로 낯설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인어 아가씨가 아닌 인어 아저씨가 등장한다는 점이 바로 동양 신화의 매력이다. 인어 아가씨도 예쁘지만 인어 아저씨야말로 정말 재미있는 상상력이 아닌가.

 

지금까지의 통념과는 달리 인어가 남자일 수도 있다는 상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사람마다 상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동양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배우게 될 소중한 교훈이다.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나 안데르센 동화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의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인어 아저씨 저인이야말로 우리 조상들이 상상했던 인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인어 아저씨가 우리에게 주는 첫인상은 어떤 느낌일까?

 

‘웃기네. 뭐, 이런 인어가 다 있어.’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사실은 누구보다도 우리와 친하게 지냈을 인어 아저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남처럼 서먹서먹해진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먼 데서 온 예쁜 인어아가씨하고 친하게 지내다 보니 정작 우리 곁의 인어 아저씨와 멀어진 것이다. 불쌍한 인어 아저씨, 그만 예쁜 인어 아가씨 때문에 버림을 받고 만 것이다. 그럼, 인어 아저씨 저인이 예전처럼 우리의 사랑을 받게 될 날 은 언제일까? 그건 어쩌면 전적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달려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동양의 소 머리 신 염제

 

이번에는 천 년도 더 된 무덤에 그려진 벽화를 본다. 벽화 속에는 소 머리를 한 사람이 있다. 아니 괴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손에 벼이삭을 쥐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 어, 이게누굴까?”

“미노타우로스!”

“그래, 맞았다.”

 

하지만 이것은 100퍼센트 정답이 아니다. 왜일까? 이건 크레타 섬의 미노타우로스가 아니고 동양의 미노타우로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독자들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동양에도 미노타우로스가 있었다고요?”

 

물론이다. 신화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동양 사람이든 서양 사람이든 어차피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신화 속에는 얼마든지 비슷한 상상이 많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비슷함 뒤편에는 인어 아가씨와 인어 아저씨의 차이처럼 언제나 다른 점이 있다.

 

무엇이 다를까? 먼저 서양의 미노타우로스를 한번 보자. 크레타 섬 미노스 대왕의 왕비 파시파에가 멋진 황소를 좋아해서 소머리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미노타우로스는 괴물이어서 사람을 잡아먹고 살다가 나중에는 다이달로스의 미궁에서 영웅 테세우스에게 처치되고 만다. 그러니까 소 머리를 한 미노타우로스는 괴물이지 훌륭한 신은 아닌 셈이다.

 

이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대개 사람의 몸과 동물의 몸이 섞여 있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 그리스 사람들은 만물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으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동물의 몸이 섞여 있는 것은 무언가 불완전한 것으로 생각했다. 올림포스의 위대한 신들을 한번 생각해보자.

 

그들은 얼마나 멋있는 미남 미녀의 몸을 하고 있는가? 그럼, 이번에는 동양의 미노타우로스를 보자. 소 머리를 한 이 사람은 염제炎帝신농神農이라고 불렸는데, 괴물이 아니라 불의 신이자 농업을 발명한 신이었다. 자애로운 이 신은 인류에게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하루에 백 번씩이나 이름 모를 풀을 직접 씹어서 맛보고 몸에 유익한 약초와 해로운 독초를 분별하여 인간들에게 알려준 것도 이 신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동양에서는 이토록 훌륭한 신을 멋있는 미남으로 그리지 않고 흉측한 괴물로 그렸을까? 고대 동양에서는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높아 자연에 가까운 동물을 인간보다도 더 신성하게 여겼다. 이 때문에 동양 신화에서는 성스러운 신이 동물의 몸을한 경

우가 많다.

 

물론 동양 신화에도 동물의 몸을 한 괴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와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동물의 몸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여기지만은 않았다. 참,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염제가 그려져 있는 무덤의 주인이 고구려 사람이라는 점이다. 염제는 중국 신화의 신인데 그 신이 고구려의 무덤에서 출현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신화가 생겨나던 시절의 중국 대륙은 통일된 한 나라가 아니었다. 수많은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았고, 고구려 사람의 조상도 지금 중국 사람의 조상도 같이 살면서 신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염제는 중국 사람뿐만 아니라 고구려 사람도 함께 숭배했던 신일 수 있다. 아울러 지금의 중국 신화 속에는 중국 사람의 신화는 물론 동양 여러 민족의 신화도 함께 담겨 있다. 중국 신화는 사실 동양 신화라고 불러도 좋은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도 동양에 있는데 인도 신화도 동양 신화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인도 신화를 동양 신화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신화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인도 신화는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무척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언어와 민족은 지금의 서양 사람과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도 신화는 속 내용에서 오히려 서양 신화와 한 계통인 것이다.

 

지금까지 잊혀진 신들에 대한 탐색을 통해 우리는 결정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동양의 신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데도 우리의 눈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도서소개